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눈물만 쉼 없이 쏟아냈다. 5월26일 경기도 평택시 안중백병원에서 열린 고 이선호(23)씨의 추모 미사. 다른 이들이 몇번을 일어났다 앉았다 할 동안,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한 아버지는 좀처럼 일어서지를 못했다.
이선호씨는 아버지와 함께 일하던 평택항에서 4월22일 숨졌다. 개방형 컨테이너(FRC·천장이 없고 양옆만 날개처럼 막힌 형태) 바닥 위의 나뭇조각을 주우라는 지시에 따라 선호씨는 컨테이너 가까이 다가갔다. 그를 미처 보지 못한 지게차가 왼쪽 컨테이너 날개를 접었다. 그 충격으로 선호씨가 서 있던 쪽의 오른쪽 날개가 순식간에 그를 덮쳤다. 날개의 무게는 300㎏. 원래 그가 맡은 업무는 동식물 검역이다. 컨테이너와는 무관하다. 안전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 이재훈씨는 5월21일 세종시로 향했다. 고용노동부 세종청사 앞에서 열린 ‘산업재해 방지 대책 촉구’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날 집회에는 2018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참석했다.
집회가 열리기에 앞서 아버지 이재훈씨와 어머니 김미숙씨가 세종시의 한 사무실에서 마주 앉았다. 어머니는 이선호씨 얼굴이 그려진 걸개그림을 볼 때마다 “용균이 얼굴이 겹쳐 보였다”며 “너무 똑같은 아픔”을 위로하는 마음을 건넸다. 대화하는 2시간 내내 아버지의 마음속에 슬픔, 분노, 회한이 휘몰아쳤다. 그래도 대화가 끝날 무렵 아버지는 말했다. “앞으로 어디든 불러주이소. 내가 필요한 곳이라면 가서 뭐라도 도움이 꼭 될 테니까.”
―아들의 죽음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뭔가?
이재훈 “처음엔 아들 죽음 앞에서 흥정하기도 싫고, 저도 8년 동안 그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었으니 조용히 할까 했어요. 근데 나를 달래러 온 (회사) 사람마다 속을 뒤집어놓고 가데요.”
김미숙 “(저도 2018년 아들이 숨졌을 때) 안 싸우면 내가 죽겠더라고요.”
이재훈 “(회사에선) ‘회사와 관리자 잘못이 있고, 노동자 잘못도 살펴봐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회사 입장에선 당연히 노동자 잘못이라 하고 싶겠죠. ‘(폐회로텔레비전) 보니까 우리 애 잘못 하나도 없더라, 찾아봐라’ 했어요.”
김미숙 “회사마다 똑같이 대응하는 매뉴얼이 있나 봐요. (노동자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일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몸에 밴 거죠.”
아버지 이재훈씨와 아들 선호씨는 일용직 노동자로 동방 평택지사의 업무 지시를 받아 일했다. 사용사업주인 동방은 항만 하역과 운송, 보관 사업 등을 하는 국내 계열사 10곳을 거느린 큰 회사다. 선호씨가 그날 개방형 컨테이너 이물질 제거 작업에 나간 것도 동방의 협조 요청 때문이었다. 동방 쪽은 5월13일 유족을 찾아와 감사팀이 작성한 ‘평택지사 중대재해사고 발생경위 및 책임소재 조사 보고서’를 내밀었다. A4용지 한장짜리 문서였다. “와서는 장례식을 언제까지 안 할 거냐, 죽은 아이한테 좋을 게 없지 않냐고 하는 거 아입니까. 그래서 ‘우리 아(애)가 지금 죽었는데 여기서 ‘좋은’ 건 대체 뭔데? 오지 마라’고 했어요.” 이재훈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원래 회사에 안전관리자가 없었나?
이재훈 “없었어요. 회사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작업 현장에) 안전관리요원을 안 세웠기 때문이에요. 설사 우리 애가 스스로 뛰어들었다고 쳐도 안전요원이 있으면 막았을 거예요. 8년 동안 안전교육도 없었어요. (회사에)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김미숙 “(회사가) 위험 소지를 만들어놓고 잘못되면 노동자 탓으로 만들어요. 사실 우리가 밖을 걷다가도 위험한 곳은 못 가게 하잖아요. 회사에도 (그런 게)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회사는 원·하청을 나누고 하청한테 모든 책임을 전가하죠. 시스템 문제가 제일 커요.”
