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전문가 베른하르트와 돌아본 낙동강 사업현장

세계적 하천 전문가로 4대강 사업이 막바지로 치닫던 2011년 여름 낙동강 사업 구간을 돌아보고는 “4대강 사업은 운하 공사”라고 단언한 독일 카를스루에대 한스 베른하르트 교수가 22일, 2년반 만에 4대강 사업이 끝난 낙동강을 찾았다. 환경단체들과 대한하천학회가 24일 4대강 ‘재자연화’를 내걸고 여는 첫 포럼에 참석하러 한국에 온 짧은 일정을 활용해 낙동강을 찾은 베른하르트 교수의 낙동강 답사길에 동행했다.

성대한 준공 기념식이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도 떠났다. 하지만 4대강 공사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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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경북 칠곡군 약목면 관호리와 석적읍 중지리 사이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칠곡보. 멀리 보이는 보 한 가운데에선 작업자 서너명이 연신 물에 반죽한 급속경화시멘트를 줄에 매단 양동이에 담아 보 아래 물속의 작업자한테 내려보내고 있었다. 또 무슨 보수 공사를 하고 있으리라는 짐작이 맞았다. 칠곡보 왼쪽 끝단 가까이 가자 차량 진입을 가로막고 선 공사중 안내판이 ‘수문 수밀부 누수보수’ 공사가 4월말까지 진행될 것이라고 알려준다. “(계속되는 보수공사 탓에) 4대강 사업은 절대 준공될 수 없는 사업”이라는 누군가의 표현은 참으로 핵심을 찌른 듯했다.

칠곡보에 설치된 수문 3개 가운데 맨 오른쪽의 1번 수문 옆구리로는 물이 줄줄 샌다. 수문 옆의 보 본체 콘크리트에서도 물이 새는 듯 중간중간 젖은 곳이 보인다. 칠곡보 왼편 물고기 이동통로 옆 둔치에 덮인 콘크리트 블록들이 내려앉아 곳곳이 어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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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둘러본 베른하르트 교수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기본을 지키기 않은 시공과 겉만 멀쩡하게 보이도록 해놓은 눈속임의 결과다. 앞으로도 이런 문제들이 계속 나타나겠지만, 이런 문제들을 계속 고쳐나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진정한 해결책은 보의 수문을 열어 강물이 흐르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보를 다 없애 재자연화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보 위로 걸어가며 내려다본 보 바로 아래 강물에는 녹조와 거품이 뭉친 누런 부유물이 초봄의 햇살을 받아 방향을 잃은 채 떠다녔다. 동행한 정민걸 공주대 교수(환경교육과)는 “강물에 규조류와 녹조류가 섞여 있다. 수온이 낮을 때는 당연히 규조가 많은데, 떠있는 것을 보면 초봄인데도 녹조류가 과거보다 더 보이는 것 같다. 물을 가둬놓아 수온이 올라가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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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으로 자전거가 이따금 지나갔다. 칠곡보 상류 쪽에 조성된 야영장 천막들 밖에는 밤새 눅눅해진 몸을 따뜻한 봄햇살에 말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어떤 사람들한테 한 때의 기분전환과 휴식이 어떤 존재들에겐 밥과 생명이 걸린 일이다.

야영장이 건너다보이는 제방 위에서 만난 양목면 덕산리 농민 전수보(65 )씨는 “전에는 자연 배수가 되던 땅이 보에 물이 찬 뒤로 지하수위가 높아져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다. 보의 관리수위를 2m만 낮춰주면 해결되는데, 나라에서 수위는 낮춰주지 않고 항의하는 농민들한테 법적으로 대응하라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구미보 아래쪽 낙동강 본류와 지류인 감천 합류점 부근은 교량 공사와 역행침식 방지 공사로 어지럽게 파헤쳐졌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나이아가라 폭포에 빗대 ‘엠비아가라’라고 비꼰 거대한 역행침식의 흔적은 감천 바닥에서 감춰졌으나, 하천변에 급경사로 떨어져 나간 절개지는 그대로다. 그렇게 다시 쓸려내려간 모래로 감천 하구와 낙동강 합류점은 준설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구미보에 도착한 베른하르트 교수는 소수력발전소와 어도 사이의 콘크리트 벽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생긴 콘크리트벽 틈새마다 물이 새어나오고 있거나 새어나오는 흔적이 있다. 그 틈새에 얇은 철판이 덧대어져 있었다. 콘크리트가 갈라져 물이 새는 곳에 반창고를 붙이듯 철판을 덧댄 것은 칠곡보 본체에서도 발견됐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정상적으로 한 공사에선 있을 수 없는 현상이고, 대응도 말할 수 없이 어리석다. 위에서 근본적으로 물이 새는 것을 막는 조처를 하지 않고 아래쪽에서 저렇게 해놓은 것은 난센스다. 저런 작업을 한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했을 것 같다”며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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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현장을 보려고 바쁘게 움직이느라 지친 답사단 일행을 잠시 실소하게 한 순간도 있었다. 구미보 아래쪽 둔치에 ‘멸종위기종 흑두루미 도래지역’이므로 교란행위를 삼가야 한다는 펼침막을 걸어놓고는, 그 안에 게이트볼장을 조성해 놓은 이상한 ‘공존’이 지나가던 답사단 일행의 차량 행렬을 멈춰세웠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베른하르트 교수한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이번 답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파괴된 현장에서 멈춰 설 때마다 그의 소감을 묻고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이번엔 오히려 그가 되물었다. “4대강이 저렇게 될 때까지 당신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경북 예천군 풍양읍 효갈이 상풍교 옆에서 4대강 사업으로 옮겨온 취수시설을 둘러보던 베른하르트 교수는 현장답사에 나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떠나 상풍교 위로 느리게 걸어 올라갔다. 다리 중간까지 걸어나가 상류에서 느릿느릿 다가오는 강물을 한참 지켜보던 그가 혼자말처럼 말했다.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강에 지은 건조물들은 오래 가지는 못하리라는 사실이지.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강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승리자는 인간이 아니라 강이 된다.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어리석을 수 있는지….”

칠곡보에서 상주보까지 이어진 답사길 내내 깊은 슬픔과 분노, 허탈감을 굳이 감추려 하지않은 칠순 노학자의 이 말은 마치 자기한테 건네는 위로처럼 들렸다.

낙동강/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