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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료·건강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 “두려움·통증 잊게 해줘요”

등록 :2016-03-03 19:24수정 :2016-03-04 10:40

지난달 26일 인천광역시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음악치료사가 말기암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인천/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달 26일 인천광역시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음악치료사가 말기암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인천/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웰 다잉’을 위하여
(하) 호스피스 활성화되려면
인천 부평구의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 5호실에는 4명의 말기암 환자가 함께 지낸다. 지난달 26일 오전 음악치료사 한영섭씨가 기타와 에그셰이커(달걀 모양 악기)를 들고 김현규(77·바터팽대부암 환자)씨의 병원침대 앞에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한 치료사가 “가족을 생각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냐”고 묻자, 김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는 “남산공원이 집 앞인데도 회사 다니느라 바빠서 한번도 아이들을 못 데리고 갔다. 그게 참 많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두 사람은 아빠와의 추억을 노래한 동요 ‘꽃밭에서’를 불렀다.

지난달 26일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음악치료사 한영섭(오른쪽)씨가 환자 김현규(77)씨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지난달 26일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음악치료사 한영섭(오른쪽)씨가 환자 김현규(77)씨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김씨는 호스피스 병동에 42일째 입원중이다. 5년 전 수술을 받았지만 다른 부위로 전이가 되면서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해도 회복이 어려운 말기암 진단을 받았다. 병동 의료진은 김씨가 심한 구토 증상을 가라앉히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한다. 통증을 줄이는 일 외에도 심리상담, 음악·미술치료 등으로 생애 마지막 시기를 평안하게 지내도록 돕고 있다.

다른 암환자들처럼 김씨도 호스피스 병동이 어떤 곳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런 만큼 거부감도 강했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는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와서 지내다보니 기분이 가라앉지 않고 유지가 되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엔 요리교실(쿠킹 클래스)에 가서 단호박 머핀도 만들었다.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의 김데레사 사회복지사는 “환자와 가족(보호자)을 대상으로 의사소통 교육도 한다. 임종을 준비하면서 걸어온 인생을 잘 정리해야 할 시기인데, 가족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갈등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용자 85% “통증 완화 등 만족”
사망 석달전엔 호스피스 이용 권장
“다른 환자 임종 보며 두려움 가셔”

이용률 14%뿐…영국의 1/7 수준
“치료 포기하는 것” 부정적 인식 탓
간병도우미제 도입 적은 것도 한몫

보건복지부가 지난 2일 말기 암환자에 대한 ‘가정 호스피스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호스피스 서비스 확대에 시동을 걸고 있다. 앞서 지난해 7월부터는 호스피스 병동 입원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암 사망자 7만6611명 가운데 13.8%(2014년 기준)에 그치고 있어, 갈 길이 한참 멀다. 영국(95%)과 미국(43%), 대만(30%) 등의 말기암 환자 이용률과 비교하면 훨씬 낮다. 의료계와 환자, 보호자 등의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병원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와 같은 병실의 심동수(60·위암 환자)씨도 국립암센터에서 호스피스를 권했을 때 완강히 거부했다. 그는 “치료를 포기하고 요양원에나 들어가라는 얘기로 들리더라.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격리되는 건 줄 알았다”고 말했다. 몇 차례 상담 끝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그도 막상 와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심씨는 “원예치료를 받다 보면 통증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병동은 입원실과 거실, 실내정원, 상담실, 목욕실, 임종실 등을 갖추고 있다. 일반 병동과 다르게, 벽지를 카페식으로 꾸며 편안한 느낌을 주는가 하면,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환자를 대하는 호스피스 의료진의 말투도 친근감을 준다. 심씨가 머무는 병실에서 몇 발짝만 걸어가면 ‘해밀방’이라는 이름의 임종실이 있다. 심씨의 부인 오연자(57)씨는 “남편이 평소 마지막 순간의 통증이 어느 정도일지에 대한 두려움이 컸는데 오히려 다른 분들의 임종을 옆에서 보면서 두려운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이 집으로 찾아가는 ‘가정형 호스피스’가 아직 걸음마 단계인 만큼, 현재 국내 호스피스 서비스의 근간은 전용병동이나 시설을 두고 있는 ‘입원형 호스피스’다. 올해 1월 기준으로 전국 66개 의료기관에서 호스피스 병동 혹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김씨와 심씨처럼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일반 병동에서처럼 각종 검사와 항암치료 등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통증 조절에 더 신경을 기울여주기 때문이다. 국립암센터 자료(2011년)를 보면, 호스피스 서비스 이용 땐 입원 1주일 만에 통증 정도가 크게 완화된 것(통증도 2.8→2.1)으로 나타났다. 치료 만족도 역시 기존 의료기관(63.9%)에 비해 호스피스 기관(84.7%)에서 더 높았다.

