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4일 전남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 ‘벼락 맞은 이팝나무’에 꽃이 만개했다. 김창오 제공
2023년 5월4일 전남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 ‘벼락 맞은 이팝나무’에 꽃이 만개했다. 김창오 제공

대낮에 하늘에서 시뻘건 불기둥이 내리꽂혔다.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전남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 언덕에 주민들이 신목(神木)으로 모셔오던 이팝나무 고목이 쩍 갈라져 반파됐다. 매미 수백 마리를 비롯해 이 나무에 기대 살던 곤충이 우수수 떨어져 바닥을 시꺼멓게 덮었다. 운저리(전라도 말로 ‘망둑어’를 가리킴) 낚시를 갔다 돌아온 한 주민이 나무 그늘에서 잠시 낮잠을 자다 그만 귀먹고 말았다. 1930년대 여름의 일이다.

“전설이 아니에요. 마을 사람들은 그분을 ‘해전하네’라 합니다. ‘하네’는 전라도 말로 ‘할아버지’라는 뜻이에요. ‘해전’은 택호고요. 이 할아버지의 할머니(아내) 고향이 ‘해전마을’이거든요. 귀가 잘 안 들리는 해전 할아버지는 이후에도 수십 년을 잘 사시다가 제가 초등학생 때인 1970년대에 돌아가셨어요. 저희 할머니에게 이 얘기를 종종 들었어요. 1982년 98살로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가 그날 벼락이 내리치는 걸 직접 봤어요. 벼락을 맞은 뒤로 무서워서인지, 이팝나무 당산제는 지내지 않게 됐죠. 그래도 마을 어른들은 거의 껍질만 남다시피 한 나무가 이렇게 크게 잘 자라면서 꽃을 잘 피운다고 ‘역시 신목’이라고 했어요. 일주일 전만 해도 꽃 핀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는데….”

2023년 5월11일 벼락 맞은 이팝나무가 선 모정마을을 찾았을 때, 김창오(58) 행복마을추진위원장이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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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11일 전남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 ‘벼락 맞은 이팝나무’의 반파된 줄기 단면. 김양진 기자
2023년 5월11일 전남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 ‘벼락 맞은 이팝나무’의 반파된 줄기 단면. 김양진 기자
과거 갯벌이었던 모정마을 일대(파란색 표시)는 1540년, 1943년 제방 축조와 1980년 목포 영산강 하굿둑 완공에 따라 바다와 30여㎞ 떨어진 완전한 내륙지역으로 바뀌었다.
과거 갯벌이었던 모정마을 일대(파란색 표시)는 1540년, 1943년 제방 축조와 1980년 목포 영산강 하굿둑 완공에 따라 바다와 30여㎞ 떨어진 완전한 내륙지역으로 바뀌었다.
벼락 맞아 부서져도 높이 10m

닷새 전 내린 폭우로 반절 넘게 졌다지만, 하얗고 수북하게 핀 이팝나무 꽃이 여전히 넉넉하고 웅장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우수수 꽃비가 내렸다. 수관(나무의 가지와 잎이 뻗은 부분) 아래를 보니 벼락을 맞아 아래위로 결결이 쪼개지고 갈라진 채 새까맣게 탄 90년 전 상흔이 모습을 드러냈다. 40여 년 전 2m 정도 높이에서 새로 뻗은 가지가 지금은 어른 허벅지만 하게 자랐다. 빈 반쪽을 채워넣기라도 하듯, 가지가 없어 허전했던 서쪽으로 자라나 수형(나무의 모양새)의 균형을 맞췄다. 벼락을 맞았어도 키 10m, 가슴높이 둘레도 한 아름이 한참 넘는 거목이었다.

주민들은 10여 년 전 군청에 마을 소유인 이 이팝나무의 전문적인 관리를 위해 보호수 지정을 요청했지만 반려당했다. 담당 공무원은 줄자로 크기를 잰 뒤 “보호수가 되기는 규정상 둘레가 부족하다”고 했단다. 이에 주민들은 나무의사 등 전문가들을 불러 생육상태를 점검했다. “아무 걱정 할 필요 없이 건강한 상태”라는 진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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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바깥쪽 10㎝가량만 살아 있는 조직이고, 물관으로 쓰이던 안쪽은 죽은 조직으로 켜켜이 쌓여, 우리 목재로 쓰는 ‘심재’가 됩니다. 이 심재는 잘 썩어요. 고목의 속이 썩어서 비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빈 속을 ‘동공’이라 하는데, 그 자체로 노거수(늙고 큰 나무)의 신령스럽고 존엄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무 생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기 몸을 생각하면서 빈 부분을 채우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 속을 긁어내 채우는 ‘외과수술’을 하는데, 오히려 곰팡이 번식만 촉진하고, 노거수는 존엄을 잃게 됩니다. 모정마을 이팝나무의 경우 무리하게 손대지 않은 건 아주 잘한 일입니다.” 박정기 노거수를찾는사람들 대표활동가의 설명이다.

