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석/이정국 기자
마석/이정국 기자

마석 ‘스타’ 공장장으로 일하다
단속 당해 외국인보호소 구금
보호 일시해제 요구 거부당해
출국땐 임금 등 2000만원 떼일 판
고용부·법무부 쫓아내기 급급
일시해제 받기 ‘하늘의 별따기’

“안녕하세요.” 지난 19일 오전 11시, 경기도 화성 외국인보호소 면회실의 희뿌연 아크릴판 칸막이 너머에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모누(40)가 인사했다. 능숙한 한국말이다. 모누는 지난 4일 경기도 마석가구공단의 공장에서 일하던 중 단속당했다. 모텔용 침대와 탁자, 의자를 만드는 게 그의 일이었다. 단속당한 여느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듯 강제출국을 앞두고 이곳 외국인보호소에 구금중이다.

그는 답답해했다. 출국당하기 전, 일하던 공장에서 밀린 임금 1100여만원과 월세 보증금 1000만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보호 일시해제 조처를 받아 마석에 가야 한다. 모누처럼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혀 보호소에 구금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출국당하기 전 체불임금이나 집 보증금 등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일시적으로 내보내주는 제도가 보호 일시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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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요. 제가 나가야 공장일 정리하고 돈도 받을 수 있는데 이 안에 있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모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보호소 안에 많다고 전했다. “한방에 14명 정도 생활하는데, 월급 못 받았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예요. 저도 여기 와서 돈 못 받았다고 계속 얘기했는데 보호소는 그냥 기다리라고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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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외국인근로자센터의 한 직원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모누의 보호 일시해제 불허에 항의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A href="mailto:wjryu@hani.co.kr">wjryu@hani.co.kr</A>
지난 2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외국인근로자센터의 한 직원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모누의 보호 일시해제 불허에 항의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A href="mailto:wjryu@hani.co.kr">wjryu@hani.co.kr</A>

모누를 잘 아는 남양주시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가 낸 보호 일시해제 요구를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지난 20일 거부했다. “(센터 쪽이 낸) 서류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단 한 줄이 유일한 이유였다. 사무소 쪽은 구체적인 사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해제 요구서를 낸 센터의 이영 사무처장도 구체적인 설명은 듣지 못했다.

이 사무처장은 “보호 일시해제 조처란 게 있으면 뭐하나. 이렇게 절차가 까다롭지 않은가. 우리 같은 단체가 도와줘도 안 되는데, 이주노동자 스스로 보호소 안에서 어떻게 일을 처리하겠나”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주공동행동)의 이정원 활동가도 “보호 일시해제는 하늘의 별 따기다. 허가가 돼도 2000만원 이하의 보증금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내야 보호가 해제된다. 임금체불 등 어려운 처지에 처한 이주노동자가 무슨 돈으로 보증금을 내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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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법무부 자료를 봐도 가늠할 수 있다. 보호 일시해제 건수는 2011년 137건, 2012년 116건 등 한 해 100여건에 그친다. 신청 건수와 불허 건수 등은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는 게 출입국관리사무소 쪽의 설명이다. 최근 강제출국당한 이주노동자가 연간 1만8000명 안팎이라는 사실에 비춰보면 보호 일시해제는 ‘시혜’에 가깝다는 걸 어림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고용노동부도 이들의 처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고용부 근로정책개선과 관계자는 “외국인보호소 안에 노동부 직원이 가서 일일이 확인하진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주로 단체를 끼고 일을 처리한다”고 말했다. 외국인보호소에 갇힌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신고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영 사무처장은 “법무부와 고용부가 서로 자기 일이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다. 정부 정책이 이주노동자의 권리 찾아주기가 아니라 쫓아내기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모누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 건 2000년이다. 대개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그렇듯, 그도 석달짜리 단기취업 비자를 받고 들어왔다 눌러앉았다. 고향의 부모에게 월급을 부치는 재미로 살았다. 머리가 좋은 모누는 한국말과 글도 빨리 깨쳤다. 어려운 처지의 동료 이주노동자를 돕고 각종 행사의 사회를 도맡으면서 그는 마석공단의 ‘스타’로 떠올랐다.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친 적도 있다.

