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퍼블릭액세스 현황. 유럽은 시민들에게 채널을 적극적으로 개방해 시민참여방송을 살리는데 주력하고있다.  
유럽의 퍼블릭액세스 현황. 유럽은 시민들에게 채널을 적극적으로 개방해 시민참여방송을 살리는데 주력하고있다.  


한겨레 시사다큐 <한큐>가 다시 ‘큐!’했습니다. <한큐>는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뉴스의 현장과 진솔한 삶의 현장으로 카메라가 출동합니다. ‘사회와 사람’이 묻어나는 영상으로 우리들의 ‘오늘’을 요모조모, 촘촘하게 비춰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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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 융합의 모든 혜택을 국민이 고루 누리는 ‘방송통신 국민 주권 시대’를 열어 가겠습니다.”

 2008년 3월 26일 취임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이 방통위 홈페이지에 올린 인삿말이다. 방통위가 공언한 ‘방송통신 국민 주권 시대’, 이 약속은 과연 잘 지켜지고 있을까. 국내 유일의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 전문방송인 시민방송(RTV)의 현재를 통해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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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자의 ‘알릴 권리’와 ‘만들 권리’ 낭떠러지 간당간당 

 “국민 주권 역주행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청자의 있는 그대로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 방영편수가 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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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방송(MWTV)의 상임대표 미누(오른쪽)씨가 이주노동자방송국에서 제작하는 ‘다국어 이주노동자뉴스’의 녹화과정을 지켜보고있다.
이주노동자방송(MWTV)의 상임대표 미누(오른쪽)씨가 이주노동자방송국에서 제작하는 ‘다국어 이주노동자뉴스’의 녹화과정을 지켜보고있다.


한영석 시민방송 사무국장의 평가는 냉담했다. 그는 “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80% 이상 방영분을 채우는 시민방송을 공익채널에서 탈락시킨 방통위의 결정은 ‘방송 국민주권’ 약속이 공치사에 불과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방송은 국내 유일의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 전문 방송국(Public Access·미디어접근)’이다. 2002년 9월 개국해 시청자가 참여해 직접 만든 프로그램을 한 해 평균 1400여편 방영해왔다. 시민들이 직접 만든 보도·영상물을 내보내는 전문 방송국인 것이다. KBS가 1주일에 30분 배정해 내보내는 ‘열린채널’과 같은 프로그램이 시민방송에서는 수십여 편에 달한다. 즉, ‘(정보를) 알 권리보다 알릴 권리’, ‘(방송을) 볼 권리보다 만들 권리’를 실현한 방송국이다. ‘방송의 국민 주권’을 실현하고 있는 최전선의 방송국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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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청자의 ‘알릴 권리’와 ‘만들 권리’는 올 해부터 큰 도전을 받고 있다. 방통위가 시민방송에 지원하던 방송발전기금이 올 해부터 중단됐고 지난 해 11월 시민방송이 공익채널선정에서도 탈락돼 케이블 방송사가 올해 부터 시민방송의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전송할 필요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500만 가구 시청자들이 사라졌다. 시청자들의 참여로 활력에 넘치던 시민방송은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의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의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취재진이 지난 3월 시민방송을 들렀을 때 프로그램 조종실의 불은 모두 꺼져있었다. 삼십여 평 남짓한 스튜디오의 이엔지(ENG)카메라에도 덮개가 씌여있었다. 수억원을 들여 마련한 장비들이었다. 시민방송 관계자는 “ 올 1월 이후 이런 상황”이라고 전했다. 2002년 개국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방송물을 제작하려는 시민들로 늘 북적였던 시민방송에는 ‘참여의 열기’ 대신 그렇게 ‘케케묵은 먼지’만 쌓여 있었다.  

 정치공세와 왜곡보도에 시달린 지난 1년 

방송통신위원회는 시민방송에 방송발전기금 지원을 끊은 이유를 “다양한 방송국들에 기금을 나눠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지난 해 국정감사에서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에 배정된 방송발전기금 69%를 시민방송이 받은 것을 두고 특혜시비가 일었기 때문이다. 또 방통위는 시민방송을 공익채널선정에서 탈락시키며 “자기자본 잠식이 심각해 회사로서 존립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방통위의 결정은 시민방송에 대한 보수언론의 왜곡 보도와 정치공세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보도자료를 통해 “RTV(알티비)가 참여정부 시절 특혜를 받았다”며 색깔론 공세를 펼쳤다.
보도자료를 통해 “RTV(알티비)가 참여정부 시절 특혜를 받았다”며 색깔론 공세를 펼쳤다.


 실제 시민방송에 지난 한 해는 정치공세의 족쇄와 왜곡 보도의 올가미에 꽁꽁 묶여 상처입어 만신창이가 된 한 해였다.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 등이 포문을 열고, 보수언론이 마무리를 했다.  

  한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시민방송이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에 프로그램 제작지원을 해 국가기금 1억 4520만 원을 사용했다”고 비판했다. 문화일보 등의 보수언론들은 “(시민방송이) 사회주의 조국 옹호를 편집 방향으로 하는 14편의 방송물을 제작했다”며 맞장구를 쳤다. 시민방송은 색깔론의 덫에 걸렸다. 그러나 실제 제작된 방송물은 평양 음식 소개가 전부였다. 2004년 5월17일부터 10월3일까지 14번에 걸쳐 옥류관 냉면, 단고기, 전골, 지짐, 불고기 등에 대한 음식 소개를 한 것을 두고 마치 정치 선전물이라도 방송한 것처럼 호들갑을 떤 것이다. 이 방송은 2003년 남북방송교류사업 일환으로 통일부의 정식 허가를 받아 공동 제작한 영상물이었다.  

