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 역사교과서를 28일 끝내 공개했다. 박정희 정권의 성과를 강조하고 친일파의 친일 행적을 축소하는 등 편향된 서술이 드러나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여러 종류의 역사교과서가 있지만 대부분이 편향된 이념에 따라 서술되어 있는 등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했다. 현장검토본은 완성본에 앞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제작하는 시안 형태의 교과서다. 교육부는 이날 중학교 <역사 1> <역사 2>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등 총 3권의 국정교과서를 공개했다.

이 부총리는 이날 교과서를 공개하며 “역사적 쟁점에 대해 균형 있게 서술했다”고 밝혔지만, 역사교과서에는 그동안 역사학계와 교육계에서 우려한 대로 뉴라이트 계열의 ‘건국 사관’을 수용하고 박정희 정부에 긍정적인 서술을 늘리고 친일파에 대한 기술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노동자 관련 서술은 대폭 줄이고 재벌 회장의 업적은 상세히 기술하는 친기업적 성향도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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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박정희 유신체제의 그늘보다는 성과를 강조하는 데 무게를 뒀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 260~269쪽까지 무려 10쪽에 걸쳐 박정희 정권을 자세히 설명하며 ‘공’을 부풀린 경향이 뚜렷했다. “정부는 수출 진흥 확대 회의를 매달 개최하여 수출 목표 달성 여부를 점검하는 등 수출 증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제1, 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기간에 수출은 연평균 36%로 급격히 늘어났다. 박정희 정부는 지속적인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 연구 개발에 대한 중장기적인 투자와 지원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다양한 과학 기술 진흥 정책을 수립하였다” 등과 같은 서술이 대표적이다.

특히, 중학교 <역사 2>에는 박정희 정부가 1963년 제작해 배포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도표’까지 상세히 실었다. 이 도표에는 새로 건설될 철도와 도로, 분야별 주요 생산 목표, 보건 가족 계획, 국토 건설 현황 등이 그림과 그래프로 표현돼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5·16 쿠데타 세력이 내세운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로 시작되는 6개 항목의 ‘혁명 공약’까지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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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도 자세히 담았다. 고등학교 한국사 268쪽에는 “유신 체제 유지에 이용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면서도 “새마을 운동은 근면, 자조, 협동 정신을 강조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도로 및 하천 정비, 주택 개량 등 농촌 환경을 개선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13년 유네스코는 새마을 운동 관련 기록물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였다”라고 서술했다.

반면, 유신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부분은 짧막하게 서술하는 데 그쳤다. 고등학교 한국사 265쪽에는 ‘유신 체제의 등장과 중화학 공업의 육성’이란 제목 아래에서 “유신 헌법은 명목상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및 노동 3권 등 사회적 기본권 조항들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기본권들은 대통령의 긴급 조치에 의해 제한되었다”라고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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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기술 부분은 대폭 축소됐다. 중학교 <역사 2>에는 친일파에 대한 내용은 단 10줄에 불과하다. 친일인사도 이광수, 노천명, 최린만 실명을 들어 설명했다. 고등학교 한국사에서는 ‘친일파’ 대신 ‘친일 인사’ ‘친일 세력’으로 기술했다. 친일파의 친일 행적도 “이광수, 박영희, 최린, 윤치호, 한사룡, 박흥식 등 많은 지식인, 예술인, 종교인, 경제인이 친일 활동에 앞장섰다”라고 기술하며 이들 저마다가 구체적으로 어떤 친일 행위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뭉뚱그려 “징병 권유, 친일 단체 좌담회 적극 참여” 등으로 설명했다.

반면, 현행 검정교과서 가운데 금성출판사 한국사 내용을 보면, “이광수나 최남선과 같은 저명한 문인들은 조선 민중들에게 징병과 학도병에 지원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등 자신들의 문학적 재능을 조선 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게 하는 데 이용하였다. 홍난파와 현제명 등은 일제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는 노래를 작곡하였고, 김은호와 김기창 등은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는 그림을 그렸다.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을 비롯한 친일 자본가들은 국방 헌금을 내거나 비행기와 무기를 구입하여 일본군에 헌납하였다” 등으로 각각 인사들의 친일 행적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놓았다.

그동안 가장 쟁점이 돼온 1948년 8월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됐다. 이준식 부총리는 “대한민국은 어느 한 순간에 세워진 것이 아니고 1919년 3·1운동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독립과 건국을 위한 모든 노력이 광복을 거쳐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완성됐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뉴라이트 등 보수 일각에서 꾸준히 주장해온 건국사관으로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반헌법적 시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1948년 이전의 임시정부와 항일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퇴색시키고 친일 세력까지 건국 공로자로 인정해 친일파에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주의’란 단어를 ‘자유 민주주의’로 바꿔 쓰는 뉴라이트 사관도 국정 역사교과서에 그대로 담겼다. 중학교 역사2 136~137쪽에는 ‘자유 민주주의는 전쟁의 페허를 딛고 어떻게 발전하였을까’라는 주제 아래 기술된 내용들을 보면 일관되게 ‘민주주의’가 ‘자유 민주주의’로 기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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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재벌적인 서술도 두드러졌다. 고등학교 한국사 267쪽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이 서술돼 있다. 유일한 유한양행 설립자와 이병철, 정주영 회장 등 3명을 설명했는데, 이 회장에 대해서는 “1980년대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여 한국이 정보산업 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하였다”라고 쓰고, 정 회장에 대해서는 “대규모 조선소 건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영국 투자 은행에 보여주며 ‘우리는 이미 1500년대에 철갑선을 만들었다’라고 설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 재벌 회장이 역사교과서에 실명으로 등장한 경우는 드물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