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의 중견급 언론인 다수가 명예퇴직을 통해 회사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박민 한국방송 사장은 27일 인사 발령을 내어 명예퇴직·희망퇴직을 신청한 87명을 면직 처리했다. 적용은 29일부터다. 한국방송은 지난 15일 공고를 내어 20년 이상 근속자 1874명 대상 특별명예퇴직과 1년 이상 근속자 대상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알리고 16∼26일 신청자를 받았다. 한국방송은 “최근 계속되는 적자와 수신료 분리징수로 유례없는 재정·경영위기에 봉착했다”며 실시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명단에 포함된 기자·피디 등 방송 직군은 52명이다. 여기에는 임장원(전 통합뉴스룸국장), 박유한(전 워싱턴 특파원), 김원장(전 ‘사사건건’ 앵커), 박종훈(유튜브 ‘박종훈의 경제한방’ 진행자), 공아영(전 한국방송 기자협회장) 등 방송국 안팎에서 한국방송 대표 언론인으로 평가받는 기자들이 이름을 올렸다. ‘뉴스9’ 앵커를 지냈던 정세진 아나운서와 김윤지 아나운서도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이번에 명예퇴직을 신청한 한국방송의 한 중견 기자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저보다 연차도 어리고 조직 안에서 콘텐츠 경쟁력이 두드러졌던 기자들이 떠나게 됐다. 이유는 직접 들어봐야겠지만 경쟁력 있는 기자들이 떠나는 것은 회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프로그램의 공영성·경쟁력 등에 대한 구성원들의 우려, 자괴감 등이 퍼져 있다”고 했다.
지난해 정부의 수신료 분리징수 내용을 담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기점으로 한국방송의 위기는 가속했다. 경영진은 올해 인건비 1101억원을 감축하는 예산안을 확정했고, 박민 사장이 부임한 뒤로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제작·편성 자율성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최근에는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가 제작국 간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불방되면서 논란을 낳았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