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8일 인천 구산동 근로복지공단 인천산재병원 장례식장에서 전날 숨진 이윤정씨의 딸이 엄마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이씨는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고온테스트 공정에서 6년간 일한 뒤 2010년 5월 뇌종양 판정을 받고 2년에 걸친 투병 끝에 숨졌다. 인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2년 5월8일 인천 구산동 근로복지공단 인천산재병원 장례식장에서 전날 숨진 이윤정씨의 딸이 엄마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이씨는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고온테스트 공정에서 6년간 일한 뒤 2010년 5월 뇌종양 판정을 받고 2년에 걸친 투병 끝에 숨졌다. 인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임자운 변호사.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 최근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승소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사회적 참사다. 피해자들이 막강한 정부와 기업에 맞서 법정에서 무엇을 겪었고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격주 연재.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 책상 옆에는 윤정씨 사진이 붙어 있었다. 고인의 사진을 매일 가까이 하려는 마음이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종란은 그랬다. 지금 종란의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올해 1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기철씨 사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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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씨가 세상을 떠난 2012년, 나는 사법연수생이었다. 그저 일부 언론이 보도한 ‘어느 삼성반도체 근로자의 뇌종양 사망’ 소식을 접했을 뿐이다. 하지만 종란을 포함한 당시의 반올림 활동가들에게 윤정씨는 아주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다. 홍리경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탐욕의 제국>에는 윤정씨가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의 투병과 죽음, 장례를 함께했던 반올림 활동가들의 세세한 모습들이 나온다. 윤정씨는 반올림에 그런 ‘피해자’였다.

윤정씨는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반도체조립라인 검사(MBT) 공정 오퍼레이터로 일했다. 반도체 칩을 고온으로 가열해 불량품을 선별하는 공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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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근무라 늘 피곤했죠. 성과 경쟁도 심했고. 한 명이 30여대 설비를 동시에 봤어요. 반도체 칩을 고온에서 테스트하고 체임버를 열면 열기가 확 올라와요. 보드판을 꺼내 불량 난 칩들을 걸러내는데, 칩들이 보드판에 들러붙기도 하고 까맣게 타버려서 고무 타는 냄새 같은 게 났어요. 미세한 검은 분진도 생겨서 에어건으로 청소하곤 했지요. 하루에도 수십번씩 에어건으로 날려줬는데 그때 분진가루가 코랑 입으로 들어가고 눈으로도 들어갔어요.”(윤정씨 진술)

윤정씨는 그렇게 6년2개월을 일하고 퇴사했다. 그 후 7년이 지난 2010년 5월5일 어린이날, 갑자기 쓰러졌다. 뇌종양 진단을 받고 급히 수술에 들어갔으나, 종양은 이미 크고 깊숙하게 자라 있었다. 시한부 1년 선고를 받았다. 윤정씨에게는 4살, 6살 난 두 아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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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공장 오퍼레이터로 6년간 일해 7년 지나 뇌종양 진단, 시한부 1년 “분진가루 코와 입, 눈으로 들어갔다” 재판 진행되던 중 32살 나이로 숨져 삼성, “유해물질 사용하지 않았다” 주장 2심, “노출 자체 인정할 증거 부족하다” 대법, “파기환송”으로 원고 손 들어줘 “반도체 노동자 뇌종양도 직업병” 승리

“고무 타는 냄새”, “분진”, “검댕”

윤정씨가 반올림과 함께 낸 산재보상 신청을 근로복지공단은 거부했다. 윤정씨의 업무환경에 대해 “유해물질 노출 가능성이 낮다”고 결론 내린 산업안전보건연구원(산보연) 역학조사 결과 때문이었다. 이 조사는 매우 허술한 것이었다. 윤정씨는 고온테스트 설비에서 발생하는 ‘고무 타는 냄새’와 ‘검은 분진’, ‘검댕’을 유해요인으로 지목했었다. 하지만 산보연은 정작 관련 조사는 전혀 하지 않았다. 조사위원 중 한명이 분진 등에 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조사는 그대로 종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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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씨는 거부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제기했고, 나는 소송 중간에 원고 대리인으로 합류했다.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보조참가’라는 형식을 빌려 소송에 참여하자, 삼성이 고용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사실상 피고 쪽 변론을 주도하고 나섰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둘이나 있었다.

소송의 주요 쟁점은 윤정씨가 담당했던 고온테스트 업무와 뇌종양의 인과관계. 2012년 산보연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칩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이엠시(EMC)라는 물질을 가열했을 때, 벤젠·포름알데히드와 같은 발암물질이 발생할 수 있다. 윤정씨가 고온테스트 설비에서 나왔다고 얘기한 ‘고무 타는 냄새’, ‘분진’, ‘검댕’이 그러한 발암물질일 가능성이 충분했다.

