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수씨가 지난 6월21일 진료 차례를 기다리며 영상의학과 검사 보고서 내용 중 의학 용어를 검색해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조호수씨가 지난 6월21일 진료 차례를 기다리며 영상의학과 검사 보고서 내용 중 의학 용어를 검색해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6월21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진료대기실. 조호수(52)는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의학 용어로 가득한 보고서를 이해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검색까지 해봤지만, 독해가 쉽지 않았다. 곧 간호사가 조호수의 이름을 불렀다. 의사는 “일단 눈에 보이는 암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조호수가 “항암제를 매일 먹으니까 몸이 너무 힘들어서 네알씩 먹다가 하나로 줄였다”고 하니 “미세암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 항암제 용량을 줄이면 안 된다. 다시 네알 드셔야 한다”고 말했다.

조호수가 암을 인지한 건 2021년 2월이다. 요가를 하고 있는데 배에서 뭐가 만져지는 느낌을 받았다. 뻐근하면서 통증도 느껴졌다. 통증이 사나흘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소장암이라고 했다. 벌써 4기였고, 복막과 간에 전이가 됐다. 같은해 3월 1차 수술로 소장 일부를 절제했다. 9월에는 2차 수술로 간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빈혈이 심하게 왔고 피부도 벗겨졌다. 몸무게는 15㎏이 빠졌다. “암은 완치가 없어요. 재발하면 끝이다 싶은 절박한 마음이 생기죠. 병원 오기 일주일 전부터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조호수는 경북 봉화소방서 소속 소방위다. 22년차 소방관으로, 화재진압대원으로만 12년 정도 일했다. 같은 소방서에서 1년 정도 함께 근무한 곽영오 봉화소방서 명호119안전센터장은 조호수가 “평소 공사관계가 분명하고, 건강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런 조호수가 어쩌다 말기 소장암을 앓게 된 걸까.

광고
소방관 조호수씨가 지난 6월21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에서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소방관 조호수씨가 지난 6월21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에서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조호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유로 꼽았다. “119 상황실에서 오래 근무했어요. 한 번은 119 신고전화가 와서는 대뜸 ‘저희 어머니 잘 부탁한다’고 해서 ‘아, 이 사람 자살하려고 하는구나’ 싶어 안심시키려는데 갑자기 어머니 집 주소를 부르더니 ‘쿵’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지 못했죠. 본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내겠다는 주취자들에게도 엄청 시달렸어요.”

또 다른 이유는 출동한 화재 현장에서 노출된 유독물질들이다. 조호수는 경북 영주소방서에서 오래 근무하며 시멘트와 석면을 섞어 만든 슬레이트로 지은 주택 화재에 자주 출동했다. “시골에는 석면 지붕들이 많아요. 그게 타면 1급 발암물질을 그대로 흡입하니까요.”

광고
광고

유독가스가 가득한 공장이나 농약 창고 화재 현장도 수없이 오갔다. 조호수에게 유독 기억나는 건 2007년 6월 경북 봉화군에서 발생한 농약창고 화재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코끝이 찡해올만큼 악취가 퍼져 있었다. 역한 냄새를 견디기 어려웠지만, 외부에서 초기 진화를 하는 20분 동안에는 공기호흡기를 쓰지 못했다. 당시 공기호흡기는 용기 교체 시간까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최대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창고 내부를 진압할 때를 위해 남겨둬야 했다.

새벽 6시께 화재진압을 시작해 잔불 처리까지 1시간 남짓 걸렸는데, 곧 피부가 따갑고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며칠 동안 가래가 끓고 호흡이 쉽지 않았다. “영풍 석포제련소 등 여러 공장 화재에 출동했었어요. 금속 화재는 물을 뿌리면 더 강렬하게 반응하니 모래로 덮어야 하는데, 황산도 다량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알 수가 없어요. 지역에 큰 공장이 있어야 경제가 돌아간다고 하지만, 그 지역 소방관들에게는 위험 요소지요. 1년에 한 두 번 정도는 위협을 가할만한 규모의 공장 화재가 발생하니까요.”

광고

김수진 박사는 2021년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한국 대도시 소방관들의 유해물질 직접, 간접 노출과 질병유병률’에서 소방관들이 접하는 현장 환경을 시뮬레이션한 뒤 소방 방호복에 축적된 유해물질을 분석했다. 여기서 니켈·아크릴로니트릴·나프탈렌·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 등이 검출됐는데, 이들은 모두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발암물질이다. 아울러 소량이라도 인체에 흡수되면 치명적인 바륨, 한국 산업안전보건기준에서 규정한 발암성 물질인 안티몬, 폐수배출시설 적용 기준을 초과하는 물질인 구리 등도 검출됐다.

문제는 소방관들이 하루 평균 99.4건(소방청 통계연보, 2021년 기준)의 화재 현장에 뛰어들고 있으면서도, 정작 어떤 유해물질에 노출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조호수도 마찬가지다. “암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연기가 생각났어요. 공장에서 불이 날 때 가열되어 날아다니던 병과 깡통들도요. 석면뿐만 아니라 이산화황 같은 유독물질이 시커면 연기로 배출되는데, 연기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숨이 확 막히고, 두 모금 마시면 쓰러질 정도로 독성이 강해요.”

하지만 조호수는 소장암에 대한 공무상 요양(공상)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인사혁신처는 소장암과 조호수의 업무 간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투병 비용에 짓눌리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치료비와 요양을 위한 비용에 8천만원 가까운 돈을 들여야 했다. “아무리 자료 준비를 많이 해도 희귀질환은 인정을 받기가 힘들대요. 공무살 질병 판정 기준에 직업상 암 발병 요건이 있는데, 거기 폐암이나 백혈병은 나와 있는데 소장암은 없는 거죠.”