  한 의원은 또 “2007년까지 참여정부 5년 동안 시민방송이 총 120억 원을 법적 근거 없이 지원받았다”고 비판했다. 보수언론들은 “국가가 시민방송에 혈세를 퍼준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시민방송 쪽은 “제작 기술 능력이 부족한 시청자들을 지원하려고 사용된 제작지원금을 마치 시민방송 운영비로 사용한 것처럼 몰아간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한다.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은 또 “시민방송이 정부 정책과 반대되는 편향된 방송을 한다”며 국가기금 지원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방송을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촛불집회 관련 프로그램을 과도하게 방송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2007년 한 해 동안 시민방송이 FTA 관련 시청자 참여프로그램을 방영한 비율은 전체 방송 분량 중 0.82%(3075분/37만 2300분)에 불과했고, 2008년 촛불집회 관련 프로그램 비중은 0.69%(870분/12만 5460분)였다.   

 공익채널 심사 13개 항목 중 11개가 주관적 채점 분야    

 방통위가 시민방송을 공익채널에서 배제한 것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방통위는 2009년 공익채널 심사에서 ‘시청자참여·사회적 소수이익 대변’ 부분에서 시민방송 대신 법률방송을 선정했다. 시민방송은 2006년부터 시청자 참여 전문채널로서 적합성을 인정받아 내리 3년째 공익채널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시민방송이 탈락한 것을 두고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실은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시민방송에 대한 방통위의 지원에 문제제기를 했고, 이것이 법적 근거가 없는 ‘PP공모제 도입’과 ‘공익채널 선정기준’을 변하게 한 요인이 됐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공익채널 선정 과정에 대한 무수한 뒷말은 지나치게 많은 주관적 채점 비율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2009 공익채널 선정 심사평가> 결과를 보면 13개 심사항목 중 무려 11개 항목이 심사위원의 재량에 따라 주관적으로 채점하는 분야(비계량평가)였다. 같은 항목이더라도 심사위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얼마든지 채점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가능한 한 평가를 계량화해야 하는데 개인의 주관에 따른 평가 항목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시민방송 쪽은 “심사 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으로 터무니 없는 점수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시민방송은 자체 제작 프로그램 방영실적을 평가한 ‘제작유형별 편성’ 항목에서도 법률방송에 뒤진 점수를 받았다. 시민방송 관계자는 “자체 편성 비율이 높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전문편성비율’항목에서조차 60점 이하를 받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방통위가 시민방송에 대해 정치적 평가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09 공익채널신청 심사평가 결과 일부
2009 공익채널신청 심사평가 결과 일부


여러 논란이 일자 방통위는 시민방송이 공익채널선정에서 탈락된 이유로 “자기자본 잠식이 심각해 회사로서 존립 가능성이 없어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경서 시민방송 사무처장은 “시민방송은 공공성을 앞세우는 공익채널이다”며 “광고를 하지 않아 생긴 낮은 재무건전성을 문제 삼는 것은 공익채널의 성격을 무시한 것이다”고 반박했다.  

6명 남아 무급으로 ‘알릴 권리’ 사수…시청자 “RTV, 지못미” 

 퍼블릭 액세스를 표방한 시민방송이 공익채널에서 빠지자 케이블 방송에서 시청자 참여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전체 시청자 참여프로그램 수는 예년에 비해 절반 정도로 뚝 떨어졌다. 현재 방통위가 지정해 시청자참여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는 실버방송, 복지방송 등은 시청자 참여 전문채널이 아니기 때문에 주당 3편 정도만 방송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때도 방송국의 성격에 맞는 프로그램만 방영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 방통위가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방송하라고 지정한 한 방송사는 3월까지 단 한 편도 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시민방송 쪽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다. 한영석 사무국장은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방영하는 방송사가 있어야 시청자 ‘퍼블릭 액세스’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김영철 시민방송 상임 부이사장은 “시민방송이 사라지는 순간 그나마 있던 시청자들의 방송 참여 공간이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시민방송은 묵묵히 왔던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 지난 연말까지 21명이던 직원 중 6명만 남아 무급으로 일하고 있지만 이들은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의 방영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10여편씩 꾸준히 시청자 제작물이 방송국에 도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채널이 없어지면 그나마 있던 시청자 활동 공간이 없어진다”는 김영철 상임 부이사장의 호소도 한 몫 했다. 김 부이사장은 “이명박 정부가 KBS,YTN 등 방송을 장악하려하고 있는데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송 근거지를 꼭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의 바람도 이와 비슷해 보인다. 한 누리꾼(신부범)은 자신이 즐겨보던 케이블 텔레비전 채널 시민방송이 사라진 뒤 아쉬워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블로그에 남겼다.

 “시청자의 권리를 스스로 찾아나선 시청자 제작자들, 그리고 RTV를 사랑했던 국민들이 있는 한 당신들이 추구했던 소중한 가치는 언젠가 꽃 피우고 말겁니다. RTV,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연출·영상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