물론 삼성 측 변호사들은 그럴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들은 법정에서 “작업장에서는 어떠한 유해물질도 사용하지 않았다”, “고무 타는 냄새가 났다는 독특한 주장을 다른 근로자들은 하지 않는다”, “(원고 주장은) 터무니없는 논리 비약일 뿐이고 한낱 근거 없는 과장에 불과하다” 따위의 주장들을 했다. 지루한 법정 공방이 계속되던 중 윤정씨의 뇌종양은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2012년 5월, 윤정씨는 만 서른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012년 5월10일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린 이윤정씨 노제 모습.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2012년 5월10일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린 이윤정씨 노제 모습.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삼성 “투명한 공개”와 “협조” 약속했으나…

소송 과정에서 나는 삼성이 벌인 두가지 사업에 주목했다. 삼성전자 건강연구소가 주요 연구 성과로 홍보하는 ‘전·현직 임직원의 건강 관련 디비(DB) 구축사업’과 삼성전자가 2015년에 시행한 ‘퇴직자 보상제도’가 그것이다. 둘 다 반도체 직업병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사업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으나, 관련 자료를 검토하면 윤정씨와 유사한 업무를 했던 또 다른 뇌종양 피해 사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재판부는 나의 증거조사 신청을 받아들여 삼성전자에 관련 자료의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자 삼성은 ‘디비 구축사업’에 관해서는 한 편의 관련 논문을 제출했을 뿐이고, ‘퇴직자 보상제도’에 관해서는 “인도적 차원의 제도였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나는 재판부에 좀더 강제성 있는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다. 삼성은 “산업재해 입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자료”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결국 법원의 제출명령까지 나오고 나서야 삼성은 자료를 냈는데, 그조차 부실투성이였다. 삼성은 ‘디비 구축사업’에 관해서는 “연구를 계획했을 뿐 실현되진 못했다”, “관련 자료는 모두 폐기했다”고 답했고, ‘퇴직자 보상제도’에 관해서는 뇌종양을 이유로 한 보상 신청자가 총 27명이라고 밝혔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업무 내역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삼성은 직업병 관련 소송에서 산재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은폐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물론 그럴 때마다 삼성은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법원에 적극 협조했다”고 반박했다. 삼성이 말하는 “투명한 공개”와 “협조”란 이런 것이었다.

소송 중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소송이 길어지며 재판이 드문드문 진행되자, 변호사들과 당사자(윤정씨 유족) 사이의 소통도 간간이 이어졌다. 그러다 유족이 한 차례의 재판 통지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자, 유족은 그것을 이유로 내게 사임을 요구했다.

유족 입장에서 기분이 상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사임 요구까지 나올 상황은 아니었고, 공동 대리인 중 유독 나만 사임하라는 것도 이상했다. 마침 몇몇 언론이 “유족이 반올림 변호사에게 사임을 요구했다”는 기사들을 쏟아내자, 혹시 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은 더욱 커졌다.

일단 유족을 진정시키고 이해를 구했다. 다행히 소송 대리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이후에 유족으로부터 진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기자가 그랬어. 당신이 소송과 무관한 자료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고.”

당시에 나온 기사들 내용이 그랬다. 이를테면 한 종합일간지는 내가 “산재 입증과는 거리가 먼 자료를 무차별적으로 요구”했다며, “삼성전자와 싸우기 위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의뢰인을 ‘볼모’로 소송 업무 외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아마도 추측건대 삼성 쪽이 흘린 얘기를, 일부 언론이 사실인 양 보도하며 유족에게까지 그대로 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소송에서 ‘딴짓’하고 있다고 말이다. 여기서 “산재 입증과 거리가 먼 자료”란 모두 법원이 증거조사 필요성을 인정해 삼성에 직접 제출을 요청 혹은 명령했던 자료들이다.

이윤정씨가 딸을 안고 활짝 웃는 생전 모습. 반올림 제공
이윤정씨가 딸을 안고 활짝 웃는 생전 모습. 반올림 제공

엇갈린 1, 2심 판결

2014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결론은 원고 승소. 재판부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 화학물질과 극저주파 자기장, 주야간 교대근무 등 유해 요소들에 지속적·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뇌종양이 발생했으므로, 질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했다. 이례적으로 삼성전자의 화학물질 관리 잘못, 산보연 역학조사의 문제점까지 판결 이유에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모처럼 가슴이 뚫리는 판결이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곧장 항소했다. 1심 판결이 인정한 유해물질 노출은 없었고 설령 일부 노출이 있었더라도 노출 정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항소 이유였다. 공단 자문기관(산보연)의 역학조사에 문제가 많았다는 1심 판결의 지적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았다.

