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차리는 그 짧은 순간 잠들어버린 아기. 이은희
밥상 차리는 그 짧은 순간 잠들어버린 아기. 이은희

아이들이 어린 시절, 밥때가 되어 아이를 아기의자에 앉히고 이유식을 데우기 위해 잠시 몸을 돌렸습니다. 잠시 뒤, 따뜻하게 데워진 이유식을 가지고 돌아보니 아이는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탁자에 얼굴을 묻고 그대로 잠들어버리더군요. 깨워서 밥을 먹여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아이의 그 잠이 너무 달아 보여 한참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아기는 단잠에 듭니다. 어찌나 달게 자는지 보고만 있어도 그 달콤함에 취한 듯 하품이 피어납니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단잠보다는 선잠이 늘고, 한밤중까지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어도 잠시 풋잠만 들고 깨어나는 일이 많아집니다.

아예 피크가 없는 초고령노인의 멜라토닌 분비

나이 들수록 잠의 밀도가 낮아지는 것은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의 양과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멜라토닌은 일주기성이 있어, 밤에 최대치가 분비돼 졸음을 유도합니다. 멜라토닌이 많이 분비될수록 쉽게 잠들고 푹 잘 수 있습니다. 멜라토닌의 양은 낮에 시간당 500나노그램(ng)에 불과하지만 밤이 되면 대여섯 배로 분비량이 증가합니다.

그런데 청년기에는 멜라토닌의 밤 시간 분비량이 최대 3천ng에 이르지만, 나이 들수록 최대 분비량이 줄어 그래프가 완만해집니다. 일부 초고령노인(85살 이상)은 아예 멜라토닌 분비 그래프에서 피크(정점)가 거의 사라지는 현상까지 발견됩니다. 멜라토닌 피크가 낮아짐에 따라 수면장애 발생률도 높아지고요. 이 그래프를 보면 쉽게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멜라토닌 분비 저하가 수면장애와 연관 있다면, 외부에서 멜라토닌을 투여하면 수면장애가 개선되지 않을까요?

실제 수면 유도 실험에서 멜라토닌이 수면 촉진 효과가 있고, 복용 시간을 맞춰 조절하면 수면 행태를 전반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음이 보고됐습니다. 멜라토닌 복용 뒤, 적절한 시간이 지나 강한 빛을 쬐는 광선요법까지 겸해 시상하부를 자극하면 수면주기 이동이 훨씬 쉬워진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멜라토닌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날 때 시차 적응 보조제로 널리 알려졌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또한 멜라토닌은 다른 수면유도제와 달리 의존성이 약하고 체내 분해 속도가 빨라 비교적 안전하게 수면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다만 멜라토닌이 모든 이에게 잠을 부르는 기적의 물질은 아닙니다. 멜라토닌 분비량 저하가 아닌 다른 이유로 생긴 수면장애에는 멜라토닌이 별 효과가 없다는 보고도 있고, 사람에 따라 필요한 양도 달라 복용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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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쥐보다 최대 20% 더 산 쥐의 비밀

멜라토닌은 사람에게서만 발견되는 호르몬이 아닙니다. 포유류를 포함한 모든 척추동물뿐 아니라 곤충류, 플라나리아 같은 무척추동물, 심지어 식물이나 조류, 세균에서 발견될 정도로 자연계에서 흔한 호르몬 중 하나입니다. 또한 생물체에 따라 생체주기와 수면 행태를 조절하고, 성적 성숙이나 동면의 시기를 조절하며, 면역계를 조절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는 전천후 호르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멜라토닌을 사람뿐 아니라 다양한 실험동물에게 투여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외부에서 추가로 멜라토닌을 지속적으로 투여하자 실험동물의 수명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현상이 관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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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실험용 생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의 생쥐에게는 보통의 사료와 물을, 다른 그룹의 생쥐에게는 여기에 매일 일정량의 멜라토닌을 섞어 두 그룹의 쥐가 모두 자연사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제공했습니다. 이 실험은 서로 다른 연구진이 다른 월령대의 쥐를 사용해 여러 번 했는데, 멜라토닌을 투여한 쥐는 그러지 않은 쥐보다 평균적으로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멜라토닌 투여에 따른 수명 연장 효과는 최대 5개월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이는 실험용 쥐 평균수명의 20%에 이르는 시간으로, 사람이라면 수명이 약 20년은 길어진 셈이죠.

또한 나이 든 쥐에게 젊은 쥐에게서 추출한 송과선(멜라토닌 분비기관)을 이식한 경우 쥐의 수명이 늘어났지만, 반대로 어린 쥐에게 나이 든 쥐의 송과선을 이식한 경우 오히려 수명이 줄었다는 연구도 있었습니다. 멜라토닌 투여에 의한 수명 연장 효과는 생쥐뿐 아니라 또 다른 척추동물인 땃쥐에서도 관찰됐고, 무척추동물인 초파리, 플라나리아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멜라토닌은 수면뿐 아니라 수명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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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장애 있을수록 치매 발생 위험도 커

