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우(61)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동아시아의 역사 갈등과 역사 왜곡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학자다. 고구려연구재단(이후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통합) 설립에 관여했고 고등학교 동아시아 과목을 신설할 때 시안 개발에 참여했다. 특히 고구려연구재단 설립 논의가 한창이던 2003년말~2004년초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안 교수의 기억 속 황 부총리는 백가쟁명식으로 분출하는 의견을 종합해 고구려연구재단 설립 결론을 이끌어낸 탁월한 조정자였다.

안 교수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논란 와중에 ‘황 부총리에게 보내는 편지’를 떠올린 건 그래서다. 안 교수는 학문과 정치가 전면 대립하고 있는 국정화 갈등 국면에서 황 부총리의 ‘정치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역사 문제를 함께 고민한 소중한 인연을 지렛대 삼아, 황 부총리한테 국정화만은 안 된다는 뜻을 전하려는 이유다. <한겨레>는 기고문 대신, 14일 경기도 오산 한신대 캠퍼스에서 안 교수를 인터뷰했다.

광고

권력을 장악한 정권의 생각대로전국민 교육시키겠다는 것은 야만황 부총리 조정자 역할 발휘해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결정 내리길역사엔 영광·치욕 공존하는데한·중·일 영광만 가르치려 해 문제

-2006년 3월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국정제 폐지 발표는 환영할 일이며, 이 기회에 교과서의 성격도 변하기를 희망해 본다”고 쓰신 적이 있다.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다시 국정제 전환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광고
광고

“현재의 역사 갈등, 국정화 갈등은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아니다. 역사학계에서 국정 교과서는 학문적 기반이 아주 취약하고 논쟁거리도 아닌데, 정치가 학문을 억압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형국이다. 그런 면에서 ‘학문과 정치의 대립’이다. 예전에 ‘문명과 야만’으로 각 나라들을 양분해서 설명한 시절이 있었다. 그런 구분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문명의 시대에서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듯한 느낌이다. 인류가 발전해온 과정을 보면, 민주주의는 가장 발달한 문명인들이 만들어낸 제도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다원성이다. 학문과 교육의 영역에서 권력을 장악한 정권의 생각에 따라 전국민을 교육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야만이다.”

-일부에선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 때 진보 진영이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반론하는데.

광고

“역사 해석에 용납될 수 없는 범주가 있다. 다원성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역사를 해석할 때 기준으로 삼아야 할 가치들이 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자유, 평화, 그리고 민족사는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해야 하고 민주사회에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런 기본적 가치와 관점을 무시하면 그건 전혀 다른 전체주의 역사교육을 하자는 얘기다. 교학사 교과서가 그랬다.”

-고구려연구재단 설립 때 황 부총리의 역할을 설명해달라.

“중국의 동북공정 탓에 온 나라가 ‘고구려사 지키기’로 시끄러웠다. 정부는 역사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를 설립하기로 했고, 교육위원이던 황 부총리가 국회 공청회를 개최했다. 설립 방식과 연구 범위 등을 놓고 의견이 다양했는데, 사회자인 황 부총리가 모든 의견들을 종합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모습에 감탄했다. 그 토대 위에서 2004년 중국의 역사 왜곡에 학술적으로 대응하는 고구려연구재단이 설립됐다. 황 부총리는 일본 역사 왜곡에도 관심이 많다. 2010년 황 부총리가 하루 일정으로 일본 중의원 의장을 예방해 미래를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정중하게 역설했다.”

-황 부총리가 국정화 국면에서 어떤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는가?

광고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해온 과거 활동으로 미뤄볼 때 황 부총리는 인권과 민주, 평화를 지향하는 역사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분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우리 역사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역사를 통해 인류가 배워야 할 보편적 가치는 일본, 중국, 한국 모두에 통용되는 것이다. 모두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고 교육해야 체득할 수 있는 가치들이다. 황 부총리가 역사에 부끄럽지 않을 결정을 내리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중국, 일본의 역사왜곡과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 교과서의 공통점을 짚어달라.

“크게 보면 민족주의의 과잉이다. 역사교육을 통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겠다는 건데, 자국사에서 그런 측면이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으로만 여기게 될 때 우리가 역사에서 얻을 교훈의 상당 부분을 놓치게 된다. 역사엔 영광과 치욕이 공존하는데,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눈을 키워주는 게 역사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다. 한·중·일 세 나라는 영광스러운 역사만 가르치려는 문제가 있다.”

-국정 교과서가 현실화됐을 때 가장 크게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

“역사 교과서 문제는 역사 서술과 교육에 관한 문제이자 표현과 언론의 자유에 관한 문제다. 이런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하는 창조경제는 없다. 창의성은 자유와 다양성 속에서 경쟁하며 길러진다. 국정 교과서가 오래가지는 못하겠지만 그 교과서로 배운 세대는 결국 사상과 언론의 자유 측면에서 ‘잃어버린 세대’가 될 것이다.”

오산/전정윤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