경기도 가평소방서 차고에 소방대원들의 장비가 가지런히 걸려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경기도 가평소방서 차고에 소방대원들의 장비가 가지런히 걸려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4일 한겨레가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해보니,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질병으로 공상 신청한 소방관 779명 가운데 41.1%(320명)가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질병으로 인한 공상 승인율은 2019년 57.6%, 2020년 53.7%, 2021년 58.8%, 지난해 64.4%로 매년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승인율에 견줘 크게 적다. 이 기간 전체 공상 승인율은 89%였고, 사고로 인한 공상 승인율은 95.7%나 됐다.

광고

질병 공상 승인율을 질환별로 보면, 중증 질환인 암의 경우 승인율이 51%, 심혈관질환은 58%, 이비인후과·안과 질환은 42.7%에 불과했다. 근골격계 질환(64.7%)과 뇌출혈 등 뇌혈관 질환(70%), 정신질환(78.2%)은 상대적으로 높다.

정부가 소방관들의 공상 신청을 거부하며 밝힌 이유는 뭘까. 오 의원실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공상 불승인 판정서 79건을 입수해 주요 이유를 분석해보니, ‘인과성’이나 ‘공무 연관성’을 언급하며 불승인한 게 35.4%(28건)였고, 질병의 종류가 근골격계·신경계인 환자를 두고 ‘퇴행성 질환’이라며 노화에 따른 것이라는 언급이 19%(15건)였다.

특히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는 지난 5월에도 파킨슨 병을 앓는 이아무개씨에 대해 ‘퇴행성 질환’을 이유로 불승인 판정을 했다. 이 밖에 ‘개인 질환’ 등 개인의 체질에 따른 질병이라는 언급이 16.4%(13건)였고, 현장 업무 경력이 적다(3건)거나 자료 부족(3건), 퇴직 후 시간이 지났다(3건) 등의 이유도 있었다. “공무상 질병 심의는 주로 의사들이 하게 되는데, 불승인 내용을 보면 ‘그런 질병이 공무와 연관이 있다고 알려진 바 없다’는 이유가 많아요. 한마디로 ‘모른다’는 건데, 심의에서 ‘모른다’는 곧 ‘아니다’로 판단이 되는 거지요.” 윤진하 연세대 교수(예방의학)의 말이다.

소방관 조호수씨가 건강하던 시절 동료 소방관들과 함께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 찍은 사진. 조호수 제공
소방관 조호수씨가 건강하던 시절 동료 소방관들과 함께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 찍은 사진. 조호수 제공

전문가들은 소방공무원의 경우 희귀질환에 걸리면 공상을 인정받기가 더 어려운 모순이 있다고 분석했다. 법무법인 감천의 김가람 노무사는 “소방공무원은 입직할 때부터 건강 상태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뽑는다. 그렇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내성이 강한 분들이 많다”며 “그렇다보니 특정 질병에 대한 발병률도 낮을 수 있는데, 기존의 사례가 없으면 공상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향 때문에 대처가 힘들다”고 말했다. 정경숙 연세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교수(직업환경의학)는 “소장암이 암 중에서도 드문 암이다보니 연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며 “하지만 대장암이 교대근무자에게서 발생 위험이 더 높다는 연구가 있다. 소장암도 비슷한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호수는 자신에게 발병한 암이 희귀한 소장암이 아니라 소방관에게 선례가 많아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쉬운 폐암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했다. “사실 1차 수술 이후 폐로도 전이가 됐다고 해서 공상 신청 때 폐 전이 사실도 함께 알렸는데, 폐암이면 받기 쉬운 데 전이된 거는 인과관계를 규정해서 승인받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6월28일 찾은 조호수의 경북 영주 집 뒷마당 텃밭에는 상추와 쑥갓, 토마토, 비트 등이 자라고 있었다. 조호수는 떨어진 면역력을 유지하기 위해 텃밭에서 일할 때는 맨발로 흙을 밟고, 가급적 자신이 직접 기른 채소를 반찬 삼아 밥을 먹는다.

그러면서 조호수는 방 한 구석에 쌓여 있는 두툼한 종이뭉치를 꺼내 보였다. 공상 신청 때 모은 22년 소방관 생활 동안의 출동과 초과근무 기록, 주기적인 건강검진 기록 등었다. 석면에 대한 논문도 있었다. 인사혁신처가 공상 불승인 판정을 한 뒤 되돌려보낸 문서들이다. 조호수는 “재난 현장에 뛰어가는 순간 평상시에는 무서운 상황도, 제복을 입으면 그 두려움을 다 잊는 것 같다”고 말할 만큼 여전히 소방관으로서의 자부심에 넘치지만, 되돌려받은 문서들을 보면 그 자부심이 외면당한 것 같은 상실감을 느낀다. 그 상실감을 더 크게 느낄 수도 있겠다 싶어 재심 청구도 망설이고 있다.

“공상 인정을 받으면 제가 20년 이상 국가와 주민을 위해 한 일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심리적 보상이 될 것 같았어요. 하지만 불승인이 되면서 ‘너 자신이 관리 못 해서 그런 병이 생긴 것 아니냐’고 하는 것 같아 서운하지요.”

소방관의 무사한 오늘을 위해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소방 사이렌 캠페인 참여하고 굿즈받기] https://campaign.hani.co.kr

영주/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