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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과학

코로나19 시대의 환자는 누구인가

등록 :2022-02-23 09:03수정 :2022-02-23 09:18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58)
오미크론 확산 앞에서 생각하는 환자의 의미
에드워드 아디존의 ‘진료소에 온 환자’(1941). 출처: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
에드워드 아디존의 ‘진료소에 온 환자’(1941). 출처: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

오미크론 변이의 미친 듯한 확산이 만들어내는 효과로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범위 안에서 가장 많은 ‘환자’를 동시에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2022년 2월19일 현재 일일 확진자 수가 10만명을 넘었으므로, 이들이 일주일만 ‘환자’로 분류된다 해도 70만명이 기존 환자 수에 추가된다. 추세 예상처럼 일일 확진자 수가 20만명을 넘게 되면, 대략 150만명이 환자라는 이름표를 얻는다.

별로 많은 수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국내 다빈도질병(건강보험을 통해 진료를 많이 받은 질병) 1위는 2020년 기준 노년백내장으로 33만7571명이었다.[1] 많이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보험 진료로 제일 많이 치료를 받은 질병이라 해도 1년에 33만명에게 생긴다는 말이다. 질병별 환자 수 상위 10개의 환자를 다 더해도 193만명이다. 여기에서 출생(건강보험에선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도 질병 통계에 포함), 즉 병원에서 ‘치료’ 받지만 우리가 ‘질병’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을 빼면 숫자는 168만명으로 줄어든다. 간단히 말하면 특정 시점(예컨대 2022년 3월 어느날)에서 코로나19 오미크론 확진으로 자가격리하고 있는 환자 수와 우리가 1년에 가장 많이 치료받는 10개 질병의 환자 수가 같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한 번쯤 궁금함이 생길 수도 있겠다. 이 ‘환자’는 누구인가.

질병으로 인하여 일상에서 벗어난 사람

이런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느냐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다. 환자란 아픈 사람이라는 말인데 그걸 꼭 물어봐야 아는가, 싶으실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어떤 사람이 아픈 사람인가? 가깝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의 예로 살펴보자. 이 사람은 어깨와 허리의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간단히, 계속 어깨는 심하게 아프고 허리는 가끔 통증이 발생한다). 이전 칼럼에 쓴 바 있지만 공황 발작이 찾아올 때가 있으며 옆에서 누가 소리만 내도 깨기 때문에 수면장애로 분류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벼운 것만 치면 최근에 앞니가 조금 깨졌다거나, 치료받은 지 오래되어 문제가 생긴 치아가 있고, 피부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증상들을 놓고 글 쓰는 이는 자신을 환자라고 정의하지는 않는다. 아프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증상들은 일상의 범주 안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코로나19 확진자는? 이들을 우리가 환자라고 말하는 것은 인후통이나 기침, 콧물 등 여러 증상과 함께 폐렴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격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를테면 무증상 코로나19 확진자는 그 자신에겐 통증도 불편도 없으니 환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시아르(PCR) 검사로 확진이 되면 이들 또한 환자의 범주로 규정되는데, 그것은 이들이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두 사례에서 환자의 중요한 구분점을 확인한 셈이다. 환자는 질병으로 인하여 일상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클로드 로저스의 ‘건너편에 있는 환자’(1952). 입원한 화가가 건너편 환자를 그린 이 작품은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강조된 노란색과 환자의 부자유한 상태(오른쪽에 있는 나무판은 당시의 부목과 같은 것이다)는 질병 세계의 독특한 질서를 보여준다. 출처: 테이트 미술관
클로드 로저스의 ‘건너편에 있는 환자’(1952). 입원한 화가가 건너편 환자를 그린 이 작품은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강조된 노란색과 환자의 부자유한 상태(오른쪽에 있는 나무판은 당시의 부목과 같은 것이다)는 질병 세계의 독특한 질서를 보여준다. 출처: 테이트 미술관

빨리 질병에서 벗어날 의무

일상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이 지점을 중심으로 환자를 규정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저명한 미국 사회학자 탈콧 파슨스(Tarcott Parsons)의 정의다.[2] 파슨스는 병자 역할(sick role)이라는 개념으로 환자를 설명하려 했다. 환자는 질병이라고 하는 불운 상태에 있으므로, 이 사람에겐 평소에 수행하던 의무가 면제된다. 대신 환자는 의료인과 의학적 접근에 최대한 협조하여 빨리 질병을 벗어날 의무가 있다. 이런 ‘빨리 질병을 벗어날 의무’가 파슨스의 병자 역할이다.