2016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은 결론이 달랐다. 1심 판결이 인정한 유해인자들 중 일부에 대해서는 “노출 자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했고, 다른 일부에 대해서는 “노출 정도가 낮았을 것”이라 했으며, 나머지에 대해서는 “뇌종양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결론이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업무환경에 대한 원고의 입증이 부족하다는 취지였다. 입증을 어렵게 만드는 사정들, 이를테면 삼성의 자료 은폐와 산보연의 역학조사 문제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려가 없었다.

우리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까지 왔으니 이 사건은 더 중요해졌다. 뇌종양은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다음으로 피해 제보가 많은 질병이다. 반올림에 알려진 숫자만 29명. 그중 11명이 산재 신청을 했는데 1명만 승인 처분을 받았다.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피해자들도 많았다. 윤정씨와 같은 업무를 담당했던 또 다른 뇌종양 피해자의 1심 소송이 진행 중이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윤정씨는 고온테스트 업무의 특성상 여러 발암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삼성이 해당 공정에서 측정한 것은 ‘소음’뿐이었다. 다른 유해인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측정 자료가 없다. 회사의 안전보건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나는 이것이 윤정씨가 뇌종양을 앓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윤정씨의 업무환경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다. 직업병을 예방하지 못한 회사의 관리 잘못이 산재보상마저 가로막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당함을 대법원에서 강조했다. 그밖에 윤정씨의 업무환경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들을 최대한 끌어모아 제출했고, 산보연 역학조사의 문제점과 삼성의 자료 은폐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법원,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지난 11월14일,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한다.” 선고 당일 대법관이 읽는 주문은 너무 짧았다. 원고 패소 취지의 원심(2심)을 “파기”하였으니 원고 승소가 맞았지만, 불안했다. 내가 헷갈리고 있는 건 아닌지, “파기환송”이라는 말은 분명히 들었는지, 누구나 붙잡고 확인하고 싶었다.

법정을 나오면서 누군가의 말소리를 들었다. “삼성반도체 뇌종양, 인정됐네?” 그제서야 확신했다. 우리가 이겼구나.

대법원은 산재보상 요건인 ‘업무와 질병의 상당인과관계’란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인정되면 되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행정청의 조사 거부 등으로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을 특정할 수 없었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한 전제하에 대법원은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6년2개월 동안 여러 발암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고 보았다. 산보연 역학조사에 대해서는 “망인과 동료 근로자들이 ‘검댕’, ‘고무 타는 냄새’에 대해 진술했음에도, 그 원인 물질과 노출 수준에 관해 조사하지 않았다”며 “상당인과관계 판단에 이러한 역학조사의 한계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꼭 이겨야 했다.

나는 윤정씨의 남편을 “형”이라 부른다. 나이 차이가 많지 않아 가깝게 지냈고 둘이서 몇차례 술을 마시기도 했다. 소송 결과에 자신이 없을 때는 그에게 ‘술친구’라도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는 ‘가족대책위원회’ 소속이다.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삼성-반올림 간 교섭이 한창이던 2014년 8월, 반올림 교섭단에 있던 일부 피해가족들(6명)이 반올림과 별도로 교섭하겠다며 만든 단체다. “교섭단에 속한 피해가족들에 대한 보상 논의를 먼저하자”는 삼성과 “다른 피해가족들에 대한 보상과 사과, 재발방지대책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반올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 6명이 삼성의 입장에 따르겠다며 별도 교섭단체를 만든 것이다.

이후 삼성은 교섭 약속을 파기하는 자체 보상 계획을 발표했다. 반올림은 즉각 반대 입장을 냈지만 가족대책위가 여기에 찬성하자, 삼성은 “피해가족들도 합의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 계획을 강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보상 절차란 ‘가해자’인 삼성이 사과·보상의 대상과 내용을 직접 정하는 것이었고, 상당수 피해자들을 보상에서 배제하는 것이었다. 반올림의 노숙농성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5년 10월부터 지금까지 곧 800일이 된다.

윤정씨 남편이 가족대책위에 참여하고 가족대책위를 이용한 삼성의 언론플레이가 계속되면서 나로서는 솔직히 그에게 불편한 마음이 없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욱, 윤정씨 소송을 이겨야 했다. 매일 그녀의 사진을 보는 종란 노무사와 그녀의 장례를 함께 치렀던 반올림 동지들을 위해, 무엇보다 모든 삼성반도체 뇌종양 피해자들을 위해, 나는 이 소송을 꼭 이겨야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받아냈다.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뇌종양도 직업병”이라는 대법원 판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