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서 은촛대와 은그릇을 훔쳐 달아난 장발장을 새사람으로 만든 것은 미리엘 신부의 용서였다.
일탈행위로 법정에서 ‘6호 처분’을 받은 소녀들의 집 마자렐로센터에도 그런 수도자들이 있다.
새로운 아이가 센터에 입소하면 원장 수녀는 아이의 두 손을 잡고 가만히 이렇게 말해준다.
“수정(가명)아! 너는 우리 집에 온 귀한 선물이야.”
더러운 운동화, 입으로 물어뜯어 닳고 닳은 손톱, 어리바리한 두 눈동자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 생각해 보라.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붙잡혀서 재판을 받고, ‘나는 이제 어디로 갈까?’ 하며 얼마나 마음 졸아서 왔겠는가. 우리는 가장 먼저 그 오그라든 마음을 펴주어야 한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떠나는 아이 마음에 ‘그래도 여기 사는 동안은 따뜻했어’라는 추억을 담고 가도록 노력한다. 좋은 만남과 헤어짐보다 아프고 슬픈 사연이 많은 아이들에게, 그간 자신이 여기서 어떻게 살았든 퇴소할 때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자고 기회 있을 때마다 이렇게 되풀이해 말해준다.
“마무리를 잘 하고 떠나는 것을 뭐라고 하지요? 넉 자로 말한다면?”
“유종의 미요.”
아름다운 만남과 헤어짐은 떠나는 이만의 몫도, 남는 자만의 몫도 아니다. 서로의 세심한 배려를 통해 가슴에 피어나는 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현실은 외줄을 타는 광대처럼 위태위태하다. 어느날 민지(가명)가 자신의 화장품이 없어졌다며 당직 선생님께 달려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때 샤워를 마친 수정이는 젖은 머리를 타월로 감싸고선 스르르 나타나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공손한 말투로 선생님께 조언을 한다.
“선생님, 오늘은 소용없어요. 내일 오전에, 수업이 시작되면 그때 돌아야 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덧붙이는 말, “선생님 저어, 잠깐 1층 사물함에서 물건 좀 꺼내 올게요.”
1층 양호실에는 퇴소를 앞둔 수정이의 짐이 있었다. 한참 후 갑자기 수정이 행동이 마음에 걸린 당직 교사는 팀장인 미화 수녀에게 알렸다. 형사 콜롬보도 혀를 내두르는 미화 수녀의 직감은 재빨리 양호실에 놓인 수정이의 짐을 찾았다. 사과상자 위에는 검정 매직으로 수정이 쓴 글씨가 선명했다.
‘수정이 짐? 집에 갈 때까지 열지 마세요!!’
바보…. 노란 테이프를 뜯고 박스를 열어보니 잃어버린 민지의 화장품이 맨 위에 있었다. 급히 넣느라 숨기지도 못한 것이다. 그때부터 미화 수녀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퇴소 5일을 앞두고 이런 일을 저지른 수정이를 어떻게 할까?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면 그 순간은 자신의 소행을 인정할지 모르나, 센터를 떠나고 나서는 두고두고 기분 나빠할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게 수정이를 위해 가장 좋을까?
퇴소를 앞둔 수정이의 짐 속에민지의 잃어버린 화장품이 있었다“수정아, 민지의 화장품은누가 가져갔을까?”“진짜,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어요”수녀는 새로 산 화장품 겉에‘수정이 것’이라고 쓰고 편지를 넣었다‘수정이가 집에 가면서화장품이 필요했다는 것을 몰랐구나’하루가 지났다. 미화 수녀는 원장 수녀를 찾았다. 두 사람은 의견을 모아 친필 편지를 썼다.
‘수정이 동의 없이 짐을 열어봐 미안하다. 짐 속에 있는 화장품은 수정이 것이 아니기에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꺼냈다.’
미화 수녀는 수정이 짐 상자에 편지를 넣으며 생각했다. 아직 수정이가 퇴소하려면 나흘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그러니 기다려보자. 그 사이 잘못을 고백하면 너무 고맙고, 아니면 고백할 기회를 만들어줄 수도 있다.
사흘이 지나, 이제 퇴소하려면 이틀이 남았다. 수정이는 겉보기엔 평상심을 잃지 않고 잘만 지냈다. 미화 수녀와 원장 수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급해졌다. 결국 수정이 주위를 맴돌며 말을 흘렸다.
