에버랜드 삼성SDS 서울통신기술등 비상장 계열사
지분 싼값 인수 되팔아 시세차익…지분 부풀리기
김용철 변호사 “구조본서 작성”…수사 대비 말 맞춘 흔적도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12일 공개한 ‘JY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이란 문건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삼성전자 전무)씨가 재산을 증식해 그룹 지배권을 확보한 과정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이씨는 주로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싼값에 인수해 수십배씩 차익을 남기고 되판 뒤, 다시 삼성에버랜드를 비롯해 에스디에스와 서울통신기술 등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늘려온 것으로 되어 있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 문건은 그룹 차원에서 (검찰 수사에 대비해) 자금 출처를 명확히 하기 위해 정리한 것”이라며 “이 문건을 보면 재용씨의 계열사 주식 매매가 각 계열사의 개별 사안이 아니라 경영 세습을 목적으로 그룹 차원에서 진행된 단일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문건에 나와 있는 이재용씨의 유가증권 매매 흐름을 보면 김 변호사의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씨의 재산 증식은 1994년께 이 회장이 증여한 60억여원에서 출발한다. 이씨는 이 가운데 16억원을 세금으로 내고, 본격적인 계열사 지분 매매에 나선다. 가장 먼저 에스원 주식을 94년 10월 주당 1만9천원에 사들여 2년여 뒤인 96년 11월과 97년 2월에 주당 17만~21만원에 되팔아 273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린다. 비슷한 시기에 삼성엔지니어링 신주인수권(BW)도 사들여 상장 뒤 주식으로 바꿔 되파는 방법으로 260억원의 차익을 얻는다.
이후 에스원 지분 1차 매각 대금(118억6천만원)으로 96년 11~12월 삼성에버랜드, 에스디에스, 서울통신 등 세 계열사 지분(107억8천만원)을 집중적으로 사들인다. 97년 2월에는 에스원 잔여 주식(176억7천만원어치)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279억3천만원), 98년 11월엔 제일기획 주식(146억원) 등을 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어 삼성전자와 에스디에스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게 된다. 그런데 이씨가 96년 말~97년 초 불과 석달 사이에 수십 차례에 걸쳐 지분 거래를 할 당시에는 유학생 신분으로 국외에 머물고 있었다.
지분 취득은 삼성에버랜드, 에스디에스, 서울통신기술 등 세 회사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룹 지배권 확보와 유지·강화에 필요한 회사들이기 때문이다. 에버랜드에서는 이재용씨가 96년 12월 전환사채를 헐값에 배정받아 주식으로 전환해 일약 지분율 51%로 최대 주주로 부상했다가 이후 에버랜드 증자 등에 참가하지 않아 현재 지분율은 25.1%로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최대 주주다.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1대 주주이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1대 주주, 그리고 생명과 전자는 다시 삼성의 여러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렇게 이어지는 지분구조를 통해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발판을 다진 셈이다.
삼성에스디에스와 서울통신기술 지분은 지배권 강화에 필요한 ‘재산 증식용’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둘 다 정보기술(IT) 분야 사업을 하는 비상장 기업이며, 안정적인 영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계열사들의 ‘물량 몰아주기’로 쉽게 지배주주의 지분 가치를 끌어올려 줄 수 있는 기업들인 것이다.
또 문건을 보면, 이씨의 주식 매입 자금 출처와 시기 등을 치밀하게 맞춘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계열사 지분의 대규모 처분이나 취득이 이뤄질 때마다 매각과 매입 대금이 거의 일치되도록 정리돼 있다. 이밖에도 검찰 수사에 대비한 ‘모범 답안’으로 보이는 대목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문건에는 이씨가 아버지한테 받은 60여억원을 어떻게 수조원대로 부풀렸고, 이를 토대로 주요 계열사들을 지배하게 된 과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며 “이 모든 일들을 당시 20대 후반의 유학생이던 이씨가 자기 판단으로 했다고 주장해온 삼성 쪽은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박순빈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