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구 회장은 물러나라”고 외치고 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장 회장의 편집국장과 부장단 인사를 ‘보복성 인사’로 규정하고
장재구 회장은 물러나라”고 외치고 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장 회장의 편집국장과 부장단 인사를 ‘보복성 인사’로 규정하고

6일 서울 남대문로 한진빌딩에 위치한 <한국일보> 편집국. 입구 옆 골방은 식물원을 방불케 했다. 지난달 29일 발령받은 편집국장과 부장단을 축하하려고 여기저기서 보냈지만 주인들 자리로 가지 못한 화분들이다.

하종오 신임 편집국장을 비롯한 화분 수취인 대부분은 편집국이 아닌 다른 층에 가 있었다. 편집국 기자들이 한데 뭉쳐 인사 철회를 요구하기 때문에 편집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기자들은 이번 인사가 사주인 장재구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편집국 구성원들에 대한 보복이라고 판단하고, 이날 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찬성률로 인사 철회를 결의했다. 기자들은 또 7일부터 이틀간 신임 편집국장에 대한 임명 동의 투표를 실시해 인사 철회 의지를 분명히하기로 했다. 이로써 경영권은 여전히 장 회장이 쥐고 있지만, 신문사의 핵심인 편집국은 이번 인사로 경질된 이영성 편집국장 등이 계속 지휘하는 ‘이중 권력’ 체제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60년 역사의 한국일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큰 내홍에 휩싸인 걸까? 한 편집국 고위 간부는 “우리의 목표는 회장을 몰아내는 것보다는 한국일보가 ‘중도 신문’으로서 예전처럼 정상화되는 것이다. 2년 동안이나 회장이 스스로 결단을 내리길 기다려줬지만, 돌아온 건 보복성 인사뿐이었다”고 말했다. 이 간부의 얼굴에는 사주 집안의 ‘형제 경영’이 불러온 만성적 경영 부실에 대한 피로감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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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를 통해 93.2%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인사 철회를 결의했다.  한국일보 노조 제공
투표를 통해 93.2%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인사 철회를 결의했다. 한국일보 노조 제공

1954년 고 백상 장기영씨가 창업한 <한국일보>는 오랫동안 ‘중도적’ 편집 방향을 표방하며 유력지로 불려왔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중앙 일간지 가운데 매출액 1위를 차지했다. 그러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국일보 구성원들은 “형제들끼리 경영권을 주고받으면서부터” 사세가 기울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오너 리스크’, 곧 사주와 사주 일가의 잘못이 회사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지적이다.

1980~90년대 번영기의 중심에는 회장인 고 장강재씨가 있었다. 창업주 장기영씨의 큰아들인 그는 20대부터 사장을 맡아 아버지와 함께 한국일보의 성공 시대를 일궈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1993년 간암으로 48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 회장은 장기영씨의 넷째 아들인 장재국씨였고, 둘째 장재구씨는 <서울경제신문>, 셋째 장재민씨는 <미주한국일보>, 다섯째 장재근씨는 <일간스포츠> 등으로 계열사들을 나눠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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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노조는 “그 뒤 장씨 일가가 주주 단기대여금 명목으로 회사 자산을 빼내갔고, 이는 돌이키기 어려운 부실 경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전국언론노조는 200억원 넘는 돈이 단기대여금과 가지급금으로 이들에게 갔다며 2001년 고발하고, 한국일보 노조도 이 무렵 두차례 파업에 들어갔다. 장재국 회장 때 한국일보 부채는 50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불었다. 그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거액을 빌려 도박을 한 사실이 밝혀져 외환관리법 위반죄로 처벌받기도 했다. 또 회삿돈 횡령죄로도 처벌받았다.

한국일보는 2002년 워크아웃을 통한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장재국 회장을 내치고 장재구 현 회장 체제로 변화를 꾀했다. 장재구 회장은 당시 최다 지분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500억원을 사재로 증자하겠다고 채권단에 약속했다. 그러나 장재구 회장 체제도 부실 경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는 2002년 전체 500억원의 증자대금 가운데 200억원을 낸 뒤로, 나머지 300억원을 2006년까지 4년 동안 10여차례에 나누어 냈다. 한국일보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자금력이 부족한 장 회장이 ‘여기저기서 융통해서 자금을 마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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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구성원들은 이 무렵 진행된 서울 중학동 사옥 매각에 대해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2006년 워크아웃 졸업을 앞두고 채권단은 장 회장의 200억원 추가 증자와 사옥 매각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한국일보는 광화문 근처 금싸라기 땅에 있는 사옥을 900억원에 한일건설에 팔았고, 그 땅에 지을 건물 일부를 우선적으로 사들일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확보했다. 건물이 완성된 뒤인 2011년에는 지면을 통해 ‘신사옥으로 입주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 뒤 우선매수청구권이 포기된 상태라는 것이 알려졌다. 사원들은 장 회장이 200억원 추가 증자를 위해 한일건설 쪽에서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우선매수청구권이 사라졌다며 반발해왔다. 노조는 “장 회장이 개인적으로 한일건설로부터 200억원을 차입하면서 우선매수청구권을 임의로 포기했다. 회사에 200억원가량의 손해를 끼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보의 한 기자는 “장 회장 개인의 잘못 때문에 몇년째 사옥도 없는 방랑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현재 입주해 있는 빌딩에 달마다 2억원을 주고 세들어 있다. 이런 상황에 압박을 받은 장 회장은 지분 매각 협상에 착수했고, 최근 협상이 거의 성사 단계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이를 주시해온 노조는 결국 지난달 29일 장 회장을 신사옥 우선매수권 포기와 관련해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한국일보의 많은 구성원들은 부채가 700억원에 이르고 경영 전망이 불투명한 지금 상황에서는 장 회장이 물러나고 새 대주주가 들어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일보 사태’는 오랜 전통의 일간지가 족벌 체제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느냐는 관점에서 언론계의 주목을 끈다. 장 회장이 스스로 결단하지 않는다면 검찰의 수사 결과에 의존해야 하는 등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진주 한국일보 노조 부위원장은 “장 회장이 이제껏 이어오던 매각 협상에 다시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지분을 팔고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그나마 원만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