멜라토닌이 어떤 경로로 이들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멜라토닌이 강력한 항산화제라는 것입니다. 산소는 생물에게 애증의 대상입니다. 산소가 있으면 포도당에서 아데노신삼인산(ATP)을 더 많이 추출해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에 의해 디엔에이(DNA)나 단백질이 손상될 가능성이 늘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산소 없이는 에너지 효율이 지나치게 떨어지기에, 인간을 비롯한 많은 생물체는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산소를 기꺼이 이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마치 휘발유를 쓰는 자동차는 대기오염을 발생시키고 화재의 위험성도 늘 도사리지만, 빠르고 편리한 이동수단이라는 매력이 강해 여전히 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사람도 자연도 문제가 있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편리하지만 위험할 수 있는 휘발유 자동차의 단점을 개선하려 매연저감장치와 냉각장치 등을 개발해 위험성은 낮추고 효율은 높은 엔진을 만들어 편의성을 강화했지요. 마찬가지로 생물도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산소를 다루기 위해 다양한 항산화제를 진화시켰습니다. 비타민C와 토코페롤을 비롯해 베타카로틴, 리코펜, 루테인, 안토시아닌, 카테킨 등이 대표적 항산화제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중 많은 것이 식물의 선명한 색을 나타내는 구실을 겸하는지라(안토시아닌-블루베리의 보라색, 베타카로틴-당근의 주황색, 리코펜-토마토의 빨간색 등), 색이 진한 식물성 컬러푸드(Color Food)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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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로 인한 산화스트레스는 노화의 강력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멜라토닌 1분자는 10분자의 활성산소를 없앨 정도로 강력한 항산화제로 기능합니다. 특히 멜라토닌은 뇌세포에서 일어나는 산화스트레스성 염증반응을 저지해 치매로 인한 인지장애 치료에도 효과적일 수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수면장애로 고통받는 사람일수록 신경염증 발병률과 치매 발생 위험이 컸고, 치매 환자의 26~60%가 깊게 잠들지 못하는 수면장애로 고통받는 점을 고려하면, 멜라토닌은 잠을 부르는 호르몬인 동시에 잠으로 뇌를 쉬게 해서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지요.

멜라토닌은 선천면역을 담당하는 세포인 대식세포와 자연살해(NK)세포의 증식을 촉진하고, 후천면역을 담당하는 흉선세포의 발달을 돕는 등 면역기능을 강화하는 역할도 합니다. 노화의 또 다른 특성 중 하나가 면역력 약화이므로, 면역계를 자극하는 멜라토닌의 효과 역시 어느 정도 반영된 듯 보입니다.

아기 밤낮이 바뀌면 아침 일찍 외출하라

자료를 살피다보니 멜라토닌은 수면장애부터 우울증·치매 개선, 노화 방지와 면역력 강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를 여러 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얼핏 기적의 만병통치약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애초에 부족해도 문제지만 과하면 더 문제가 되는 것이 호르몬의 특성입니다. 멜라토닌은 비교적 안전한 수면 유도 물질로 알려졌지만, 이 역시 과다하게 섭취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수면주기 교란으로 대낮 등 엉뚱한 시간에 갑자기 졸음이 밀려오는 것이죠. 이는 졸음운전 등 안전사고의 위험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또한 멜라토닌은 면역계를 지나치게 자극해 자가면역질환을 악화할 수 있고, 간을 손상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멜라토닌이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이로 인한 오용 사건은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나라에 따라 멜라토닌이 천연 호르몬이라는 이유로 건강식품으로 분류된 곳도 있고, 인터넷쇼핑 천국에선 해외직구로 멜라토닌 구매가 어렵지 않습니다(물론 이는 현행법상 불법입니다). 이런 건강식품의 경우, 의약품에 비해 그 성분과 용량이 일정하지 않아, 표시 용량의 20%에서 480%까지 중구난방으로 멜라토닌이 함유된 사례가 있다니 반드시 적절한 용량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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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잠투정하거나 밤낮이 뒤바뀌어 양육자를 힘들게 하면, 소아과 의사는 아침 일찍 아기와 외출하라고 권합니다. 멜라토닌 분비는 햇볕으로 조절되기에 아침 일찍 햇볕을 받으면 이를 인지해 분비량이 줄고, 이 순간을 기점으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늘어나기에 아기의 수면 행태를 낮과 밤에 좀더 수월하게 맞출 수 있다는 이유에서죠. 낮에 햇볕을 받으며 충분히 뛰어논 아이일수록 밤에 쉽게 잠들고 더 오래 자는 건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필요한 건 멜라토닌이 아니라 단잠

현대인은 밖에서 햇볕을 쬐는 시간보다 실내에서 액정 화면에 노출되는 시간이 더 많고, 걷고 달리고 움직이기보다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이는 결국 몸이 멜라토닌을 분비해야 하는 시간을 잊게 하고, 몸이 자야 할 필요성을 덜 느끼게 하는 행동이죠.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멜라토닌 자체가 아니라, 달고 깊은 잠일 것입니다. 햇볕 속에 충분히 몸을 움직이는 건, 아마 가장 부작용 없는 수면유도제이자 우리 몸을 좀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키는 방편이 아닐까요.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늙음의 과학: 나이 들어가는 당신은 노화하고 있나요, 노쇠해지고 있나요.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의 나이 드는 것의 과학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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