이팝나무는 늦봄에 피우는 풍성한 꽃이 특징이다. 하지만 같은 꽃을 보면서도 문화권별로 각기 다른 모양을 떠올렸던 듯하다. 라틴어 이름은 ‘눈꽃’(雪花)이란 뜻의 치오난투스(Chionanthus)고, 영어 이름은 ‘하얀 술’이라는 뜻(White Fringe tree)이다. 우리말은, 생각만 해도 따뜻하고 배부른 이밥(입쌀밥)을 닮았다고 해서 이팝나무다. 배불리 먹지 못해서였을까. 흰 꽃송이가 소복하면 수북하게 밥이 담긴 고봉밥 같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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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모정마을 ‘벼락 맞은 이팝나무’ 옆에 김창오 행복마을추진위원장과 아내인 김인순 부녀회장이 서 있다. 김양진 기자
영암 모정마을 ‘벼락 맞은 이팝나무’ 옆에 김창오 행복마을추진위원장과 아내인 김인순 부녀회장이 서 있다. 김양진 기자
2023년 5월4일 전남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 ‘벼락 맞은 이팝나무’에 꽃이 만개했다. 김창오 제공
2023년 5월4일 전남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 ‘벼락 맞은 이팝나무’에 꽃이 만개했다. 김창오 제공
제방으로 막히고 하굿둑 공사를 거쳐

이 나무는 마을의 특별하고 오랜 역사를 되살린다. 약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나무는 나룻배를 묶는 지주대였다. 1540년 조선 중종 때 쌀 수확을 늘리고자 모정마을의 윗마을인 양장마을과 동호마을을 잇는 제방이 축조돼, 이 일대는 ‘십리평야’라 불리는 드넓은 들녘으로 변신했다. 이팝나무 아래는 서해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이었다. 밀물 때 사공들은 떠오른 나룻배에 묶였던 밧줄을 풀고, 노를 저어 고기잡이에 나섰다. 이팝나무 동쪽 아래 지명이 ‘갯논(갯벌에 둑을 쌓고 만든 논) 아래’라는 뜻의 ‘개노미테’. 마을 동쪽 공터는 알춤사장(아래쪽 모래사장), 서쪽 공터는 울춤사장(위쪽 모래사장)이다. ‘해전하네’가 잡았다던 망둑어도 바닷물고기다.

쌀이 돈이고 금이고 욕심이던 시절이었다. 1943년 ‘친일분자’이자 ‘호남 최고 갑부’ 현준호는 양장마을부터 옆마을인 성재마을까지 1.2㎞를 막아 제방을 지었다. 하춘화의 노래 <영암 아리랑> 2절에서 풍년을 염원했던 ‘서호강 몽햇(夢海)들’이 바로 이때 만들어진 ‘학파농장’(1961년 완공, 892만㎡) 들녘이다. 이후 1980년 목포에 영산강 하굿둑 공사가 완료되면서 바다는 30여㎞ 밖으로 밀려났다.

대대로 이어진 모정마을의 풍요로움이 마을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벼락 맞은 이팝나무 언덕에서 동쪽으로는, 매년 여름 ‘홍련’이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마을 저수지(홍련지) 앞 ‘풍년을 바란다’는 뜻의 원풍정(願豊亭)이 있다. 마을 이름도 원풍정의 옛 이름 모정에서 왔다. 모정(茅亭)은 <한비자> ‘오두 편’의 모자불치(茅茨不侈)에서 따온 ‘검소한 정자’라는 뜻이다. 원풍정에 서니 월출산 천황봉과 주지봉이 막힘없이 내다보였다. 밤이면 월출산에 하나, 홍련지에 하나 두 개의 달이 뜬다는 곳이다.

