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외주화’로 표상되는 하청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대책이 요구되는 가운데, 원·하청업체를 아우르는 산재 실태 현황 조사 결과가 처음으로 발표됐다. 조사결과, 하청업체의 산재 사망 비율이 원청업체에 비해 8배 남짓 높게 나타났으나, 전체 산재는 하청이 원청의 4분의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 하청업체 ‘산재은폐’의 단면을 보여주는 조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원·하청 산재 통합 통계 산출을 위한 조선·철강·자동차·화학 등 51개 원청사 대상 실태조사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이 제도는 원청의 산재사고 책임 강화를 위해 도입된 것으로 내년부터 시행 예정이다.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 노동자 1만명 당 산재로 숨진 노동자의 숫자는 사내하청이 0.39명 인데 반해, 원청은 0.05명으로 사내하청이 8배 높게 나타났다. 원청에 사내하청을 합쳤을 경우 0.21명, 원청+사내하청+사외하청은 0.20명 순이었다. 그러나 전체 재해율(노동자 100명당 산재 발생 숫자)은 원청이 0.79명인데 반해 하청은 0.20명으로 오히려 4분의1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원청에 사내·사외하청을 합치면 0.47명으로 오히려 재해율이 떨어져, 원청이 하청보다 산재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 것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이 나타난다. 연구를 수행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관계자는 “원청업체의 하청업체 관리가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어, 모든 하청업체를 전수조사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하청업체 재해율에는 통계의 신빙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하청노동자들이 산재 처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의 2013년 기준 산업재해율은 0.59%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2.7%)의 4분의 1에도 못미치지만, 사망자 숫자는 1만명 당 0.68명으로 압도적 1위에 해당한다. 이 원인은 회사가 산재보험료 인상 등을 이유로 노동자가 죽기전까지는 산재를 숨기는 한국의 현실 탓에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발표한 ‘산재 위험직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일터에서 다친 조선·철강·건설플랜트 하청노동자 343명 중 산재 처리가 된 사람은 36명(10.5%)에 그쳤다.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거나 아예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도 122명(35.6%) 나머지 185명(53.9%)은 원·하청업체의 비용으로 처리(공상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원하청 통합 산재관리 제도 자체는 원청 책임강화를 위해 중요하긴 하지만, 산재은폐 처벌 강화 등 사후적 대책 뿐만 아니라, 병원 산재신고제도 도입·업체별 지정병원을 통한 산재은폐 감독 강화 등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