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 등에서도 정규직과 확연히 구분된다.
복장 등에서도 정규직과 확연히 구분된다.

충남 당진에 있는 현대제철의 당진제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회색 작업복을 입는다. 하지만 축구장 1013개 넓이만큼 광활한 당진제철소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를 찾기는 ‘식은 죽 먹기’만큼 간단하다. 사내하청은 윗옷 가슴팍에 각각 다른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다. 공장 안에서 쓰는 안전모 색깔도 정규직은 하얀색, 사내하청 노동자는 노란색이다. 9월12일 당진제철소 근처에서 만난 박성재(27)씨의 작업복 왼쪽 가슴엔 원청인 ‘현대제철’이 아닌 협력업체 ‘피제이로직스’가 쓰여 있었다. 굳이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를 물어볼 필요가 없다. 2010년부터 당진제철소에서 일하는 박씨는 그새 소속 회사가 ‘화인테크→화인테크 트레이딩→피제이로직스’로 세번이나 바뀌었다. 하지만 B지구 비열연공장 앞에서 생산된 코일을 검수하고 차에 싣는 업무는 변하지 않았다.

정규직 안전모 ‘흰색’ 사내하청 ‘황색’비정규직 6년간 10배 늘어 7천여명순천 등 4곳 합치면 1만1천여명52%가 간접고용…업계 최다정규직 4조3교대 월평균 183시간사내하청 3조3교대 243시간 일해도월급은 정규직보다 90여만원 적어

당진제철소에는 박씨 같은 사내하청 노동자가 7000명이 넘는다.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자료를 보면, 당진제철소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2007년 716명에서 2013년 7714명으로 6년 만에 10배 넘게 늘었다. 당진제철소만 그런 게 아니다. 당진을 포함해 순천, 포항 등 현대제철 4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2만2763명 중 1만1956명(52.2%)이 간접고용 노동자다. 고용형태 공시 대상 기업 2942곳의 평균 간접고용 비정규직 비율 20.1%보다 갑절 이상 많은 규모다. 상시노동자 5000명 이상 대기업 99곳 가운데서 열한번째로 간접고용 비율이 높다. 동종 업계의 포스코(46.6%), 동부제철(9.8%)보다 많다.

사내하청과 정규직의 시계는 다르다. 사내하청은 3조3교대, 정규직은 4조3교대로 일한다. 제철소는 24시간 365일 고로(용광로)의 불을 끌 수 없다. 용광로가 24시간 내내 가동되다 보니 24시간을 8시간씩 쪼개 3교대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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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근은 아침 7시~오후 3시, 2근은 오후 3시~밤 11시, 야간근무인 3근은 밤 11시~다음날 아침 7시까지다. 통상 닷새 주기로 근무조가 바뀐다. 4조3교대인 정규직은 예비조가 있어 근무조 변경 때 하루 또는 이틀을 쉴 수 있다. 하지만 예비조 없이 3조3교대로 돌아가는 사내하청은 근무조 변경 때에는 하루에 두 번 출근해야 할 때도 있다. ‘1근→3근→2근’ 순서로 바뀌는 교대제에서 교대 날에는 퇴근 8시간 만에 다시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로 휴가를 내지 않는 한 쉴 수 있는 날이 없다. 힘들어서 교대 날 ‘특휴’(특정휴가)를 쓰면 앞뒤 조에서 한 명은 4시간씩 더 일해야 한다. 박씨는 “정규직은 예비조가 있으니까 휴일이 보장되지만 사내하청은 한 사람이 쉬면 다른 누군가가 ‘땜빵’을 해줘야 해요”라고 말했다.

박씨의 8월 노동 시간은 151시간이다. 노조 조합원으로 파업에 참여하면서 평소보다 줄었다. 평균적으로는 현대제철 정규직은 한 달에 183시간, 비정규직은 243시간 일한다.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처럼 4조3교대로 바꿔달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현대제철 쪽은 “우리가 채용한 게 아니라 업체에 바꾸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경영 개입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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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보다 긴 노동은 3조3교대 때문만은 아니다. 박씨의 시급은 올해 최저임금보다 250원 많은 5460원이다. 저임금은 필연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낳는다. 먹고살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 사실상 강요된 선택이다. “처음에는 최저임금도 안 주고 연장·휴일 수당도 없었어요. ‘최저임금은 줘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마음에 안 들면 나가라, 너 아니라도 올 사람 많다’고 하더군요. 안 그래도 잘릴까봐 수습 3개월 끝나고 얘기한 건데….” 박씨가 말했다. 12시간 2교대제로 운영되는 전 직장에서 하루도 못 쉬고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 찾은 새 직장은 그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부품처럼 취급했다.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으로 장시간 노동을 해서 쥘 수 있는 돈은 상여금이 있는 달엔 240만~270만원, 상여금이 없는 달엔 160만원 수준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현대제철 정규직 1명의 평균 월급은 33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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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하청 노동자의 어깨를 짓누르는 게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만은 아니다. 위험부담도 그들 몫이다. 위험한 일은 대부분 장시간 노동에 지친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졌다. 지난해 5월 당진제철소에서 보수공사를 하던 사내하청 노동자 5명이 아르곤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당진제철소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간접고용 노동자는 11명에 이른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이 참여한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은 최근 현대제철을 ‘2014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했다.

박씨도 2년 전 거대한 철판 코일을 붙잡고 있던 녹슨 와이어가 끊어지는 바람에 25t 코일에 크게 다칠 뻔했다. 와이어 관리도 사내하청 업체의 몫이다. 박씨는 “분진마스크 같은 안전장비도 정규직과 사내하청한테 주는 게 달라요. 험한 일은 사내하청이 맡는데 안전장비는 정규직한테 더 좋은 걸 더 많이 줘요. 사내하청이 위험한 업무를 많이 맡는데다 노동 강도도 세서 하루 1~2명꼴로 다치곤 해요”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 관계자는 “박씨 작업장은 안전장비가 지급되지 않는 작업장인데 현장에서 청소할 때 먼지가 나 분진마스크를 요구했다. 업무에 따라 다른 부분이지 차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10년, 20년 더 이렇게 일하면 박씨한테도 밝은 미래가 있을까. 두산유리 등에서 일하다 2009년 당진제철소에 온 20년차 사내하청 노동자 박종석(48)씨는 3조3교대가 힘들어 3조2교대로 바꿨다. 휴일을 얻느라 하루 8시간 근무를 12시간으로 늘렸다. 그의 시급은 6700원으로 사내하청 노동자 가운데 그나마 많이 받는 편이다. “오래 일해도 정규직은 못 따라가죠. 돈 더 벌려고 24시간 꼬박 근무하면 야간·연장 수당 포함해 하루에 36만원 받아요. 정규직 하루치 휴일근무 수당도 안 되는 돈이에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뱁새는 황새를 따라갈 수 없다.

당진/글·사진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