아버지 이재훈씨와 아들 선호씨는 ‘우리인력’이라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동방의 일을 하게 됐다. 우리인력은 동방과 인력공급 계약을 맺고 하루 일당 11만5천원을 받은 뒤 소개료와 식대를 뗀 9만8천원을 이씨에게 지급했다. 직업안정법에서는 ‘근로자공급사업’을 노동조합만 하게 돼 있어, 이러한 인력공급은 불법이다. 이른바 ‘사람 장사’를 해서 중간착취까지 한 셈이다. 게다가 이들에게 직접적인 업무 지시는 사용사업주인 동방이 했다.
비정규직 착취는 김용균씨 사고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작성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는 “발전설비의 정비 및 운전 시장에 진입한 민간업체들은 미숙련 상태의 청년 노동자를 대거 고용해 임금비용을 낮추고 이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렸다. 또한 3년 단위의 단기 도급계약으로 노동자들을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빠트렸고, 안전을 무시한 운영으로 위험에 노출시켰다”고 지적한 바 있다. 떨어지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끼이는 산재 사고가 줄어들지 않는 구조적 원인이다.
이재훈씨는 사회를 향해 반드시 하고 싶은 이야기 두가지를 꼽았다. “이 땅에서 자식 키우는 부모님이 아셔야 해요. 우리 애가 아르바이트 가는 줄만 아는데 거기서 일하다 다쳐서 돌아오거나 죽어서 못 돌아올 수 있다는 걸요. 또 위험하고 힘든 일은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걸 분명하게 젊은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어요. 부당노동행위 지시거든요. 돈 벌러 간 입장이니 쉽지 않지만 위험해서,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말하는 건 당연한 권리예요.”
사고를 예방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는 정부를 향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해양수산부 평택지방해양수산청이나 고용노동부 평택지청 담당 공무원이 정말로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으면 이런 일 안 당해요. 왜 시정하지 않는지 지적하고, 안 되면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잖아요. 왜 (누군가) 다칠 수도, 죽을 수도 있는 작업장을 만들어놓고 돈을 벌게 하냐 이거예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느라, 이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해양수산청에서 ‘컨테이너 날개가 바람에 쓰러져 다쳤다’고 보고서를 작성해 상급기관에 올렸대요. 확인도 안 하고 회사에서 불러주는 대로 그냥 쓴 거예요.”
―어머니도 (아들 김용균씨가 숨진) 2018년 생각이 많이 나셨을 것 같다.
김미숙 “그때도 안전 조처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고요. 아버님 모습이 저하고 많이 흡사해요. 추모제 때 선호 걸개그림이 걸렸는데, 자꾸 용균이 얼굴하고 겹쳐 보이더라고요. 그 아픔이 지금도 똑같아요.”
이재훈 “(적어도) 오늘보다는 노동환경이 나아져야죠. 우리 애 죽음을 경고장으로 (삼아) 비뚤어진 세상을 조금 더 바르게 (만들어) 나아가야죠. 중대재해처벌법도 그래요. 일단 (원청) 사업주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고요. 사람이 죽으면 최하 징역형이 나와야 해요.”
친구 같던 아들, ‘삶의 희망’이던 아들을 떠올리는 이씨는 지금도 하루에 수십번씩 감정이 요동친다. 이날 노동부 청사 앞에 마련된 아들의 영정 앞에서도 이씨는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되뇌며 오열했다.
5월26일 이선호씨 추모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하나 더 들어왔다. 앞서 빈소에 놓인 하얀 국화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시들어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떠난 뒤, 한달 넘는 시간이 훌쩍 흐른 까닭이다. 시든 꽃이 난 자리에 새로온 조화가 자리 잡았다. 아버지의 눈빛을 꼭 닮은 선호씨의 영정 옆에서, 아버지의 싸움을 응원한다는 듯이, 고개를 다시 들 날을 기다린다는 듯이.
세종·평택/박다해 <한겨레21> 기자 doall@hani.co.kr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한겨레21 제1365호 표지이야기 ‘선호가 용균에게, 용균이 선호에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