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위즈덤센터에서 이은주 박사가 WPI 성격 유형 공부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위즈덤센터에서 이은주 박사가 WPI 성격 유형 공부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등학교 입학 뒤 첫 학기. 공부를 곧잘 하던 민지(가명)는 중압감을 심하게 느꼈다. 부모는 속을 끓이다 아이에게 공부 좀 하라며 몇 마디 던졌다. 아이는 ‘공포자’(공부를 포기한 자)를 선언하며 심지어 대학에 안 간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걱정스럽기만 하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이던 제석(가명)이는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좋아하게 됐다. 엄마는 반가운 마음에 학원을 찾아주고 관련 책이나 활동도 추천해줬다. 고마워할 줄 알았던 아이는 오히려 시큰둥해하면서 안 한다고 했다.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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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우리 아이가 이렇다’고 확신하지만 그건 부모만의 생각일 때가 많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아이 반응에 어찌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사례로 소개된 민지는 ‘로맨티스트’(로맨티시스트) 유형이다. 이 아이는 부담이나 압박감을 크게 느끼는 성향이다. 아이가 공부를 안 하는데 엄마가 지켜보기 힘들다고 무작정 잔소리를 하면 안 된다. 공부 방법을 함께 찾거나 길을 제시해주는 등 구체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

그에 반해 제석이는 ‘아이디얼리스트’ 유형이다. 자기 스스로 공부할 생각을 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아이가 입을 떼기 전 먼저 다그치거나 엄마가 알아서 해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는 아이는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스스로 개척해가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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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자인 이은주 박사의 분석이다. 최근 책 <공부, 삽질하지 마라!>를 펴낸 그를 6일 서울 강남구의 위즈덤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현재 센터에서 ‘청소년 자아발견 캠프’와 ‘아이를 살리는 WPI 공부법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있다.

남편인 심리학자 황상민 박사와 함께 쓴 이 책은 ‘WPI’(Whang’s Personality Inventory)라는 이름의 도구에 따라 성격 유형에 맞춤한 공부법을 알려준다. WPI는 한국인의 성격 및 라이프스타일을 진단해주는 도구다. 황 박사는 10여년에 걸쳐 큐방법론이라는 연구 방법을 사용해 이 도구를 개발했다. 큐방법론은 인간의 주관적 영역, 가령 태도·신념·확신·가치 등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방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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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I는 자기 평가와 타인 평가로 진행한다. 타인 평가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스스로 알아보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내가 듣고 싶은 말, 원하는 말을 기억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WPI는 상대평가 방식으로 ‘리얼리스트·로맨티스트·휴머니스트·아이디얼리스트·에이전트’ 유형 가운데 상대적으로 높은 유형을 찾는다. 스스로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통해 ‘진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보통 아이들은 성적이 좋은 친구의 노트필기법이나 공부 습관 등을 그대로 따라 한다. 부모도 공부법 책을 찾아본 뒤 공부 잘하는 아이가 다니는 학원이나 참고서를 자녀에게 무작정 들이민다. 하지만 우리 아이한테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 박사는 “자신에 대해 정확히 모르면, 자기 행동이 맞는지 확신을 갖기 어렵다. 스스로 성향을 잘 파악하는 것이 단순히 공부 방법뿐 아니라 동기부여가 되는 부분을 찾는 것, 마음이나 생활 관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아이들이 머리가 안 받쳐주는 게 아니라 ‘마음이 안 따라줘서’ 즉, 자기 마음이나 행동을 제대로 몰라서 공부를 효과적으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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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책을 쓰게 된 계기도 아이들을 대하면서 느꼈던 어려움 때문이었다. 네 자녀를 키우는 그는 개성이 넘치는 아이들과 각각의 ‘맞춤형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똑같은 얘기를 해도 한 아이에게는 먹혔던 말이 다른 아이한테는 안 먹혔다. 자기가 알아서 하는 애는 오히려 도와주는 게 독이 됐다. 기다림이 필요했던 아이에게 성질 급한 내 마음대로 밀어붙였더니 서로 힘들었다.”

WPI를 적용해 아이들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한 뒤 이씨는 자녀와의 대화는 물론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두려움이 많고 꼼꼼한 아이는 빨리빨리 서두르기보다 격려해주고 필요할 때 도움을 줬다. (부모 입장에서) 2% 부족하다 느꼈던 아이는 스스로 몰입해 달려들기 전까지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기만 했다.

흔히 성격은 인성과 관련 있다고만 생각하기 쉽다. 오히려 뇌과학이나 다중지능 등이 인지 능력과 연결돼 학습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성격 유형도 공부 습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미국에서 교육과정을 전공할 당시 이씨는 논문을 쓰면서 학습부진 아이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짜서 운영했다. 학습 측면보다 아이들이 가진 강점과 약점을 파악한 뒤 공통적인 특징을 끌어내 프로그램을 구체화했더니 한 달 만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 사례와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성향과 학습법을 연결시킨 WPI 성격 유형 공부법을 만들게 됐다.

부모와 아이의 성향이 다른 경우, 일방적으로 아이의 스타일에만 맞춰 대하기가 쉽진 않을 거 같다. 오히려 아이는 자신의 성향대로 가려고 하는데 부모가 그걸 잘 모르고 태클을 걸기 십상이다. 책에서는 부모가 스스로 자신의 유형부터 알 수 있도록 설명하는 부분도 있다. 저자는 “보통 아이들은 어리고 서툴러서 부모한테 맞추기 힘들지만 부모는 가능하면 아이에게 맞추려 한다. 실제 학부모들과 워크숍을 하면 ‘내 자식인데 그동안 잘 모르면서 어설프게 맞추고 잘 안되면 야단만 쳤다’며 우는 부모도 있다”고 했다.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아이의 변화를 끌어낸다. 특히 부모가 말 한마디만 잘해도 아이에게는 긍정적인 동기부여나 에너지를 줄 수 있다. 애초 부모를 염두에 두고 책을 썼지만 아이들에게도 실질적 도움이 된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그에 맞는 공부 습관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