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공공기관에 의무구매제로 떠맡겨지듯 팔리던 처지에서 올해는 구매보조금을 지급하는 지방자치단체 절반 이상에서 한 달도 안 돼 1년치 접수가 마감됐을 정도다.
전기차는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대표적 ‘클린카’로 여겨진다. 여기에는 반론도 제기돼왔다. “차량의 제조에서 폐기에 이르는 전체 수명 기간을 따져보는 전과정분석(LCA)을 하면, 내연기관 자동차 못지않게 환경에 부담을 준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소프트웨어 조작 사태로 ‘클린 디젤’의 민낯을 본 사람들은 ‘클린 전기차’의 이미지에도 거품이 끼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을 법하다. 전기차는 얼마나 ‘클린’한 걸까?
‘어떤 전기를 쓰느냐’가 좌우
미국 미네소타대학 연구팀이 2014년 에너지가 생산돼 자동차 바퀴를 돌리기까지의 ‘웰 투 휠’(Well To Wheel) 전과정분석을 해보니, 공기 질 개선에 가장 도움이 되는 차와 가장 악영향을 끼치는 차가 모두 전기차였다. 전자는 재생가능에너지로 만든 전기로 충전되고, 후자는 석탄발전 전기로 충전된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이 분석 결과는 전기차의 환경성이 운행되는 나라의 발전원별 구성인 ‘전원믹스’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전기의 98%를 재생가능에너지로 만드는 노르웨이의 전기차와 90% 이상을 원자력과 화석에너지로 만드는 한국의 전기차는 환경에 끼치는 영향으로 보면 서로 다른 차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석탄화력과 원자력발전에 강력히 반대하는 환경단체까지도 전기차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과거에는 전기가 석탄과 원전에서 온다는 점에서 반대했지만, 이제는 유럽에서 디젤 자동차나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를 아예 금지하는 나라까지 나타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 전기차가 대세다.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이 확대되면 전기차로 가면서도 원자력과 석탄발전 비중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를 타는 것은 온실가스 감축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 질문의 답은 분석 시점의 전원믹스에 따라 달라 가장 최근 분석 결과를 볼 필요가 있다. 환경부의 ‘자동차 온실가스 라이프 사이클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분석’ 연구과제를 수행 중인 서울대 기계공학부 송한호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차량 운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뺀 차량 생산에서 폐기까지의 전과정분석에서는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량보다 온실가스를 더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가 배터리 때문에 더 무거운 것을 고려하지 않고 비슷한 무게(공차 중량 1450~1455kg)의 차량을 비교했는데도 전기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주행거리 1㎞당 49.12g으로 내연기관 차량(44.55g)보다 4.57g 많았다. 엔진보다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더 많이 배출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5년 전원믹스 조건에서 중형차의 ‘웰 투 휠’ 분석을 해보니, 전기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1㎞에 86.9g으로 경유차(137.9g)보다 51g, 휘발유차(177.4g)보다 90.5g 적었다. 전기차를 타는 것이 내연기관 차량을 타는 것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을 적게는 3분의 1, 많게는 절반가량 줄이는 셈이란 얘기다.
문제는 전기차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갈수록 줄어들 것이란 점이다. 송 교수 연구팀의 분석 결과, 중형차 기준 내연기관 차량과 전기차의 에너지 부문 배출량 차이는 향후 전원믹스 변화를 고려하고도 8년 뒤인 2025년이면 2015년의 52%(경유차)에서 39%(휘발유차) 수준까지 좁혀지는 것으로 예측됐다. 전기차는 이미 효율이 높아 연비 증가가 적은 반면 내연기관 차량은 엔진기술 발전 등을 통해 많은 연비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충전망이 더욱 촘촘해지면서 전기차의 상대적 친환경성은 더욱 빠르게 줄어들 수도 있다. 연료비 부담이 덜한 전기차들의 총주행거리가 늘어나면 주행거리당 오염물질 배출량과 무관하게 전기차 대당 총배출량이 증가하는 까닭이다.
무거운 차체는 미세먼지 원인
정부가 최근 특히 강조하는 전기차의 미세먼지 저감 효과는 어떨까? 차량의 미세먼지 배출 과정도 온실가스와 비슷하다. 하지만 에너지뿐 아니라 오염물질 저감장치 장착 유무와 성능, 차량의 노후도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다. 따라서 다른 저감 시나리오와 비교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자동차환경협회 분석 결과, 휘발유 승용차를 사려던 사람에게 정부가 지방비 포함 평균 1945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해 전기차를 사게 할 경우 줄어드는 미세먼지는 질소산화물 (NOx)에 의한 2차 생성분까지 포함해 632.8g으로 계산됐다. 발전 과정에서의 증가분은 고려하지 않은 값이다. 10년 이상 낡은 유로3 소형화물 경유차에 배기가스후처리장치(DPF)를 장착해 줄일 수 있는 미세먼지는 1년에 700g이었다. 디피에프 장착은 보조금 296만원만 지원하면 된다. 투입비용 대비 감축 효과로 보면 디피에프 장착이 전기차 보급에 비해 최소 7배 이상 효과적이란 계산이 나온다.
올해 전기차 1만4000대를 보급하기 위한 국비 보조금 예산 1960억원은 압축천연가스(CNG) 보급 보조금으로 돌리면 승용차 새 차보다 미세먼지를 수십배 더 만들어내는 전국의 경유버스 1만8000여대를 모두 도로에서 걷어낼 수도 있을 금액이다. 하지만 올해 환경부의 미세먼지 국내배출원 집중 감축 예산에서 전기차 보조금 총액은 41.8% 늘고 노후 경유차 디피에프 장착과 시엔지 버스 보조금 총액은 각각 26.9%, 48.1% 줄었다. 미세먼지는 건강에 바로 피해를 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유해물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으로 전기차 보급을 앞세우는 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차량 운행이 유발하는 미세먼지는 배기구나 발전소 굴뚝으로 직간접 배출되는 것이 다가 아니다. 타이어와 도로의 마찰, 제동에 따른 브레이크 마모, 도로 주변에 내려앉아 있던 미세먼지의 재비산 등도 주요 배출원이다. 이른바 ‘비배출가스 미세먼지’다. 환경규제가 눈에 보이는 배출가스에만 집중된 탓에 비배출가스 미세먼지에 대해서는 아직 어느 나라에도 표준화된 측정 방법조차 확립돼 있지 않다. 따라서 정확한 실태는 알 수 없으나 최근까지의 연구 결과들은 배출가스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쪽으로 수렴된다. 전기차는 배터리 무게 때문에 내연기관 차량보다 평균 24%가량 무거워 비배출가스 미세먼지를 더 많이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유럽에서는 몇 년 전부터 비배출가스 미세먼지에 주목해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 입자상물질측정프로그램(PMP)은 지난해 6월 마모되는 타이어의 0.1~10%가 미세먼지(PM10) 형태로 배출되고, 그 양은 승용차 1㎞ 주행에 6㎎가량이라고 보고했다. 브레이크에서도 ㎞당 7㎎가량의 미세먼지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둘 다 현행 유로6 기준 승용차의 미세먼지 PM10 배출허용기준(5㎎/㎞)을 초과하는 양이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합동연구센터(JRC)는 이미 2014년에 배출가스와 비배출가스 미세먼지가 거의 같은 비중이지만 배출가스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비배출가스의 비중이 갈수록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처장은 “정부가 막대한 세금을 들여 2020년까지 계획대로 전기차 25만대를 보급해도 전체 차량 등록 대수의 1% 정도밖에 안 돼 미세먼지 저감에 큰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게 만드는 데 투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