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쿠팡 물류센터.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쿠팡 물류센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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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취업 제한을 목적으로 1만6450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노동계와 시민 사회는 이런 취업 방해 행위가 근로기준법 등 현행법 위반이라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당사자들을 모아 쿠팡을 대상으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에 나선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쿠팡지회와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쿠팡대책위)는 14일 서울 서초구 민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쿠팡의 블랙리스트 작성·운영 의혹에 대해 “수사 당국은 철저한 수사에 나서라”며 “이번 명단에 기재된 당사자들을 모아 쿠팡을 상대로 집단 고소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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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MBC)은 전날 “쿠팡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소위 블랙리스트를 운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문화방송 보도와 이날 쿠팡대책위 등의 설명을 들어보면, 쿠팡 내부자료로 추정되는 한 엑셀 파일엔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에서 일했던 1만6540명의 노동자 명단이 나열됐다.

이름, 생년월일, 핸드폰 번호, 아이디…

2017년 9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6년 넘게 작성된 것으로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 로그인 아이디, 근무지 등 개인정보와 함께 ‘사유1’, ‘사유2’가 적혔다. 사유2에는 ‘폭언, 욕설 및 모욕’, ‘허위사실 유포’, ‘정상적인 업무 수행 불가능’ 등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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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대책위는 “명단에 기재된 당사자가 취업을 지원하는 경우 취업에서 배제하거나 일정 기간 취업할 수 없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쿠팡풀필먼트 서비스가 운영하는 쿠팡 물류센터는 ‘쿠팡펀치’ 앱 등을 통해 일용직 근로를 신청해 일하는 노동자가 많은데, 명단에 오른 이들은 이런 취업이 가로막혔다는 것이다.

홍익표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고양부문회장(오른쪽)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쿠팡의 노동조합 활동 방해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홍익표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고양부문회장(오른쪽)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쿠팡의 노동조합 활동 방해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전문가들은 쿠팡의 블랙리스트 작성·운영이 사실일 경우 근로기준법과 개인정보보호법 등 현행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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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 쿠팡대책위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쿠팡은 명단을 단순 작성한 게 아니라 블랙리스트를 조직적으로 관리하면서 명단에 기재된 사람을 영구 혹은 일정 기간 취업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불이익을 가해왔다”며 “헌법상 근로할 권리를 침해하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40조는 근로자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김 변호사는 취업 지원자와 퇴직자의 개인정보를 근로계약 체결·이행이 아닌 취업 배제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개인정보보호법 18조를 위반한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했다.

노조원 20명도 포함…“부당노동행위”

아울러 이번 명단엔 쿠팡에서 노조 활동을 해온 조합원 20명도 포함됐는데, 노조 업무를 이유로 근로자에게 불이익 주는 부당노동행위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리스트에는 언론사 기자들의 명단 또한 포함된 거로 알려졌다.

쿠팡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직원에 대한 인사평가는 회사의 고유 권한이자 안전한 사업장 운영을 위한 당연한 책무”라며 “CFS(쿠팡풀필먼트서비스)의 인사평가 자료는 MBC 보도에서 제시된 출처 불명의 문서와 일치하지 않으며, 어떠한 비밀기호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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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 쿠팡대책위 대표는 “자료를 보면 이름, 전화번호, 아이디 번호 등이 적시됐다. 쿠팡이 아니고서야 작성이 불가능한 자료라는건 누구나 다 알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엑셀파일의) 도메인 주소를 확인한 결과 ‘쿠팡.net’이란 주소를 쓰고 있었다. 그 주소는 쿠팡이 실제 운영하는 도메인 주소”라며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지배기업인 쿠팡주식회사가 블랙리스트를 작성·운영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주장했다.

쿠팡대책위는 앞으로 집단소송을 위해 명단에 이름이 오른 소송인단을 공개 모집하고, 쿠팡의 부당 행위와 관련 공익제보를 받는다고 밝혔다. 김혜진 쿠팡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쿠팡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함으로써 노동자는 회사의 통제에 순응하거나 회사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 부당한 일에 문제 제기 않는 등 사실상 노동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효과를 발휘했다”고 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