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서 일하게 된 이탄희 판사는 동료에게 ‘컴퓨터에서 판사 뒷조사 파일이 나올 텐데 놀라지 마라’라는 취지의 말을 듣고 반발해 사표를 냈다. 사표는 반려됐고 이 판사는 원소속인 수원지법 안양지원으로 돌아갔다.
이 석연치 않은 인사는 사법농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사법농단 사건의 목격자이자 증인이었던 이 판사는 사법농단을 ‘결자해지’하겠다는 목표로 법복을 벗고 ‘국회의원 이탄희’가 됐다. 사법농단 사태의 정점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무죄 판결이 나온 닷새 뒤인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이 의원은 “이제 중요한 것은 사법부의 미래”라고 했다.
—이번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과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은 사실로 인정됐다. 하지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비상식적인 판결이다. 무죄의 이유는 첫째, 양 전 대법원장은 몰랐고 둘째, 알았다고 하더라도 ‘직권이 없기 때문에 남용이 없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1심 판결문에도 ‘재판 개입은 있었다’라고 적혀 있다. 이런 식의 재판 개입은 양 전 대법원장의 임기 6년 동안 빈번했다. 법원행정처가 양 전 대법원장 몰래 했을 리는 없다. ‘직권이 없어서 남용도 없다’는 논리도 너무나 ‘법기술자’스럽다. 이 법리가 고집된다면 반드시 제도적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보완 입법을 하거나 판사에게 징계나 탄핵 책임을 더 적극적으로 물을 방안이 필요하다.”
—사법농단 관련 무죄 판결이 반복되다 보니, 관련자들이 ‘검찰 수사의 피해자’라는 인식도 나온다.
“진짜 피해자는 ‘재판 거래’로 삶이 망가진 국민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 지연으로 판결도 못 받고 돌아가신 강제징용 피해자의 눈에는 검찰과 법원의 싸움이 어떻게 보이겠나. 기득권 싸움일 뿐이다. 나는 처음부터 형사가 아니라 징계 및 탄핵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20여명을 징계 청구하는 데 그쳤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사법개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김명수의 적당주의’가 참사를 불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거대한 퇴행이 시작될 것이다. 김 전 대법원장은 2018년 대국민 담화문에서 약속했던 ‘법원행정처의 비법관화’ 완성을 이행하지 않았다.”
“난로 옆 화약고, 불안정한 윤석열과 만나 터지게 될 것”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법원장 추천제 폐지와 법원행정처 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후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앞으로 화근이 될 것이다. 일선 재판장들이 법원행정처의 영향을 받았던 가장 결정적 이유는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들이 내 옆에서 재판하던 ‘동료 판사’라서다. 그 ‘악마의 통로’를 차단하려고 했던 건데 다시 개방하고 있는 거다. 법원행정처 판사 증원은 ‘난로 옆에 화약고 쌓는 일’이라고 본다. 결국 이 화약고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불안정한 성정과 만나 터지게 될 것이다.”
—앞으로 사법농단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보나.
“사법농단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면 법원 내부의 깊숙한 곳에서 이뤄지고 발견하기도 힘들 것이다.”
—사법농단 사태의 시작부터 지켜본 지난 7년의 소회는 어떤가.
“이제 충격은 없다. 내가 이야기했던 것들이 다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정치에 입문했던 동기 중 하나가 ‘사법농단 결자해지’였다. 내가 생각했던 방법은 ‘판사 탄핵’이었다. (임성근 부장판사)탄핵 사건 결정문 소수의견에서 사법농단 본체에 대한 평가가 기재됐다. 실체 판단으로 나아간 헌법재판관들은 모두 ‘중대한 헌법 위반이고 다시는 반복되면 안 된다’라고 결정문에 썼다. 결정문은 영구 보존되는 문서다.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했다고 생각한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