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선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정부 예산 400조원의 7%(28조원)로 노인, 장애인, 농·축산업 종사자 등에게 연 100만원을 지원한 뒤, 2단계로 기본소득을 전면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경선에서 이 시장을 꺾은 문재인 후보는 경선 직후 그를 만나 “기본소득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나가겠다”고 말했다. 재정 형편에 비춰 기본소득을 전면 도입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짚으면서도, 기초연금 인상이나 아동수당 도입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본소득 정책을 구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논의됐던 기본소득이라는 ‘정책 아이디어’가 대선이라는 정치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기초연금 인상과 아동수당 도입 등 문 후보의 약속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한 뒤 현실이 됐다.
한국에 기본소득이라는 제도가 처음 소개된 건 2000년대 초반께다. 2016년 서울시와 경기도 성남시가 각각 청년수당과 청년배당 정책을 시행하며 학계 중심의 기본소득 논의는 더욱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해엔 전남 강진군이 농가 7100가구를 대상으로 ‘경영안정자금’이란 이름으로 연간 70만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 4일 농민수당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 “무분별한 자유무역으로 농업·농촌의 기반이 무너지고 농민의 삶 자체가 존속하기 어려운 만큼, 농민 기본소득이나 농민수당의 필요성이 제기된다”며 “이런 측면에서 강진군의 농민수당 도입 사례는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9월부터는 문재인 정부가 처음 도입한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이 시행된다. 만 6살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 애초 정부는 보편적 수당으로 제도를 설계했으나, 지난해 국회 처리 과정에서 그 대상이 ‘소득 하위 90%’로 축소됐다. 청년수당이나 농민수당, 아동수당 등 특정 취약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했지만, 한국에서도 이미 사회수당의 형태로 기본소득이 움트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기본소득이 갖춰야 할 속성으로 보편성(모든 구성원에게), 무조건성(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성(생애 전 기간에 걸쳐), 현금성(시민들 스스로 소비와 투자의 내용을 결정하도록) 등을 꼽는다. 지금껏 시행된 국내 기본소득 관련 정책 중 이 ‘보편성’, ‘무조건성’에 부합하는 형태로는 성남시의 청년배당이 꼽힌다. 성남시는 2016년부터 성남에 사는 24살 모든 청년들에게 분기별로 25만원씩의 지역화폐(상품권)를 지급하고 있다. 노동 여부나 취업, 창업 노력 여부, 자산 등을 조건으로 하지 않았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가 청년배당 대상자 498명을 면담해 작성한 보고서(2016년)를 보면, “실질적 도움을 받았다”, “내 삶을 배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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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기본소득 논의가 좀 더 확대되려면, 효과를 제대로 검증하기 위한 정책실험이 활성화돼야 한단 지적도 나온다. 성남시와 서울시의 청년배당·수당 정책에 대한 평가가 아직까지 ‘미담’ 수준에 그치는 것도 처음부터 ‘실험군’과 ‘대조군’을 두고 장기적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으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초 경제정책방향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한 신규 정책 도입을 목표로 ‘폴리시 랩’(Policy-lab)을 검토한다고 발표했지만, 아직까지는 검토 단계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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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랩2050 대표는 “지방정부가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려면, 처음부터 정책을 실험으로 설계해야 보편적 정책으로 확대할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며 “지방정부가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 등이 나서 예산과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