이 병자 역할 개념은 이후 더 발전했지만, 한편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사회학에서 병자 역할은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의 작업[3] 이후 매우 중요해진 사회적 낙인(stigma)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야기했다. 고프먼이 정의한 낙인이란 저평가되는 고정 관념을 만드는 특징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성별, 피부색, 나이, 성적 지향 등으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낮은 평가를 받게 된다면 그것이 낙인이다. 그리고 질병은 여러 경우에 낙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2020년 코로나19 확진자가 어떤 대우를 받았던가. 확진자가 아니더라도, 코로나19가 처음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중국인이 받았던 대우는 어떤가. 환자 역할은 이런 질병의 낙인 효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 의료인류학, 의료인문학은 병자 역할이 환자의 질병 경험을 다 포괄하지도,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다는 점을 문제시했다. 당장 불치병에 걸린 환자를 생각해 보라. 그는 질병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병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인가? 또 병자 역할은 이런 식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평소에 사람은 직업 공간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다가, 질병에 걸리면 병원 공간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병자 역할이 가정하는 두 공간은 어느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등질(等質)적이다. 그러나 환자가 꼭 의사 말을 잘 듣고, 의료 제도가 부여하는 일들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하는가. 무엇보다 질병은 환자의 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왜 사회가 규정하는 방식대로(‘빨리 나을 것’,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을 것’, ‘아파서 기존의 역할을 다 하지는 못할지라도 어느 정도 수행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것’ 등) 따라가야 하는가.

인간이 속해 있는 2개의 왕국

유방암 투병을 하던 저술가 수전 손택은 질병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를 제기한 책 <은유로서의 질병>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질환은 삶의 밤으로, 매우 짐스러운 시민권이다. 모든 사람은 두 개의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하나는 안녕의 왕국, 다른 하나는 병의 왕국에 속한다. 좋은 여권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는 모두 언젠가 다른 쪽의 시민으로 자신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온다.”[4] 글 쓰는 이는 손택의 이 글을 비판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몇 번이고 다시 읽곤 한다. 건강과 질병을 연구하는 이에게 이 글은 너무도 중요한 부분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왕국의 시민, 그것도 두 왕국에 동시에 속한 시민이다. 평소엔 한쪽 시민권은 잊어버리고 산다. 하지만, 해가 지고 아픔의 밤이 오면, 우리는 불현듯 다른 국가에 발을 디디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두 왕국의 법과 질서는 다르기에, 익숙한 방식으로 움직이면 계속 충돌이 벌어진다. 건강의 왕국에서 하던 대로 똑같이 하려는 사람은 오히려 건강의 왕국에서 더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질병의 왕국에서 우린 살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 표지. 뱀과 싸우기 위해 인간은 자신의 팔을 내어주어야 한다. 질병과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싸우려면, 나는 질병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출처: 아마존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 표지. 뱀과 싸우기 위해 인간은 자신의 팔을 내어주어야 한다. 질병과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싸우려면, 나는 질병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출처: 아마존

나, 너, 우리의 환자됨

우리는 환자라고 말할 때, 어떤 집단적 정체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환자와 이항관계를 이루는 의료인이 워낙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라는 집단이 있을까? 환자 단체가 있으므로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개인이 환자 정체성, 즉 자신을 환자라는 특징으로 인식하는 일은 흔치 않다. 아주 오래된 만성 질환이나 암과 같이 그 무게가 엄청난 질병이 아닌 경우, 환자 정체성은 일시적으로 부여된 것일 뿐이다. 예컨대 내가 코로나19 확진이 되어 치료를 받는다면 잠깐 코로나19 환자 집단에 속한다. 하지만 평생 나를 코로나19 환자라고 정의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 명칭은 잠시 나를 거쳐 가는 기억으로 남을 뿐이다. 물론 이것은 질병 나름일 것이다.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질병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경우엔 다른 특징보다 질병이 나를 더 잘 규정할 때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손택이 말했던 것처럼 잊어버리고 있을 뿐 우리에겐 환자 정체성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모두 어느 시점, 어느 정도 환자가 될 것이다. 그것이 목숨을 위협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렇다면 환자가 되었을 때 그 세상이 평소의 질서와는 너무 다르기에 정신을 꽉 차리고 벌어질 일들을 상대해야 함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환자 정체성을 구성하는 질병 문화는 분명 존재함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무시하고 살아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 내가 환자가 아니라는, 어떤 질병으로 일상의 규정에서 떠나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이 내 주변의 환자와 나를 구별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실 환(患)이라는 한자는 마음(心)이 꿰뚫렸다(串)는 뜻으로, 질병과 근심을 모두 의미한다. 이 고통과 근심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자신의 환자(患者)됨을 깨닫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1. 다빈도질병 통계.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 2021년 2월 19일. http://opendata.hira.or.kr/op/opc/olapHifrqSickInfo.do

2. Parsons T. The Social System. The Free Press; 1951.

3. Goffman E. Stigma: Notes on the Management of Spoiled Identity. Touchstone; 1963.

4. Sontag S. Illness as Metaphor and AIDS and Its Metaphors. Picador; 1978.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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