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관련 경찰 내부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왼쪽)과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오른쪽)이 14일 오후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공판을 마친 뒤 각각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관련 경찰 내부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왼쪽)과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오른쪽)이 14일 오후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공판을 마친 뒤 각각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초유의 인명 피해가 야기됐는데도 진상규명과 책임소재 파악에 대한 전국민적 기대를 저버린 채 경찰의 책임을 축소·은폐하며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어렵게 했으므로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법원이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 ‘핼러윈 정보보고서’ 여러 건을 삭제하도록 지시한 서울경찰청 정보부장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면서 진상규명의 필요성과 경찰 책임을 함께 언급했다. 2022년 10월29일 참사가 발생한 지 16개월 만에 국가 책임과 관련해 나온 법원의 첫 판단이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배성중)는 14일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를 받는 박성민 전 서울청 정보부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추가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없다며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같은 혐의를 받는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에 대해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증거인멸 등 혐의를 받는 용산서 정보과 직원 ㄱ씨에 대해서는 징역 4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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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삭제된 4건의 정보보고서가 핼러윈 데이에 인파 밀집이 우려된다는 점을 명백히 지적하고 있고, 경찰의 정보기능 등이 이를 사전에 충분히 대비했는지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 증거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인식한 채 광범위한 삭제지시를 내렸으므로, 경찰 책임을 축소하기 위한 증거인멸 의도가 있다고 봤다.

참사 책임은 경찰 고위직에 있다고도 지적했다. 박 전 정보부장과 김 전 정보과장은 용산서 정보과 직원이 인멸한 증거는 본인 범죄의 증거이므로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고, 따라서 자신들의 교사죄도 무죄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경찰 책임은 사전에 사고 발생 위험이 충분히 경고됐는데도 조처를 다 하지 않았는지 등 정책적 의사결정에 대한 부분이다. 일선 (정보관의) 책임까지 따져야 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보관 ㄱ씨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규모의 사건이 아니므로 ㄱ씨의 ‘타인 범죄 혐의 관련 증거 인멸 혐의’가 인정된다는 취지다. 본인 범죄의 증거를 인멸했을 땐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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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는 “재판부가 정보경찰의 형사책임을 인정하고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피고인 박성민에게 실형을 선고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사법부가 앞으로 다른 피고인들에게도 엄중한 형을 선고해 유족의 아픔을 달래고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부장은 지난달 19일 1건의 보고서를 삭제하도록 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이에 대한 재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