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고 임성철 교사는 체육수업 시수를 늘리자는 취지의 ‘5·4·3 운동’을 제안했다. 사진은 원종고 학생들이 체육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임성철 교사 제공
원종고 임성철 교사는 체육수업 시수를 늘리자는 취지의 ‘5·4·3 운동’을 제안했다. 사진은 원종고 학생들이 체육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임성철 교사 제공

일반사회를 전공한 중학교 교사 김아무개씨는 수업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사회> 교과서 안에 지리 영역을 가르치거나 역사 수업을 맡는 등 본인의 전공이 아닌 과목을 가르치게 되면 막막함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연수를 받거나 인강을 찾아 듣기도 한다. 그래도 해당 교과의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기보다 단편적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으로 가르칠 때가 많다. 나도 역사를 좋아하지만 교과서의 내용을 뛰어넘어 전반적인 역사 인식을 돕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역사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번은 역사에 관심 많은 아이가 어려운 질문을 해 당황한 경우도 있었다.”

그는 “매 학기 초 교재연구는 하지만 비전공 과목을 가르칠 때 개념 위주로 설명할 뿐 프로젝트성 활동까지 하기엔 무리”라고 말했다.

광고

일반사회·지리 영역 섞인 <사회>
한 교사가 수업 맡는 상황
교사들 “전공 아니라 진행 어렵다” 토로
국·영·수 주요과목에 비해
체육은 수업시수 턱없이 부족
건강하게 공부할 아이들 위해
“체육 제대로 하자” 목소리도

현재 중학교 사회과 교육과정은 <사회>, <도덕>, <한국사>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사회>는 ‘일반사회’와 ‘지리’ 영역이 각각 절반씩 차지한다. 1, 2권 모두 1단원부터 7단원은 지리, 8단원부터 14단원은 일반사회 영역이다. 일반사회나 지리, 역사 등을 전공한 교사가 이 교과서로 1년간 수업한다. 그렇다 보니 김 교사처럼 본인이 전공하지 않은 영역을 가르칠 때는 쉽지 않다.

광고
광고

교사는 수업을 직접 진행한다. 하지만 정작 교육 내용을 결정하거나 수업시수를 조정할 권한은 없다. 교육과정 개정 공청회에 참석하거나 따로 의견서를 제출하는 정도로 참여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정책들이 실제 교육 현장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교사들은 교육과정 수정 등을 이유로 관련 캠페인을 진행하거나 직접 이의제기를 하기도 한다.

한충렬 전국지리교사모임 회장은 “교육과정이나 대단원 구성은 ‘일반사회’와 ‘지리’로 나눠 개발해놓고 정작 <사회> 교과서 내용에서는 이를 뒤섞어버렸다. 결국 비전공 교사가 모든 내용을 가르치도록 하는 게 현재 구조”라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반쪽짜리 교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광고

“자신이 전공한 영역에 대해서는 학생 눈높이에 맞춰 내용을 정확하고 흥미롭게 가르칠 수 있지만 전공하지 않은 영역은 주입식이나 암기식으로 가르치기 쉽다. 영역별 분권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전국지리교사모임은 지난 9월1일부터 열흘간 총 592명의 전국 사회과 중등교사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약 96%의 교사들(공통사회 95%, 일반사회 91%, 지리 97%)이 영역별로 교과서를 나눌 것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지리를 전공해 <사회> 교과를 가르치고 있는 윤신원 교사(성남고)는 “교과서에 세부 과목 표시가 따로 없다 보니 동료 교사나 관리자도 <사회> 교과에 지리 영역이 포함된 걸 모르는 경우가 있다”며 “같은 교사 입장에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실제 본인이 전공하지 않은 과목의 시험문제를 출제해 오류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전공자와 비전공자에 따라 수업 내용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교과에 대한 학생들의 호감도나 이해 정도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광고

서울 당산서중에서 <사회> 교과를 맡고 있는 박정애 교사는 “교과서의 어느 부분부터 가르칠지는 담당 교사의 재량이다. 자기가 어떤 걸 전공했느냐에 따라 가르치고 싶은 단원을 강조하고 나머지는 대충 가르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리 영역에는 자연과학 부분이 포함돼 있다. 가령, 교과서에 ‘우리나라의 울릉도와 독도에 눈이 많이 온다’는 내용이 나온다. 지리교사는 그 원인에 대해 지형의 특성과 바람의 방향 등을 끌어내서 학생들의 이해를 돕겠지만 비전공자의 경우 ‘독도에 눈이 많이 온다’고 외우고 끝나는 식일 것이다.”

교육과정에는 교과서 내용 구성이나 과목 편성도 포함되지만 수업시수도 중요한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업시수와 관련해서는 이른바 주요 과목이라 불리는 국·영·수 위주로 시간이 몰려 있다는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다. 음악·미술·체육 등이 주요 과목에 비해 그 시수가 턱없이 부족하거나 그나마 있는 수업마저 파행 운영되는 사례가 많아 논란이다.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원종고 임성철 교사는 얼마 전 대한체육회가 연 ‘여학생 체육 활성화 포럼’에서 ‘5·4·3 운동’을 제안했다. 이 운동은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일주일 5시간, 중학교는 4시간, 고등학교는 3시간으로 체육수업을 의무화하자는 내용이다.

현재 초·중·고 체육교과 수업시수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주당 3시간, 중학교는 1개 학년은 주당 2시간, 2개 학년은 주당 3시간(스포츠클럽활동 제외), 고등학교는 1개 학년은 주당 1시간, 2개 학년은 주당 2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임 교사가 이 운동을 제안하게 된 것은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뛰어놀 권리’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에 있다 보니 청소년 자살률도 높고 학교폭력이 심각하다는 걸 느끼게 됐다. 경쟁구도 속에서 학업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사는 아이들이 힘겨워 보였다.

“우리 아이들은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입시에 매여 국·영·수 중심의 수업을 한다. 특히 인문계고나 특목고가 심하다. 오히려 체육수업 시수를 줄여달라고 하거나 그나마 있는 수업도 자율학습 시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그는 ‘좋은체육수업나눔연구회’라는 모임을 통해 수업 사례를 나누고 온라인 카페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5·4·3 운동’을 알리고 있다. 원종고 2학년 김수진양은 “우리는 체육 관련 방과후 프로그램이 있고 교내 스포츠대회도 연다. 고등학교치고는 스포츠 활동이 많은 편이라 다른 학교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체육활동이 신체 성장은 물론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정서나 인성 발달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임 교사도 이런 효과를 느끼고 학교생활기록부에 학생들의 변화를 꼼꼼히 적는다. ‘체육교과 세부특기사항’이나 ‘스포츠클럽활동’ 항목 등에 ‘교내 학급대항 축구대회에서 학생심판을 맡았는데 공정한 경기 진행으로 대회를 원활하게 치르는 데 기여했다’는 내용을 적는 식이다. 아이들이 협동심을 발휘하며 단체 활동에 성실히 참여하고 본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임 교사는 “미국이나 캐나다, 일본은 방과후에 보통 두 시간씩 스포츠클럽활동을 한다. 하버드대나 외국의 우수 대학은 신입생을 선발할 때 체육활동 내용을 중요한 요소로 본다”며 “스포츠클럽활동을 열심히 한 학생이 건강하고 집중력이 높으며 리더십이나 배려심 등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 역량을 잘 갖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4·3 운동’을 이야기하면 ‘체육교사 밥그릇 키우려는 거냐’는 시선으로 보는 이도 있다. 이 캠페인의 목적은 인간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주장에 좀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의 표정을 본다면, 이 운동의 필요성을 바로 깨달을 것이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