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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실습생 위한 ‘지역업체’는 없다, ‘지역맞춤형’ 학과인데도…

등록 :2021-10-10 19:59수정 :2021-10-10 23:10

고 홍정운군 사망사건 구조적 원인 따져보니
고 홍정운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진상규명 대책위가 지난 8일 오전 전남 여수 웅천 요트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여수/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고 홍정운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진상규명 대책위가 지난 8일 오전 전남 여수 웅천 요트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여수/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고등학생이 해서는 안 되는 잠수 작업을 하다 숨진 현장실습생 홍정운(18)군이 업체 사장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배경엔 양질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지역 현실도 자리하고 있었다. 현장실습생 사고가 날 때마다 기준이 강화하면서 실습 업체는 줄었는데, 현장실습이 꼭 필요한 학생들은 노동조건이 열악한 업체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교육부는 사망사고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현장실습 운영 개선 방안, 안전 확보 보완 등 후속 조처를 강구하기로 했다.

1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7일부터 전남 여수 소규모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을 시작한 홍군은 재학 중인 특성화고 해양레저관광과 학생 중 올해 처음으로 취업연계형 현장실습에 나간 사례였다. 학교가 작성한 올해 교육계획을 보면, 학교는 5~6월 현장실습 파견업체를 선정한 뒤, 9월부터 학생들을 본격적으로 실습에 보내야했다. 그러나 지난달까지도 레저학과 10명 남짓한 학생들은 실습업체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고 한다.

홍군은 여름방학 때 아르바이트로 일한 업체 사장이 학교에 요청해 현장실습까지 하게 된 ‘운 좋은’ 경우였다. 같은 과 ㄱ군은 “(현장실습할) 취업처가 거의 없던 상황이었는데, 1학기 말 정운이가 취업 담당 선생님한테 알바하는 곳을 먼저 알렸고 선생님도 ‘잘 됐다’면서 연결을 시켜줬다”고 말했다. ㄱ군은 “정운이가 자격증도 없던 상황에서 실습에 나가게 돼, 처음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홍정운(18)군이 일했던 요트. 독자제공
홍정운(18)군이 일했던 요트. 독자제공

여수시가 요트관광산업 분야를 지자체 역점 사업으로 강조하면서 홍군이 꿈을 키운 해양레저관광과가 2018년 신설됐지만, 정작 취업 발판이 될 괜찮은 현장실습 자리는 부족했다고 한다. 같은 과 ㄴ군은 “레저학과 특성상 여름 성수기가 끝나면 업체들도 (일할 사람을) 찾지 않는다. 실습 자리를 직접 알아보기도 했는데, 다들 시즌이 끝났다며 받아주질 않았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홍군처럼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소규모 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규모가 있는 업체의 경우 현장실습생을 잘 받지 않기도 한다. ㄱ군은 “학생들이 가면 주5일 근무 및 업무 내용이 정해져 있어 여러 복잡한 조건들을 지켜야 하니 업체 사장님들이 귀찮아하는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학교가 양질의 일자리를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방식이 아니라, 학생이 먼저 실습이 가능한 업체를 알리고 학교가 이를 허락하는 구조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엄격한 기준에 따른 실습업체 선정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홍군의 학교 선배 ㄷ군은 “자격증을 다 땄지만 실습을 보내주진 않고, 알음알음 주변 연줄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아 답답했다”고 전했다. ㄷ군은 결국 현장실습을 못하고 졸업했다. 취업은 이듬해에 할 수 있었다.

지난 9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현장실습생 고 홍정운군의 추모식에 홍군의 친구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모여 있다. 여수/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지난 9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현장실습생 고 홍정운군의 추모식에 홍군의 친구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모여 있다. 여수/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어렵게 현장실습생으로 업체에 들어가도 장시간 업무에 시달리기도 한다. 홍군 가족과 그의 친구들은 홍군 역시 아르바이트를 할 때부터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는 날이 많았다고 전했다. 학교에서 지정한 실습업체가 장시간 노동을 지시해 학생들이 이를 거부한 사례도 있었다. ㄱ군은 “학교에서도 업무 시간을 지켜주지 않거나 안전하지 않은 일을 시키면 바로바로 이야기를 하라고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추천한 일부 업체는 최저임금을 주면서도 늦게까지 퇴근을 시켜주지 않고 수당도 주지 않는 곳이라 친구들 모두 꺼려했다”고 말했다.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홍군이 다닌) 학과는 신설 학과인데, 직업계고들이 장기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유망해 보이는 과를 만드는 문제도 있다. 지자체와 충분한 논의 뒤 현장실습 인력 배치가 가능한 수준으로 학생들을 받아야 한다.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학생들은 현장실습이 아닌 일반 노동자처럼 일을 하게 된다”고 했다.

여수/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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