건강보험 적용으로 비용 부담도 어느 정도 덜었다. 말기암 환자가 입원해서 호스피스를 받을 경우, 올해 기준으로 하루에 약 2만1000원(의원급)~2만5000원(종합병원급, 식대·간병비 포함)꼴로 내면 된다. 오연자씨는 “일반 병원에서는 암수술로 열흘 입원했을 때 470만원을 냈고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30만원 안팎의 비용을 내야 했다. 그에 비하면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내는 게 더 저렴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김대균 완화의료센터장(왼쪽)과 환자 심동수(60)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달 26일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김대균 완화의료센터장(왼쪽)과 환자 심동수(60)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런 호스피스 활성화를 위해 전문가들은 우선 부정적 인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죽으러 가는 장소’에서 ‘말기 환자에게 최선의 돌봄 장소’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진도 환자·보호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호스피스로 전환하길 꺼린다. 의사는 ‘치료의 실패’로 여기고, 보호자는 ‘효 사상에 어긋나는 일’로 여기는 탓이다.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는 기간이 평균 23일에 그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기간은 사망 전 석달이다.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병상이 턱없이 부족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애초 지난해까지 인구 100만명당 50병상을 둔 영국 기준으로 국내에 2500병상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가, 2020년까지 1378병상으로 줄여 잡았다. 현재는 1108병상 정도인데다, 기존에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는 곳은 주로 공공병원이나 종교적 이념이 강한 의료기관뿐이었다.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완화의료센터장(가정의학과 교수)은 “대부분 암환자들이 이른바 ‘빅5’ 병원(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으로 몰려가고 있지만 가톨릭 계열인 서울성모병원을 제외하면 호스피스 병동을 갖추고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병동이 일반 병상에 견줘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상급종합병원 지정 때 필수 설치 조항을 넣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대형 대학병원에 대해서는 일반 병동에서도 호스피스 서비스를 일부 제공받을 수 있는 자문형 호스피스팀을 운영하도록 하는 한편, 지방의 경우 40여군데 지방공사의료원이 비어 있는 병상을 호스피스 병상으로 전환해서 운영하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나라 의료계가 ‘존엄한 죽음’ 혹은 ‘임종시 돌봄’에 대해 더 책임의식을 느끼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취지다.

말기 췌장암 환자와 가족이 지난달 24일 대전 충남대병원 호스피스병동 실내정원에서 햇빛을 쬐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말기 췌장암 환자와 가족이 지난달 24일 대전 충남대병원 호스피스병동 실내정원에서 햇빛을 쬐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전문인력 양성도 과제다. 장윤정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과장은 “환자가 속이 메슥거린다고 할 때 항암치료 환자와 호스피스 이용이 권장되는 말기암 환자에게 쓰이는 요법이 다르다. 호스피스에 나설 수 있는 전문 의료인력 양성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간병비 부담 때문에 호스피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보완책 마련도 필요하다. 현재는 호스피스 병동을 갖춘 병원 중에서 간병도우미 제도를 도입한 곳만 간병비가 하루 4000원 정도로 저렴하다. 나머지는 하루 7만~9만원의 간병비를 부담해야 한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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