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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섬마을 초교 폐교 막은 84살 할머니의 ‘빛나는 졸업장’

등록 :2023-01-25 19:29수정 :2023-01-26 02:39

[짬] 전남 진도 조도면 장숙자 할머니

지난 20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조도초등학교 거차분교 6학년 교실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장숙자 할머니(앞줄 앉은이)가 축하 꽃다발을 안고 있다. 전남도교육청 제공
지난 20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조도초등학교 거차분교 6학년 교실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장숙자 할머니(앞줄 앉은이)가 축하 꽃다발을 안고 있다. 전남도교육청 제공

전남 진도군 조도면 서거차도에 사는 여든네살 장숙자씨는 지난 20일 생애 첫 초등학교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장 할머니는 조도초교 거차분교 6학년 교실에서 졸업 기념 가족사진도 찍었다. 교실 벽엔 ‘장숙자 할머니 졸업 축하합니다’라는 종이 펼침막이 붙었다. 옆에는 동창생 3명이 함께 섰는데 그 중 2명이 조카 손주들이다. 꽃다발을 안은 장 할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빛나는 졸업장’을 받고 환하게 웃었다.

장 할머니는 25일 통화에서 “졸업장도 타고 재미있었어요. 앨범책도 주고, 경찰서에서 장학금으로 10만원이나 줍디다”라고 말했다.

‘폐교 위기’ 막으려 뒤늦게 입학
오르막 등하굣길 힘들어도 꿋꿋
84살로 조도초교 거차분교 졸업
“개근상은 못받았지만 재미 쏠쏠”

학교엔 교사 2명·학생 3명 남아
전남에만 인구소멸로 17곳 휴교

장 할머니는 2017년 3월 78살의 나이로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학교가 폐교될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이 입학을 ‘부탁’했다. 장 할머니는 고민 끝에 이를 수락하고, 쌍둥이인 조카 손주들과 동창생이 됐다. “나하고 마을의 다른 할매 둘이 학교에 갔는디, 한 할매는 노환이 나서 2학년까지 다니다가 말아 뿔고(그만두고) 나만 다녔제.”

장 할머니의 초등학교 입학과 졸업은 소멸위기에 처한 농어촌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전남에선 1982년 3월1일 삼호중앙국민학교 나불분교와 한골국민학교 등 2곳이 첫 폐교를 한 이래 지금까지 839곳이 사라졌다. 전남도교육청은 “일정기간 휴교가 계속되면 폐교 수순을 밟게 된다”고 밝혔다. 현재 전남에만 학생이 없어 휴교 중인 초등학교가 17곳, 유치원 36곳이다.

고령의 장 할머니 역시 학교를 다니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는 작은 손수레에 의지한 채 30분 정도 걸리는 오르막 등굣길을 오갔다. 집을 나서서 한참을 걷다가 숨이 차면 앉아서 쉬고 다시 기운을 차려 “배울 욕심으로” 학교로 향했다. 그래도 “손지같은 학생들이랑 노래도 함께 부르고 글도 배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날이 상당히 춥거나 더울 때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자습해 개근상을 타지는 못했다. 눈이 어두운 장 할머니는 시험을 치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느덧 6년이 지나 ‘까막눈’을 벗고 한글에 눈을 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장 할머니는 길 거리에 나설 때마다 간판에 있는 한글을 읽지 못한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어렸을 적 야학에 나가 ㄱ, ㄴ, 가, 갸만 겨우 배웠는데 학교 다닝께 한글이 알아지데요. 선생님이 징하니(아주) 좋아갖고 공부를 잘 가르치셨오. 인자(이제) 잡지도 읽고 그러요. 보건소 간판도 보이고.”

장 할머니의 담임인 이상섭(47) 교사는 “할머니가 한글을 어느 정도 읽으시고, 쌍받침만 빼면 받아 쓰기도 잘 하신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장 할머니에게 다른 과목은 말고, 한글 동화책을 읽게 하거나 치매 예방을 위해 미술 활동을 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이 교사는 “끈기가 대단하시다. 학교 수업이 끝난 뒤 바다에 가서 일도 하셨던 할머니는 생선을 갖고 와 건네시곤 했다. 자꾸 뭘 주시려고 했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장 할머니 등 학생 4명이 졸업한 거차분교엔 2·5·6학년 1명씩 학생 3명이 남았고, 교사 2명이 근무중이다.

동거차도 출신인 할머니는 인근 서거차도로 시집을 와 평생 농사와 바닷일을 하며 2남2녀를 키웠다. 80여명 주민 중 50~80대가 대부분이다. 서거차도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며 산다. 근해에선 삼치·우럭·병어·붕장어 등을 잡고, 김 양식도 한다. 서거차도엔 초등학교 분교와 보건진료소·면출장소·경찰초소 등이 있다. 목포를 출발하는 정기여객선이 1일 1회 운항된다. 다른 섬을 들르지 않으면 목포까지 5시간이 걸리고, 돌아가면 8시간도 걸리는 먼 섬이다.

“평생 보리 갈고 고구마 갈고, 갱번에 나가 미역도 따며 살았오. 올해 설 명절엔 날이 궂어 자식들이 있는 육지에 나가질 못했오. 영감(남편)은 20년 전에 먼저 가부렀고. 나도 빨리 죽어야 할 것인디, 어쩌까 모르겄오.”

장 할머니는 혼잣말처럼 담담하게 얘기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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