지난해 11월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가구공장에서 함께 오래 일한 한국인 형이 새로 공장을 차리면서 그에게 공장장을 맡겼다. 한국말과 글에 능통하고 공단 안에서 인적 네트워크도 풍부한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제작과 유통 양쪽 경험이 풍부한 모누에게 사장은 공장일을 모두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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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누의 동료들은 그의 체불임금이 많은 이유에 대해 “모누가 책임감이 있었어요. 친구들을 위해서 자기 월급은 늦게 받아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밀린 월급이 많아요”라고 설명했다. 모누의 공장 사장 김아무개(47)씨는 요즘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쉰다. “모누가 거래한 대금이 한 5000만원이 넘어요. 저는 지금 사실상 망했구요. 회사를 정리하려고 해도 모누가 돌아와서 잔금 수금 등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미치겠어요.”

단속이 있던 날 모누를 포함해 이주노동자 6명이 한꺼번에 붙잡혔다. 함께 단속당한 방글라데시 출신 도히나(29·여)는 당시를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오전 10시30분 정도에 모누가 커피를 갖고 공장에 들어오는데 갑자기 ‘잡아’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단속반이 들어왔어요. 무서웠어요. 저는 주저앉아 ‘아이가 있어요, 봐주세요’라고 빌었어요. 사람들이 제 팔다리를 들어 차에 실었어요.” 그는 7살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보호 일시해제가 됐다. 하지만 7월 초에는 출국해야 한다. 함께 잡힌 도히나의 남편 카지는 지난 17일 강제출국됐다.

도히나의 아들 따신은 엄마와 인터뷰하는 기자를 보고 한국 아이보다 더 또렷한 발음으로 물었다. “아빠 잡아간 사람이에요?” 도히나는 한국과 방글라데시 어느 곳의 국적도 갖고 있지 못한 채 방글라데시로 돌아간 8살 소녀 마히아(<한겨레> 5월9일치 1·10면)의 소식을 최근 접했다. 마히아는 마석에서 도히나 바로 앞집에 살았다. “방글라데시로 돌아간 마히아가 엄마한테 ‘왜 날 낳았냐’며 매일 운대요. 저도 따신하고 함께 돌아가야 하는데, 너무 걱정이에요.”

외국인보호소 안과 밖에서 모누와 도히나는 이렇게 답답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화성 마석/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대법, ‘이주노조 인정’ 6년4개월째 침묵고법선 ‘이주자 노동3권’ 인정 판결수차례 ILO 권고 무시…시간끌기만

모누와 같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임금체불을 겪거나 각종 인권침해를 당할 때 노동조합이라도 있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노조는 회사 쪽에 단체협상을 요구할 수 있고, 보호 일시해제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뛸 수도 있다.

법원도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노동3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서울고법은 2007년 2월 “불법체류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면서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이상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서울고법은 △국적에 따른 근로조건의 차별대우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조합원 자격과 관련해 인종 등에 의한 차별대우를 금지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노동자의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등을 보장한 헌법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노동부가 상고한 뒤 대법원은 6년4개월이 지나도록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그 사이 6년 임기 대법관은 모두 바뀌었다.

대법원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이주노동자의 아우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주노조의 간부와 조합원들은 잇따라 표적 단속돼 이 땅을 떠났다. 초대 이주노조 위원장 아느와르 후세인을 비롯해 3·4대 위원장과 지도부들이 대부분 강제추방을 당했다. 5·6대 미셸 카투이라 전 위원장도 비자가 취소된 뒤 사실상 강제출국됐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주노조를 인정하라’고 여러 차례 권고했으나 ‘소 귀에 경 읽기’였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외국 판례나 학술 연구를 봐도 이주노동자의 노조 결성권 등 기본적 노동권을 인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국제적 기준이다. 대법원의 판단이 늦어지는 것은 법리적 논쟁 때문이 아니라 이주노조의 출범을 꺼리는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하루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