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돈수와 돈오점수를 이렇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불교수행이나 선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으신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그 내용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양쪽 모두 그럴듯해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집니다.

안방에 가서 들으면 시어머니 말씀이 옳은 것 같고, 부엌에 가서 들으면 며느리님 말씀이 맞는 것이 바로 이 돈점(頓漸)이야기. 양쪽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모두 그럴듯합니다. 그래서 점점 더 헷갈리게 되니, 가히 그 자체로 화두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해서 나름대로 이렇게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돈오돈수>는 <깨달으면 더 이상 수행도 필요 없다>는 말이라 하니, 도대체 닦음을 뜻하는 ‘돈수’라는 말은 왜 붙어있어야 하는가? 그냥 ‘돈오’면 됩니다. ‘돈수’는 떼어버리고 ‘돈오’라고만 합니다. 성철스님의 말씀을 종합해 볼 때, ‘돈오’ 이전의 수행단계가 전혀 필요 없다고 하시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선 출가와 삭발부터.. 그리고 사찰에서의 이런 저런 모든 절차와 생활이 수행이 아니라고 할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돈오’ 이전에 깨달음을 염두에 두고 행하여지는 모든 몸짓과 마음가짐이 모두 수행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육조혜능 스님께서도 인가받기 전에 오조홍인 스님 회상에서 8개월 동안 방아를 찧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것도 수행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고, 근기가 남보다 수승하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전생에 그만큼 남보다 많이 닦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행 선근이 없다면 남보다 뛰어난 근기를 가지고 태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깨달음을 염두에 둔 이후의 모든 것을 수행으로 보게 되면, ‘돈오’ 이전에 수행이 없을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 수행이 없다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점수-->돈오’ 또는 ‘해오-->점수-->돈오’로 규정하면 좋겠지만 보조스님 쪽의 ‘돈오’가 문제입니다. 보조스님 쪽에서 말씀하시는 ‘돈오’를 성철스님 쪽에서는 ‘해오(解悟)’나 ‘점수’과정 어디에 놓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보조스님 쪽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제안을 해봅니다.

구경각 이전 ‘해오’에서 ‘구경각(究竟覺)’까지 사이에 열리는 깨달음(眼目)들을 <돈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철스님 쪽에서 주장하는 구경각의 경지인 ‘돈오돈수’는 <확철대오(廓徹大悟)>로 바꾸어 부르면 어떨까 합니다. 간단히 정리해보면

1) 해오 이전 : 불교입문, 교리공부, 기도, 각종 신행활동 등 정지작업(整地作業)단계
2) 해오(解悟) : 중도, 연기, 공의 명확한 이해
3) 점수(漸修) : 중도, 연기, 공을 체화하고 증득해 나가는 단계
4) 돈오(頓悟) : 점수과정에서 열리는 깨달음(眼目)들
5) 확철대오 : 더 이상 수행이 필요 없는 완전한 깨달음, 구경각(究竟覺)

여기서의 ‘확철대오’는 위에 열거한 어느 단계에서든지 단 한번의 ‘돈오’로 바로 ‘확철대오’할 수도 있음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옛 큰스님들께서도 여러 차례 거듭 깨달음으로서 ‘확철대오’의 경지에 나가셨다는 예도 많이 있으니, ‘돈오’는 일단 어느 단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최후 구경각의 경지로서의 <확철대오>와 <돈오>를 구별하고, 또 ‘돈오’를 ‘해오’로 몰아붙이지도 않으면 돈점(頓漸)논쟁과 수행자들의 혼돈은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든 아니 받아들여지든 상관없이...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렇게 정리를 한번쯤 해보고 자기공부 해 나가면, 자기의 공부 위치를 가늠하는데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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