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단체들이 ‘위안부’ 역사를 기록하는 ‘기억의 터’ 조형물을 철거하려는 서울시에 항의하는 규탄행동에 돌입했다.
서울시는 4일 오전 7시 남산공원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공원 내 조형물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 철거를 시도했다. 미술작가 임옥상씨가 자신의 미술연구소에서 일하던 여성 직원을 강제추행에 유죄를 선고받았는데, 조형물 설치에 임씨가 참여했다는 이유에서다.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오전 6시부터 서울시의 철거시도에 반발해 ‘기억의 터’를 평화를 상징하는 보라색 천으로 둘러싸고 작품 철거를 막았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처장은 “‘기억의 터’는 수많은 추진위원, 여성 작가들, 시민 등 1만 9755명이 아픈 역사를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다짐으로 만들어낸 집단 창작물”이라고 설명하며 철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어 “서울시는 성폭력 근절 대책 먼저 세워야 하고, ‘기억의 터’ 기습 철거는 성폭력 저항의 역사 지우려는 서울시의 기만적인 행태에 불과하다”며 “임옥상을 핑계로 일본군 위안부 역사까지 통째로 지우려는 서울시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서울시를 비판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기억의 터’의 역사적 의미와 평화와 여성인권을 염원하는 피해자 및 시민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작업에 성추행 범죄에 대한 책임과 반성 없이 감히 참여한 임옥상의 행태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며 “임옥상 작가는 성추행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과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를 반드시 해야 할 것이다” 성추행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임 작가를 비판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이곳이 오늘 철거되면 그 자리에 여성폭력 방지 대책 있을까”라며 “‘기억의 터’를 오세훈 시장이 삭제하면 여성들 역사를 임옥상 역사로 보는 것”이라고 서울시를 다시 한 번 규탄했다. 김 소장은 “‘기억의 터’에서 지금도 반복되는 성폭력을 시민들의 힘으로 끝장내자”고 말하며 ‘지금 이곳에서 성폭력을 끝장내자’, ‘여성폭력 끝장내자’고 참석자들과 함께 외쳤다.
오전 8시43분께 ‘기억의 터’를 철거하기 위해 인근 서울종합방재센터 옆에서 대기하던 굴삭기가 철수했다. 규탄행동에 나선 시민들은 서울시의 기습 철거에 대비해 현장을 지키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한일강제합병조약을 체결한 남산 통감관저 터에 ‘기억의 터’를 조성했다. 이곳에 설치된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은 임옥상 작가가 설계·제작에 참여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