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수경 스님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 대표 문규현 신부가 길 위에서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고 있다. ‘사람과 생명,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지난 4일 전남 구례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한 지 18일로 15일째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구례를 못 벗어나고 있다. 오체투지란 이마와 사지를 땅바닥에 닿게 절하는 수행법이다. 나이 60이 넘은 두 수행자에겐 무리다. 그런데도 이들은 달팽이처럼 기어서 계룡산과 임진각을 거쳐 묘향산까지 가겠다고 한다. 이들은 왜 이런 고행을 자처하고 나선 것일까.
지난 17일 오전 전남 구례군 산동면 19번 국도. 멀리서 30여명의 오체투지 순례단이 보인다. 땅바닥에 온전히 몸을 던져버린 두 수행자 위로 길라잡이인 명호(생태지평연구원)씨와 지관(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 스님의 초췌한 모습이 먼저 눈에 띈다. 아스팔트에 반사된 햇살이 가슴을 비수처럼 파고든다. 예부터 봄 햇살엔 딸을 보내고, 가을 햇살엔 며느리를 보낸다고 했던가. 그 햇살에 달궈진 아스팔트에 온몸을 밀착시킨 두 수행자의 거친 호흡이 신음이다. 땅바닥에서 일어선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은 마치 옷 입은 채로 물속에 들어가 세례를 받은 것처럼 흠뻑 젖어 있다.
순례단은 이렇게 채 100미터를 못 가고 멈춘다. 무릎이 고장난 수경 스님은 엎드리고 일어설 때마다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는다. 그는 2003년 새만금간척사업에 반대하며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문규현 신부와 함께 한 삼보일배 때 무릎 관절에 이상이 생겨 수술까지 받아 지팡이를 짚은 채 걸어야 했다.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는 수경 스님의 얼굴색이 샛노랗다. 동생 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의 여정을 동영상에 담느라 하루 24시간 동행하는 문정현 신부는 “눈을 뜨고 볼 수 없다”며 눈시울을 적신다. 지관 스님과 명호씨는 “두 분은 고행이지만 지켜보는 사람에겐 고문”이라고 말한다.
잠시 휴식으로 수경 스님의 혈색이 조금 돌아온 듯하자 다시 시작이다. 아침 8시에 시작해 3시간 반을 달려왔지만 여전히 그 자리가 그 자리인 것만 같다.
점심시간이다. 두 수행자 앞에 주먹밥이 놓였다. 두 수행자는 주먹밥 하나를 먹고는 더는 먹지 못한다. 한 말도 더 쏟았을 수분을 보충하느라 물만 들이켤 뿐 밥이 넘어가지 않는 모양이다. 문정현 신부는 아우와 수경 스님에게 제발 하나라도 더 먹도록 권해 보지만, 둘은 더 먹으면 몸이 더 힘들다며 오히려 배고픈 게 낫단다.
점심 뒤 다시 기나긴 여정이 시작된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다. 노고단 고지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며 오체투지를 하느라 연신 구토를 해야 했던 때에 비하면 그나마 조금은 견딜 만하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을 뿐 이들에겐 오직 한 배 한 배만이 있을 뿐이다.
문정현-규현 신부는 이 땅에서 가장 억울하고 소외되고 힘든 사람들 곁을 지켜온 재야의 얼굴이다. 수경 스님은 불교계 시국법회추진위원장을 맡아 서울광장 집회를 막후에서 연출한 인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화문에서 물대포로 꺼진 촛불이 지리산에서 봉화로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수행자는 말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길을 간다”고. 두 수행자를 따르며 오체투지를 하던 한 참가자가 이심전심을 느낀 듯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우리들이 뽑은 것 아닙니까.”
수경 스님은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차별이 오히려 불자들을 깨어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며 “그런 면에서 이 대통령은 ‘반면(反面) 스승으로서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진정한 평화를 위해 공직을 망각한 이들의 차별과 편향은 반드시 시정되게 해야 하지만, 불교계가 이 대통령이 깔아준 이 마당을 단지 증오와 또다른 배타로만 끝내 무가치하고 의미 없게 만들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어나고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오체투지는 이 대통령과 공직자들을 깨우기에 앞서 자신과 불자들을 깨우는 몸짓이다.
문규현 신부에게도 오체투지는 십자가의 정신을 깨우는 몸짓이다. 이 고된 순례중에도 그는 매일 아침 5시30분이면 어김없이 미사를 드리며 기도로 하루를 연다. 문 신부는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거든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다”고 말했다. 우리 자신의 욕망을 놓지 않고서는 ‘명박 산성’도, 빈부와 종교의 차별도, 휴전선도 넘지 못하게 하는 ‘불통’의 장벽은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밤이면 신음으로 잠 못 이뤄 형을 아프게 하는 그의 고행은 약자보다는 권력의 편에, 빈자들보다는 부자들 편에, 자연과 조화보다는 개발과 성장의 편에 서려는 우리의 욕망을 일깨우는 종소리다.
욕망의 질주처럼 거대한 트레일러들이 굉음을 내며 두 수행자 옆을 달린다. 트레일러 타이어에서 튀어 날아온 돌멩이에 맞은 문규현 신부의 몸엔 다시 시퍼런 멍이 들었다. 이들은 차로 5분이면 갈 거리를 땅바닥을 기어 온종일 왔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이 이렇게도 먼 것일까.
달팽이처럼, 굼벵이처럼 신음 내며 기는 그들의 몸짓이 우리를 다시 ‘첫마음’에 세우라 한다.
구례/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전문과 동영상은 ‘조현기자의 휴심정’
(we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