“수정아, 민지 화장품은 누가 가져갔을까?”
“진짜,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참, 안됐다. 그거 바를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을 텐데…. 그치?”
“글쎄 말이에요.”
원장 수녀는 그날 밤 아이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두 형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의 물건을 자주 훔친 형제가 살았는데… 동생은 버릇을 고치지 못했으나, 잘못을 뉘우친 형은 성실하게 살아 존중받는 인물이 되었다는….’
그러나 수정이는 꿈쩍하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 번 고백할 기회를 줬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니 고민이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간 수정이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달님도 별님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짐 속에 넣어 보낸 화장품. 짐 상자를 짠 하고 열어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리던 화장품은 온데간데없고 썰렁, 무슨 편지? 화장품과 바뀐 편지는 설사 금으로 사방을 떡칠했더라도 수정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원장 수녀는 미화 수녀와 함께 수정이의 짐 상자 테이프를 다시 뜯고 편지를 꺼냈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수정이는 떠난다. 미화 수녀와 원장 수녀는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화장품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센터에 돌아온 두 사람은 우선 새로 산 화장품 겉에 매직으로 ‘수정이 것’이라고 쓴 다음, 가장 예쁜 종이를 골라 포장을 했다. 그 위에 분홍 망사 끈으로 리본도 만들어 달았다. 포장을 끝낸 미화 수녀는 두 번째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수정아! 수정이에게 양해를 구하지 못하고 짐을 열게 되었단다. 네 것이 아닌 물건이 짐 속에 들어 있어서 꺼내느라 그랬어. 수정이가 집에 가면서 화장품이 필요했다는 것을 몰랐구나. 똑같은 상표는 못 구했으나 최대한 비슷한 것을 골랐단다. 6개월 동안 열심히 생활하고 퇴소하는 수정이가 대견하구나. 언제 어디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생활하길 바란다. 너 자신을 믿고 사랑하며 세상에 꼭 필요하고 좋은 사람이 되렴. -수정이를 사랑하는 마자렐로 가족이-’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딸을 데리러 수정 엄마가 도착했다. 원장 수녀와 미화 수녀는 며칠 동안 일어난 수정이 건에 대해 침묵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가출, 화장, 술, 담배, 절도, 본드 흡입을 한 딸과 지쳐 있는 엄마. 두 모녀가 새롭게 시작하려는 판에 모친의 실망을 막기 위해서다.
우리 모두는 수정이를 향해 이별의 손을 흔들었다. 그날 오후에는 ‘수정이 것’이라고 적힌 화장품이 담긴 상자가 발송되었다.
며칠 후 나는 미화 수녀에게 커피 한잔을 권하며 그때의 심정을 넌지시 물었다.
“수정이의 짐 박스를 여러 번 뜯으면서 속으로 생각했어요. 끝까지 희망을 붙잡아야 한다고요. 희망은 그 아이 것도 되지만 희망은 분명, 교육자의 몫이라는 것…. 그래서 몇 번 테이프를 뜯고, 파쇄기에 편지를 갈았지만 그러나 희망은 갈지 못했어요.” 어느덧 나와 미화 수녀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수정이의 꿈은 카지노 딜러입니다. 유혹이 많은 직업이지요. 그때마다 센터에서 이별했던 기억이 문득문득 수정이에게 나침반이 되길 희망합니다. 민지 화장품은 현재 물건보관함에 있습니다. 민지가 퇴소할 때 줄 계획입니다.
김인숙 수녀 clara212@hanmail.net
>>> 돈보스코 교육 방법
어떤 방식으로 교정을 하고 처벌을 할 것인가? 어떤 언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교육자 돈보스코는 이 문제에 관해 분명하고도 명백한 규칙을 제시합니다. 그는 화난 목소리, 거만한 태도, 비웃는 행동을 엄금했습니다. 창피를 주거나 화나게 만들 수 있는 언어는 더욱더 금했습니다.
“마음을 흥분시킨다거나 모욕적인 언사는 내뱉지 마십시오. 현재에 대해서는 많이 공감해주고, 미래에 대해서는 희망을 주십시오. 이것이 참다운 교육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는 또 교육자들에게 부탁합니다.
“아이들이 좋은 느낌을 가지고 기숙사를 떠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먼 훗날 우리의 친절을 기억할 것이며 자신의 행동을 고치게 될 것입니다.”
김인숙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