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 빛을 원 편광으로 쏘면 회전 자기장이 생성되어 분극화된 나노입자에 작용해 나노입자가 빠르게 회전한다(오른쪽). 출처: 퍼듀대학교
레이저 빛을 원 편광으로 쏘면 회전 자기장이 생성되어 분극화된 나노입자에 작용해 나노입자가 빠르게 회전한다(오른쪽). 출처: 퍼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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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회전장치의 개념도. 고진공 상태에서 공중부양 시킨 나노입자에 레이저 빛을 선형 편광으로 쏘면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해 진동하지만(왼쪽)
나노 회전장치의 개념도. 고진공 상태에서 공중부양 시킨 나노입자에 레이저 빛을 선형 편광으로 쏘면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해 진동하지만(왼쪽)

1초에 10억 회나 도는 나노 회전장치가 만들어졌다. 이전 기록에 비해 100배나 빠른 회전체다. 연구자들은 이런 나노 회전체가 나노미터 수준에서 물질의 성질을 측정하는 데 쓰이거나, 더 나아간다면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는 양자역학의 물리현상을 측정하는 데에도 쓰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미국물리학회(APS)가 운영하는 물리학 전문매체 <피직스(Physics)>의 최근 보도를 보면,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 연구진미국 퍼듀대학의 연구진은 각자 독자적으로 나노물질을 고진공 상태에서 레이저 빛으로 공중에 띄우고서 1초에 10억 번 회전(분당회전수 600억 RPM)시키는 회전장치를 개발해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따로 나란히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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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퍼듀대학 연구진(통캉 리 교수)에는 이 대학 대학원생인 안종훈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안 연구원은 “레이저 집게(용어설명 참조)를 이용해 작은 입자를 공기 중이나 진공 환경에서 관찰해 다른 조건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물리현상을 찾으려는 연구 분야는 오래 되지 않은 신생 분야인데, 독립적인 두 연구진에서 우연히 같은 결과가 비슷한 시점에서 발견됐다”고 말했다.

두 연구진이 개발한 1초당 10회의 나노 회전장치는 2013년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연구진이 탄산칼슘 입자를 공중에 띄워 1초당 1000만 회 회전시킨 당시 최고 기록(<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보다도 100배 빨라, ‘세상에서 가장 빠른 회전장치’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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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레이저의 광학적 성질을 이용해 실리카(SiO2) 나노입자를 고진공 상태에서 공중에 띄운 다음에 빠르게 회전시켰다. 진공 환경에서도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입자들을 최소로 줄이는 고진공 상태를 유지하고 나노입자를 회전체로 이용함으로써 빠른 회전 속도를 구현했다.

이 장치에서 레이저의 역할은 중요했다. 레이저는 나노입자를 붙들어두는 ‘집게’로 쓰였으며, 또한 나노입자를 회전시키는 회전 전기장으로도 이용됐다. 안 연구원은 “레이저를 이용하는 이른바 ‘광 집게’(optical tweezers)는 이미 널리 쓰이는 기술인데, 레이저 빛을 아주 작은 초점에 모아 입자와 그 주변의 굴절률 차이로 인력이나 척력을 발생시킴으로써 입자를 붙들어두는 장치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그는 나노입자 회전의 원리와 관련해서는 “레이저로 나노입자를 공중부양 하고 난 뒤에 레이저의 원 편광(회전 전기장, 용어설명 참조)을 이용해 나노입자를 회전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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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설명
용어설명

거시계인 전투기의 제트 엔진에서는 회전속도가 1초당 1000회를 넘기 어려운데, 원심력이 커지면 회전체 자체가 파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1초당 10억 회로 회전할 때에도 엄청난 원심력이 생기지만 나노입자가 워낙 작아 나노미터 세계에선 이런 회전 속도가 구현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회전장치’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이런 극한의 회전장치가 당장 어떤 용도로 쓰일지는 아직 확실하게 제안되지는 않았다. 스위스 연구진은 <피직스>에서 “그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회전장치가 우리 눈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구진은 나노물질이 극한의 원심력에 얼마나 견디는지를 측정하는 용도로 쓰이거나, 민감한 센서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더 발전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회전장치’라는 이름값을 빛나게 해줄 분야는 아무래도 양자역학 측정인 듯하다.

안 연구원이 통캉 리 교수 연구진을 대신해 후속연구 계획에 관해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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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연구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목표를 찾는 단계에 있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서 기존에는 도달하지 못한 회전속도를 달성했기 때문에 이런 회전속도를 이용해 이전에는 관찰할 수 없었던 물리현상들을 측정하는 것이 큰 목표입니다.
그중 하나는 ‘진공마찰’을 측정하는 것입니다. 흔히 진공에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니 진공에 있는 물체는 아무런 마찰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진공에서도 영점 에너지와 진공장에 의해 물체가 마찰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진공마찰을 실제로 측정할 수 있다면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극한의 회전장치가 진공에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진공장의 가상입자와 마찰을 일으키고 그 영향을 가시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진공마찰’ 또는 진공의 양자현상을 보여주는 훌륭한 실험도구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논문 초록 (우리말 번역)
공중부양 광기계학(Levitated optomechanics)은 정밀측정, 열역학, 거시 양자역학 및 양자 센서 분야에서 큰 가능성을 지닌다. 이 연구에서 우리는 고진공에서 실리카 나노덤벨 입자를 합성하고 광학을 이용해 공중에 띄운다. 선형 편광 된 레이저를 사용하여, 광학적으로 부양 된 나노덤벨의 비틀림 진동을 관찰한다. 공중부양 된 나노덤벨의 비틀림 균형은 캐번디시 비틀림 균형과 유사한 새로운 현상이며 최근 제안된 바와 같이 [진공의 양자론적 효과로 인하여 발생하는] 카시미르 토크를 관찰하고 중력의 양자 성질을 조사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원 편광 레이저를 사용하면 170나노미터(nm) 직경의 나노덤벨을 1기가헤르츠(GHz) 이상으로 회전시킬 수 있다. 이는 현재까지 실현된 가장 빠른 나노 기계 회전체이다. 더 작은 실리카 나노덤벨은 더 높은 회전 주파수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초고속 회전은 재료 특성을 연구하고 진공마찰을 탐지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Physical Review Letters (2018), https://journals.aps.org/prl/abstract/10.1103/PhysRevLett.121.033603]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