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농단’ 사건의 키맨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개입 혐의는 대부분 무죄 판단을 받았지만 ‘박근혜 청와대’에 법률 자문을 제공한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됐다. 법원행정처의 ‘3인자’였던 임 전 차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승인 없이 사법농단을 주도했다는 결론이다.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재판장 김현순)는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임 전 차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공모해 무리하게 각종 재판에 개입하고,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내부 비판세력을 탄압하고 비리 판사를 비호하는 등 부당한 지시를 내린 혐의로 2018년 11월14일 기소됐다. 공소장에 적시된 혐의만 약 30개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박근혜 청와대와 당시 정부, 일부 국회의원들에게 법률 자문을 제공한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에서 고용노동부의 재항고이유서 첨삭을 지시한 혐의, 메르스 사태 당시 박근혜 정부의 법적 책임을 면제할 방법을 검토하도록 지시한 혐의 등이다.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이용해 헌재 내부 정보와 자료를 수집한 혐의와 공보관실 운영비를 불법 편성·집행한 혐의도 인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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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재판은 2018년 11월14일 구속기소 이후 1심에만 1909일이 소요돼 사법농단 관련 재판 중 가장 장기화한 재판으로 꼽힌다. 재판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고위 법관 출신인 임 전 차장이 검찰 조서와 증거 대부분을 ‘부동의’하거나 법관 기피신청을 내는 등 재판 지연작전을 펴온 탓이다. 공판기일만 245차례 열렸고 증인은 275명(중복 포함) 출석했다.

이로써 사법농단에 연루돼 기소된 전·현직 판사 14명에 대한 1심 판단은 모두 마무리됐다. 이미 6명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고,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5명은 하급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날 유죄 선고를 받은 임 전 차장 외에 유죄 선고를 받은 법관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2심 벌금 1500만원)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2심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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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건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2011년 9월~2017년 9월) 사법부 행정 업무를 맡는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하고 법관 독립을 침해한 사건이다.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서 일하던 이탄희 당시 판사가 개혁 성향을 띠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 사찰 업무 지시 등을 거부하고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당시 이 사건은 세 차례 법원 내부 진상조사 뒤인 2018년 6월부터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수사팀장(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맡았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