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본관에서 병원 교수들이 보건복지부 전공의 근무 실태 파악에 항의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교수 70여명은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의 병원 방문 시간에 맞춰 검은 마스크를 쓰고 항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다. 대구/연합뉴스
31일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본관에서 병원 교수들이 보건복지부 전공의 근무 실태 파악에 항의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교수 70여명은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의 병원 방문 시간에 맞춰 검은 마스크를 쓰고 항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다. 대구/연합뉴스

정부가 2021년도 의사 국가시험(국시) 실기 시험을 애초 9월1일에서 8일로 일주일 연기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정부·국회에서 협의’를 약속하는 등,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을 놓고 의사단체와 맞서던 정부가 한 발 더 물러선 모양새다. 하지만 협상의 열쇠를 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정책 철회’라는 애초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어, 집단휴진 사태가 곧장 마무리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관련기사 4면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31일 오후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1일 시작될 예정이던 의사 국가시험을 일주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며 “다수 학생의 미래가 불필요하게 훼손되는 부작용을 우려했고, 향후 병원의 진료 역량과 국민들의 의료 이용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국시 응시를 취소한 의대생, 의학전문대학원생이 90% 가까이 되는 것으로 집계됐지만, 정부는 이날 오전까지도 시험 준비를 한 학생들의 피해를 우려하며 계획대로 이행하겠다고 밝혔었다.

브리핑에 앞서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된 뒤 정부가 약속한 협의체와 국회가 제안한 국회 내 협의기구 등을 통해 모두가 공감대를 표명한 의료 서비스의 지역 불균형 해소, 필수 의료 강화, 공공의료 확충, 의료계가 제기하는 문제들까지 함께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의사 단체의 집단휴진을 강하게 비판해온 것에 견주면, 협상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이와 관련해 김강립 차관은 브리핑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의료계 원로 등에 더해 대통령까지 약속한 협의를 믿고 이제 전공의 단체는 조속히 진료 현장으로 돌아올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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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류가 급선회한 것은 대한의사협회(의협), 대전협과의 잇따른 협상에서 양보를 거듭해온 정부가 한차례 더 물러섬으로써, 갈수록 악화하는 집단휴진 사태의 ‘출구’를 찾아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과 불응시 고발에 대응해 ‘여론 총공세’를 펴고 있는 대전협에 가세해, 전국전임의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모든 의료정책 관련 법안은 의협과 대전협이 참여하는 국회 내 협의기구에서 사전 협의 후 추진하고, 여야 합의하에 표결 처리하라”는 요구를 내놨다. 서울대학교병원 본원·보라매병원·분당서울대병원 등 3곳에선 전공의 895명, 전임의 247명이 단체로 사직서 제출 행렬에 동참했다. 전공의들의 집단휴진을 지지하는 교수급 의료진의 첫 단체행동도 예고돼, 서울성모병원 외과 교수들은 9월7일 하루 동안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대치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여러 의대 학장과 교수 등 범의료계 원로들이 ‘학생들과 전공의 등의 복귀를 설득하겠으니 국시를 연기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고, 정부가 이를 수용했다는 게 청와대와 복지부의 설명이다. 의료계 원로들은 이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세균 국무총리를 잇따라 만나, 사태 해결을 위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복지부는 대전협과 1일 실무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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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사 단체에 공을 다시 넘겼지만, 집단휴진이 금방 끝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날 복지부가 수련기관 200곳 가운데 151곳에서 집계한 자료를 보면 전공의의 83.9%, 전임의의 32.6%가 진료를 거부했다. 이날로 열하루째 집단휴진을 벌이고 있는 전공의의 경우 직전 집계인 지난 28일(75.8%)보다 휴진율이 더 높아졌다. 박지현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이날 정부의 국시 연기 발표 직후 성명을 내어 “의료계와 상의 없이 일방 추진된 의료정책을 철회하고, 의협과 함께 원점에서 재논의하라”며 ‘정책 철회’와 ‘원점 재검토’라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의협도 오는 7일부터 무기한 3차 집단휴진에 들어가겠다고 별렀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고발당한 10인 전공의 전원에 대해 변호인 선임을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며 “여러분들의 의사 면허, 저항할 수 있는 권리, 반드시 지키고 보호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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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공백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백혈병환우회·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등 6곳 환자단체는 이날 대전협에 공개서한을 보내 간담회를 제안했다. 환자단체는 ”일단 의료 현장으로 돌아오고 난 뒤 정부와 협상하기 바란다. 환자를 볼모로 삼는 듯한 집단행동은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미나 김민제 성연철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