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부천노동자회 피해자 이성우씨가 지난 7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밀정 의혹 김순호 파면’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인천부천노동자회 피해자 이성우씨가 지난 7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밀정 의혹 김순호 파면’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조직은 무너져버리고 이제 관련자만 남은 인노회 이성우입니다. 18명이 연행되고 15명이 구속된 인노회 사건은 당시 공안 정국으로 가는 신호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조직도 잃었고, 열사 최동이 생겼고, 그 가족들의 아픔을 항상 느끼며 어려움을 함께 겪었습니다. 모든 사달의 시발점에 김순호가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느 누구도 남을 배신하고 동료를 배신하라고 배우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텐데…. 이런 일이 백주대낮에 횡행하는 것을 눈을 뜨고 볼 수 없습니다. 김순호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고 그를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1989년 당시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서 활동했던 이성우씨가 지난 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김순호 파면·녹화공작 진상규명 국민행동’(국민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전국민중행동·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227개 시민사회·노동·종교단체가 함께 한 국민행동은 이날 발족을 알리며 “법치주의와 헌법,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밀정 공작에 대한 진상 규명과 김 국장 즉각 파면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고려대 강제징집 피해자 양창욱씨가 지난 7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밀정 의혹 김순호 파면’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고려대 강제징집 피해자 양창욱씨가 지난 7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밀정 의혹 김순호 파면’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1980년대 후반 인노회 조직책으로 활동했던 김 국장은 인노회에서 같이 활동한 이들의 정보를 주고 1989년 8월 ‘대공특채’로 경찰에 입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가 경찰에 입문한 전후 그가 활동했던 인천·부천 등지 노동운동가들은 잇따라 연행되는 등 대공수사 표적이 된 까닭이다. 또 대학 재학 시절 강제징집된 뒤 학내 운동권 정보를 국군보안사령부에 보고(녹화사업)했던 김 국장이 제대 후에도 정보원 구실을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지만 김 국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박제호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 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녹화공작사업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박제호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 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녹화공작사업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한때 녹화공작 대상자였던 이들도 기자회견에 함께 했다. 녹화공작에 동원됐다 빠져나온 뒤 자신의 과거까지 밝히며 진상규명 활동을 해온 양창욱씨는 녹화공작에 대해 “온세상을 프락치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신군부 집단의 유토피아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작은 젊은이들의 영혼까지 파괴시켜 인간성 파탄에 이르게 하는 극악한 일이었다”며 김 국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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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공작사업은 1980년부터 84년까지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권 대학생들을 강제 입대시킨 뒤 대학 내 시위 계획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프락치’로 활용한 정부 차원의 공작이다. 2000년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로 전두환 정권이 녹화사업을 통해 군부독재에 저항한 대학생들의 인권을 유린했다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밀정의혹 김순호 파면, 녹화공작 진상규명 국민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지난 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밀정의혹 김순호 파면, 녹화공작 진상규명 국민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김 국장은 지난달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밀정 의혹에 대해 “억측으로 구성된 소설 같은 소리”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그렇지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자신도 신군부 녹화공작사업 피해자라며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서를 제출했다. 쏟아지는 의혹 속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그가 잊지 말아야할 사실이 있다. 몇몇 열사들은 스러졌지만, 그와 함께 1980년대를 산 이들이 여전히 살아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인노회 피해자들도, 국민들도 이를 지켜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