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시한 복귀 시한까지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 8900여명이 돌아오지 않았다. 정부는 의대 정원 2천명 확대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며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형사고발 준비에 들어가는 한편,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된 대한의사협회(의협) 전현직 간부 5명을 압수수색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였다. 정부와 의사 단체가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결국 환자 피해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정부가 1일 전국 100곳 수련병원(전체 전공의 95% 근무)에 확인한 결과, 복귀 시한인 2월29일 오후 5시까지 이날 하루 동안 병원으로 돌아온 전공의가 271명이라고 밝혔다.
전날 오전 11시 기준 병원들이 보고한 복귀 전공의 294명를 더해도 최대 565명에 그친다. 반면, 2월29일 오전 11시 기준, 100곳 전공의 중 근무지 이탈자는 8945명이다. 전공의 2700여명이 소속된 서울 대형병원 5곳(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 관계자들은 “특별한 복귀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전공의 복귀 시한이 지난 지 하루 만인 이날 오전, 경찰은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 등 전현직 의협 간부 5명을 압수수색했다. 앞서 복지부가 의료법 위반과 형법상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이들이 전공의들의 무더기 사직에 대해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집단행동을 교사·방조해 수련병원 업무를 방해했다고 본다.
이에 의협 비대위는 오후 3시 브리핑을 열어 “의사들은 한명의 자유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다해나가야 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국민 여러분께 불편을 끼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엄포를 놓았다. 특히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아직 결정된 건 아니나 하루이틀 (개원의) 휴진은 비대위 상임위서 결정·시행할 수 있다”며 개원의 집단 휴진 가능성을 내비쳤다. 의사 회원들에겐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낭떠러지 앞에 서 있다”며 “3월3일 여의도로 모여 울분을 외치자”고 독려했다. 의협 비대위는 3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 예정이다.
정부는 미복귀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형사고발을 연휴가 지난 4일부터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이날 누리집 등에 전공의 13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공고(공시송달)했다. 업무개시명령은 의료법에 따라 직접 전달하거나 우편(등기)으로 보내야 하는데, 거주지 문이 닫혀 있거나 주소 확인이 불가능하면 인터넷 공고 등으로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다. 복지부는 2월28일 기준 전공의 9438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했고, 그중 7854명의 수련병원으로부터 업무복귀 불이행 확인서를 받았다. 업무개시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1년 이하 의사 자격정지와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전공의 인력 공백이 지속되면서 수련병원 의료진의 업무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수도권 대형병원 한 의사는 “3월은 교수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서 어떻게든 (인력 공백을) 메우려 하는데 그 이후론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의-정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의대 정원 2천명 확대를 놓고 평행선을 긋고 있는 정부와 의사 단체 간 대화를 중재할 뚜렷한 세력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의료계가 대표성을 지닌 협의체를 꾸려야 대화가 가능하단 입장이다. 전공의 단체와는 사실상 대화가 단절됐다.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전공의 복귀시한 전날인 2월28일 성명에서 ‘2천명 증원 원점 재논의’ 등을 촉구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