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파란 하늘)
낮(파란 하늘)

“흑역사가 영원히 저장될 일은 없겠네요.”

지난달 18일, ‘하루’(www.harooo.com)라는 이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글이다. 흑역사는, ‘검은’을 뜻하는 한자 흑(黑)에 ‘과거의 일’을 뜻하는 한자어 역사(歷史)가 합쳐져 나온 말로 ‘감추고 싶은 과거’를 뜻하는 신조어. ‘이준’이라는 이용자가 올린 이 글은 ‘하루’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해준다. ‘하루’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기 올라온 글은 기본적으로 24시간 동안만 남고 지워진다. 아쉽다면 글 하단에 있는 ‘오호라’를 클릭하면 된다. 한 번 누를 때마다 글이 머무는 시간은 24시간씩 늘어난다. 지난달 28일 오후 기준, 이 글은 396시간 더 남을 수 있게 됐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호라’를 클릭했다는 뜻이다.

“게시한 글을 하루 동안만 볼 수 있게 하는 에스엔에스를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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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발한 생각을 실제 구현한 이들은 이제 막 고교 입학식을 마친 박성범, 윤형근(경기도 이우고)군이다. 두 친구가 이런 에스엔에스 개발을 구상한 건 지난해 1월25일. 이우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던 때였다. 0시12분경, 모바일 메신저 ‘라인’으로 수다를 떨던 중 박군이 먼저 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던졌다.

“페이스북 등을 이용한 지 3개월 정도 됐을 때였어요. 광고성 글 등 필요 없는 정보들이 넘치고 계속 쌓이는 게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죠. 수업시간에 온라인 시대의 ‘잊혀질 권리’(인터넷에 올린 개인의 사진이나 글, 신상 정보 등을 삭제하거나 영원히 파기하도록 요청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를 에스엔에스에 반영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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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졸업작품 준비도 해야 했다. 이우중에서는 졸업 때 분야를 막론하고 1년 동안 자신만의 연구, 활동 등을 한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이 아이디어로 졸업작품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에 약 2만원 하는 도메인을 샀다. 기획을 시작했고 누리집 디자인도 다양하게 시도했다. 프로그래밍을 좋아하긴 했지만 전문가 수준은 아니었다. 작업을 하면서 막히는 대목도 있었다. 머릿속으로 구상한 것들이 구현이 안 될 때는 책, 인터넷, 학교 컴퓨터 담당 교사 등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그렇게 10개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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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정보 넘치는 온라인 하루만 볼 수 있게 할 순 없을까 책·인터넷·선생님 도움받아 개발 개설 석달새 회원 1400명 넘어

‘하루’가 공식적으로 문을 연 건 졸업전이 열린 지난해 12월9일. 그 이후로 석달이 지났다. 지난달 28일 기준, 회원 수는 1400명으로 부쩍 늘었다. 이 가운데 약 150명이 두 친구의 지인이고 나머지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어림짐작으로 이용자들 가운데에는 직장인이 꽤 많은 것으로 추정한다. ‘shinPD’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이용자는 “성북동 사는 IT개발자 아저씨인데 용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응원의 댓글도 남겼다.

지난달 18일에서 20일 사이, 사이트가 마비되는 사건도 일어났다. 한 온라인 매체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학교 선배 김윤수(이우고 3년)군이 두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쓰면서 사람들의 방문이 폭주했다. 5일 기준, 사람들이 ‘오호라’를 많이 눌러 가장 오랜 시간 게시되고 있는 글은 김군이 쓴 기사 소개 글이었다. 이어 “하루 개발자님들이 오늘 이우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축하해주세요! 축하해! 형근아, 성범아!”라는 따뜻한 축하의 글도 오래 게시되고 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오호라’가 많이 붙은 글은 페이스북에서 ‘좋아요’가 많이 붙은 글 이상의 의미다. 단순히 ‘좋은 글’이라는 의미를 넘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게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글이기 때문이다. 박군은 “‘오호라’가 얼마나 달렸느냐가 그 글의 가치를 말해준다고 보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하루’의 또 다른 특징은 타임라인이 ‘광장’과 ‘친구들’로 구분된다는 점이다. ‘광장’에서는 ‘하루’를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의 글을 볼 수 있고, ‘친구들’에서는 친구 맺은 사람들의 글만 볼 수 있다. 비교적 가까운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는 오랫동안 저장해두고 싶은 마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뜻에서 ‘친구들’에 게시되는 글은 영구적으로 남게 했다. 페이지에는 상업광고도 없다. 두 친구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광고를 유치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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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두 친구는 ‘하루’를 개발한 일 말고도 함께 프로그래밍 작업을 해본 경험이 또 있다. 아이들이 학교 도서실 컴퓨터를 이용해 게임을 하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도서실 담당 교사에게 허락을 받고 게임이 실행 안 되도록 차단하는 작업도 해봤다. 물론 ‘하루’를 만든 소감은 그때보단 더 특별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본 도전 가운데 가장 큰 도전이었죠. ‘하루’는 보완할 게 아직 많습니다. 보안에도 신경을 쓰고, 새로운 기능도 더 추가해보려고 해요.”(박성범군)

“머릿속으로 생각한 걸 실제 구현해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어요. 에스엔에스가 생기면서 직접 안 만나고도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이 생겼죠. ‘하루’를 매개로 더 많은 분들이 소통하게 됐으면 좋겠습니다.”(윤형근군)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