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사단법인 토닥토닥 회원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에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토닥토닥 제공
지난해 9월 사단법인 토닥토닥 회원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에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토닥토닥 제공

부산 침례병원은 금정구에 있는 유일한 종합병원이다. 24시간 응급의료센터와 600여 병상을 갖춘, 부산에서는 몇 안 되는 대형병원이기도 하다. 이 병원은 지난해 7월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경영난이 문제였다. 곧바로 주민 24만명 규모의 금정구 의료공백 우려가 제기됐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부산본부를 비롯해 28개 지역 보건의료·시민단체가 나섰다. ‘지역의료공백 해소와 공익적 병원 설립을 위한 부산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도 함께 꾸렸다. 이들 단체는 침례병원 파산 선고 직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 보건의료기관 등이 이 병원을 인수해 공공병원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적극 알렸다. 마침내 지난해 9월, 금정구의회는 ‘응급의료시설을 갖춘 공공병원 설립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결의문을 내기에 이르렀다.

대책위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는 13일 부산시장 선거에 주목했고, 여야 후보를 가리지 않고 만나 정책협약을 추진했다. 지난 4월17일 서병수 자유한국당 부산시장 후보가 침례병원의 공공병원 전환에 동의했다. 서 후보는 이를 지방선거 공약으로도 채택하겠다 약속했다. 같은달 24일 이성권(바른미래당), 지난 9~10일 각각 오거돈(더불어민주당), 박주미(정의당) 후보도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부산시장 후보가 모두 침례병원의 공공 전환에 동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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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공공의료 비중이 (오이시디 회원국에 견줘 상대적으로) 낮다는 미국이나 일본도 그 비중이 25%에 이르는데, 한국은 5.9%(병원 수 기준)에 그친다”며 “그 가운데서도 부산의 공공의료 비중은 2.9%로 대단히 낮은 만큼, 공공병원 설립이 절실하다”고 짚었다.

■ 진주의료원 폐업, 메르스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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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병원 등 공공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이전 정부에서 경남 진주의료원 폐업(2013년)과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등이 불거지며 커졌다. 민간 의료기관은 수익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각 지역에 꼭 필요한 공공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 좀더 많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마련된 것이다. 다만 한국의 공공의료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최저 수준에 가깝다. 특히 병원 수에 견줘 상대적으로 조금 나은 병상 수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한국의 공공의료 비중은 2007년 11%에서 2016년 9.1%로 되레 줄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공공의료 확대 논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수치다.

대전에서 공공 어린이재활병원을 만들어보자는 논의도 메르스 사태가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그즈음 무르익기 시작했다. 장애 어린이를 둔 많은 부모의 노력이 큰 구실을 했다. 대전 어린이재활병원 설립을 목표로 꾸려진 사단법인 ‘토닥토닥’의 이나경 사무국장은 “2014년 처음으로 장애 어린이를 둔 부모들이 모여 대전에 어린이재활병원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으기 시작해 이듬해 토닥토닥을 만들었다”며 “그때부터 많은 대전 시민과 함께 어린이병원 설립 운동을 펼쳐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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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활동은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전 어린이재활병원 설립’ 공약으로 결실을 맺었다. 새 정부는 이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했고, 지난해 말 국회에서 관련 예산도 확보했다. 오는 13일 대전시장 선거에 나서는 허태정(더불어민주당)·박성효(자유한국당)·남충희(바른미래당)·김윤기(정의당) 후보 등은 어린이재활병원을 설립해 재활 의료서비스와 장애 어린이 및 부모를 위한 교육·복지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전 어린이재활병원의 경우,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100병상 이하로 건립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실제 병원을 짓는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좀더 큰 규모를 바라는 지방자치단체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울산시장 선거에서는 ‘국립 산재모병원 VS 혁신형 공공병원’ 논란이 최근 정리됐다. 애초 자유한국당에서 출마한 김기현 울산시장 후보는 공장이 많은 지역 특성에 맞춰 산업재해 노동자 치료에 특화된 국립 산재모병원의 설립을 주장해왔다. 김 후보는 지난 28일 산재모병원이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하자, 혁신형 공공병원 설립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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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 후보(더불어민주당)는 원래부터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료 확충 계획에 맞춰 혁신형 공공병원을 울산에 유치하겠다고 주장해왔다. 송 후보 쪽은 혁신형 공공병원 계획이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서 비롯한 만큼, 여당 후보인 본인이 이 병원 건립의 적임자라는 주장이다.

■ 대전·울산·경남에도 공공병원 설립 바람

경남은 진주의료원 폐업을 통해 역설적으로 공공 의료 확대의 필요성을 일깨운 곳이다. 지역 보건의료 단체의 바람과 달리 ‘진주의료원 재개원’ 공약은 이번 선거에서 등장하지 않았다. 이미 폐업한 진주의료원 재개원보다는 서부 경남권의 달라진 의료 현실에 맞춘 공공의료 정책이 제시되고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더불어민주당) 쪽은 “경남 서부지역 주민의 건강 관리를 위한 전반적인 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며 “진주의료원의 재개원보다는 소외된 지역의 공공의료 체계를 만들어가고 동시에 부산 및 경남권 공공 어린이재활병원 유치에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태호 후보(자유한국당) 쪽도 “진주의료원 재개원은 지역 주민의 요구나 현재의 민간병원 공급 현황에 비춰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며 “산재병원이나 재활병원을 공공으로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공의료 확대 공약은 다른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지사 선거에서는 문대림 후보(더불어민주당)가 서귀포의료원의 공공 의료 인프라 강화 등 공약을, 원희룡 후보(무소속)가 서귀포의료원 부속 요양병원 건립 등 공약을 제시했다. 충북과 경기, 전남에서도 지역 의료원 신설이나 거점 공공 의료기관 마련 등의 공약이 유권자의 관심을 모은다.

공공병원 신설·확대의 방식은 아니어도 아동 진료나 응급의료 등 민간 의료기관이 소홀히 여기는 부문을 공공에서 책임지겠다는 공약도 있다. 인천시장 선거에 출마한 박남춘 후보(더불어민주당)는 의료원 확충과 의료 취약층에 대한 방문진료 확대를, 유정복 후보(자유한국당)는 어린이 전문병원 마련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국내 의료기관의 병상은 이미 충분히 공급된 상태이기에, 많은 부산시장 후보가 약속한 것처럼 경영 여건이 어려운 민간 병원을 공공 부문에서 인수해 운영하는 방식도 바람직한 공공의료 확대 방안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