본격적인 모내기철을 열흘가량 앞두고 마을 주민 두 사람이 들러, 두런두런 벼락 맞은 이팝나무에 나룻배가 묶여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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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 부락 어른들이 여기 다 모여 쉬면서 얘기하고, 애들은 저수지에서 수영 연습하고 그랬죠.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기 전엔) 바닷물이 들어왔어요. 서호강 쪽 갯벌에 가서 게·낙지·맛조개를 잡고, 숭어 잡아다가 어란 만들고 그랬죠.” 주민 김용군(80)씨가 돌이켰다. 신규현(72)씨는 “장어 새끼가 이 저수지에 많이 들어와서 팔뚝만 하게 자랐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갯벌 없애고, 농토 넓히라고, 저수지 만들었잖아요. 이제 벼농사 말고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원풍정 앞엔 철비(쇠로 만든 비)가 서 있다. 김병교 전라도 감찰사의 명판결을 기념하는 글귀가 쓰여 있다. 1857년 일이다. 모정마을 주민에게 논을 팔고 이주한 땅주인이 ‘저수지는 안 팔았다’며 물값을 받으려 하자, 감찰사가 ‘논을 팔았다면 물을 판 것과 같다. 저수지는 주민의 것이다’라고 판결했다. 여러모로 농민이 억울한 게 많은 요즘, 이런 판결이 또 나올 수 있을까.

‘벼락 맞은 이팝나무’의 줄기. 김양진 기자
‘벼락 맞은 이팝나무’의 줄기. 김양진 기자
영암 모정마을의 벽화. 1980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기 전까지만 해도 모정마을 아이들은 이렇게 벌거벗은 채 인근 갯벌을 오갔다고 한다. 김양진 기자
영암 모정마을의 벽화. 1980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기 전까지만 해도 모정마을 아이들은 이렇게 벌거벗은 채 인근 갯벌을 오갔다고 한다. 김양진 기자
전체 꽃식물 중 0.005% 불과한 이팝나무의 성별

이팝나무는 친숙한 나무다. 전국에 식재된 이팝나무 가로수는 모두 65만5천 그루(2020년 기준)로 전체 가로수의 7.0%를 차지한다. 벚나무와 은행나무 다음으로 많고, 느티나무보다 흔하다. 이런 이팝나무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을까.

이팝나무는 수술만 있는 ‘수꽃 그루’와 암술·수술이 모두 있는 ‘양성화 그루’가 따로 있는 ‘수꽃-양성화 딴그루’라는 사실도 최근 확인됐다. 홍석표 명예교수 등 경희대 생물학과 생물계통연구실 연구진이 2016년 8월 학술지 <플로라>(Flora)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이런 ‘수꽃-양성화 딴그루’는 전체 꽃식물 가운데 0.005%로 극소수다. 양성화 그루만 가을에 포도알만 한 검은 열매를 맺는데, 모정마을 이팝나무는 양성화 그루다.

“이팝나무의 수꽃 그루는 (열매는 맺지 않고) 폴렌도너(꽃가루 기증자) 역할만 하는 독특한 (성별) 체계를 가지고 있어요. 많은 연구자가 수꽃-양성화 딴그루는 암꽃-수꽃 딴그루로 가는 중간단계라고 해석합니다. 생물 입장에서 암수가 분리되는 것이 (유전적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유리하니까요. 하지만 인간 한 세대라는 시간으로는 이게 왜, 어떻게 진화한 것인지, 어느 쪽이 원시적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죠.”(홍석표 명예교수)

전남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의 정자 ‘원풍정’과 마을 저수지 ‘홍련지’, 그리고 멀리 내다보이는 월출산. 김양진 기자
전남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의 정자 ‘원풍정’과 마을 저수지 ‘홍련지’, 그리고 멀리 내다보이는 월출산. 김양진 기자
농촌이 쇠락하면 도시가 버틸 재간 있을까

이팝이 더는 고봉밥으로 보이지 않는 배부른 시대다. 지금 모정마을엔 110가구가 산다. 1960~1970년대 마을이 번성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울력(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해 청소 등 마을 일을 하는 것)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30~40대 젊은 가구도 4가구 있어, 다른 마을보다 형편이 낫다. 그럼에도 주민 상당수가 70대 이상 노인이다. ‘쇠락해가는 마을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뒤 도시생활을 하다, 1998년 귀향한 김창오 행복마을추진위원장이 25년 동안 해온 고민이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곁에서 보살펴드려야 했어요. 또 두 아들에게 자립심과 더불어 사는 힘을 키워주려면 농촌에서 ‘촌놈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20대가 된 아이들이 ‘농촌에 살아서 좋았다’고 하네요. 사라지는 농촌공동체를 살리는 데 제가 ‘등불’ 하나 되고 싶었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20~30년 여생을 제대로 살 수 있게 고향으로, 농촌으로 돌아가도록 귀향운동을 벌여야 할 것 같아요. 인정이 살아 있고, 쉴 곳이 돼주고, 또 아름다운 풍경을 제공하는 농촌이 사라진다? 도시도 결코 버틸 수 없을 거예요.” 스스로를 ‘들녘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하는 김창오 위원장의 말이다.

영암(전남)=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