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이사회가 청와대의 보도통제 외압의 당사자로 지목받아온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켰다. 이사회는 길 사장의 직무도 정지시켰다. 길 사장의 퇴진을 주장하며 파업을 8일째 진행한 두 노조는 “이사회 결정은 청와대가 낙점한 사장이 제작 자율성을 훼손해온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방송 이사회는 5일 “야당 추천 이사 4인이 제출한 길 사장 해임 제청안을 찬성 7표, 반대 4표로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해임의 주된 사유는 “정상적인 사장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청와대의 보도 외압 의혹 부분은 여당 추천 이사들의 반대로 정식 해임 사유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사회가 여·야 추천 7 대 4 구도이니 3명의 여당 추천 이사가 가결 쪽에 표를 던진 셈이다. 한 이사는 “표결 직전 길 사장이 이사회에 출석해 ‘허무맹랑한 소설’이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하는 최후 진술을 했다. 여당 추천 이사들 가운데 3명이 더 이상 이대로 갈 순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날 이사회를 통과한 해임제청안은 안전행정부를 거쳐 청와대에 전달된다. 이사회는 사장의 임명 및 해임 제청권만을 갖고 있고, 실제 임명 및 해임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해임안이 통과된 뒤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방송 이사회에서 보낸 관련 서류가 청와대에 도착하면 그때 내용을 검토해보겠다”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대통령이 이사회 결정을 거부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이사회는 9일 임시이사회를 한 차례 더 열어 사장 직무 대행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길 사장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지난달 9일 “청와대가 길 사장을 통해 보도를 통제했다”고 폭로한 뒤 그동안 회사 안팎의 강한 사퇴 압력을 받아 왔다. 한국방송 기자협회가 지난달 19일부터 제작 거부에 돌입했고, 양대 노조가 공조 파업을 벌이면서 메인뉴스인 <뉴스9>가 20분만 방송되는 등 방송파행이 이어졌다. 길 사장 해임 제청안 통과 소식이 나오자 두 노조는 바로 파업 중단을 선언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새노조)는 성명을 내어 “이사회 결정은 그 어떤 사장이라도 보도나 프로그램에 부당하게 개입할 경우 해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결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국장 직선제 등 제작자율성 확보를 위한 제도를 수용할지 여부가 후임 사장 선임 과정에서 적합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민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논평을 내어 “길환영 사장의 해임은 한국방송의 진정한 독립성 확보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며 “국회는 즉각적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국 김효실 석진환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