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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파멸에서 구해줄 수 있을까

등록 :2021-08-31 08:59수정 :2021-08-31 09:33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52)
연상호의 ‘반도’…파멸의 운명에 저항하기
영화 ‘반도’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영화 ‘반도’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어느새 현실이 된 기후재앙도, 코로나19 팬데믹도 그 원인은 동일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한정 없는 욕심이 환경의 조건을 뒤흔들었다. 그로 인하여 극단적인 기후 변화가 나타난 것이 기후재앙이다. 한편, 환경의 변화는 이전에 인간과 접촉이 없던 생물을 이주시켰고, 그들을 숙주로 하던 미생물이 인간으로 넘어온다. 그로 인하여 이전과는 다른 감염병이 확산한 것 중 하나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이런 설명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상을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 모형인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우리에겐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가 인간의 욕심인 한,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 한 파괴는 끝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사람들 머리 한 구석에 불안의 똬리를 틀고 있다.

우리 앞에 파멸의, 멸망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불안을 지울 수 없으므로 우리는 파멸을 그려본다. 물론, 기후 협정이나 새로운 환경 기술의 발달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안을 달래는 방법은 그것을 잊어버리거나, 꿈이 그러하듯 그 불안이 이미 실현된 상황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따라서, 멸망 후의 풍경을 제시하는 작품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2020년에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반도’는 우리의 멸망 후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 멸망은 어느 실험실에서 퍼져나간 바이러스가 모든 사람을 좀비로 만들어버려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묵시론적이다. 남한을 덮친 바이러스가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가 이 땅을 봉쇄한 것에서 이야기가 출발하므로, 그것은 운명론적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신 또는 초월적인 힘이 이미 정해 놓은 방향처럼, 이런 파국을 피하는 방법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멸망 가운데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진지한 고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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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과 ‘반도’, 같고도 다른 점

감독의 전작 ‘부산행’과 세계관, 설정이 겹치지만 ‘반도’는 지향점이 다르다. ‘부산행’이 부산으로 달려가는 케이티엑스(KTX)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좀비와의 사투를 그린다면, ‘반도’는 좀비로 뒤덮인 땅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따라서, 전작이 좀비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이후 넷플릭스 ‘킹덤’ 등으로 이어지는 케이(K)-좀비의 장르적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것과 달리, ‘반도’에서 좀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반도’의 좀비는 적대적인 환경, 이를테면 언제 튀어 오를지 모르는 용암과 같다.

주인공 정석(강동원 분)은 군인으로 멸망한 이 땅에서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난민 지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국제 정세와 탈출하는 과정의 트라우마 탓에 자리를 잡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온다. 남한에 몰래 들어가서 좀비들을 피해 돈다발을 실은 트럭을 가지고 나오라는 것. 트럭을 발견하는 것까진 별문제 없었으나 그와 동료들은 의외의 공격을 받고 트럭을 빼앗긴다. 그것은 잔존해 있던 631부대의 소행으로, 부대원들은 생존을 위해 인간성을 포기하고 즉물적인 생에만 연연하고 있다.

정석을 구한 것은 민정(이정현 분)의 가족 준이(이레 분)와 유진(이예원 분). 민정은 정석에게 아이들을 이곳에서 빼내어 달라고 요구하고, 트럭을 되찾아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631부대로 잠입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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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 운명 앞에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

영화는 관객에게 그리 호의적인 평을 받진 못했다. 신파 연출이 너무 부각되고 장면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것, 좀비가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등에서 상당한 비판을 받은 탓이다. 모두 타당한 문제 제기지만, ‘반도’가 드러내고자 한 지점이 기존의 좀비 영화와는 다른 곳에 있음에도 ‘부산행’과의 연결성 때문에 좀비가 부각되면서 관객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탓이 크다.

큰 윤곽에서 말한다면, ‘반도’는 한국판 ‘매드 맥스’라 말할 수 있다. 멸망 이후의 세계를 그리려 했던 감독은 그 방법으로 좀비 바이러스를 택했고, 다른 해결책이 없이 빠르게 퍼진 바이러스 탓에 남한은 바로 망해 버린다. 이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인데, 감독은 멸망을 운명으로 설정해 놓았기에 작품에서 국가가 망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연 감독이 그리고자 하는 것은 운명을 피하기 위한 대처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인간이 보이는 반응이다. 바이러스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좀비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에 감독은 관심이 없다. 그것은 자연재해처럼 우리를 둘러쌀 것이고, 피할 방법은 없다. 감독은 그런 절망적인 운명 앞에 등장인물들을 던져 놓음으로써,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려 한다.

웹툰 ‘지옥’의 한 장면. 네이버 시리즈온
웹툰 ‘지옥’의 한 장면. 네이버 시리즈온

감독이 이야기를 맡은 웹툰 ‘지옥’에서도 이런 구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갑자기 지옥문이 열리고, 초월적 존재가 한 남자를 갈가리 찢어버리면서 웹툰은 출발한다. 이 참혹한 죽음은 예고 뒤에 찾아오지만, 어떤 이유로 찾아오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한 남자는 그것이 죄의 심판이라고 설교하며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종교 세력을 형성, 사회를 지배한다. 처음 이 심판이 조작이라고 생각해서 쫓아다니던 주인공은 그것이 정말로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운명임을 확인하게 되지만, 죄에 대한 벌 또한 아님을 알게 된다.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에게, 죽음이 닥칠 것이라는 예고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지옥’ 또한 이 재난이, 운명의 장난이 누구의 잘못이거나 악한 계획인지, 이를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살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이 탐구하는 것은 운명 앞 인간의 반응이다. 그리고, 그런 반응 중 우리를 살리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여러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이어지는 연상호 감독의 답은 가족애다. 모두가 죽어가는 ‘부산행’과 ‘지옥’에서 아이를 구하는 것은 부모의 사랑이다. ‘반도’에서 그 형태는 약간 변하지만(작품에 등장하는 가족이 혈연 가족이 아니므로), 여전히 지옥 또는 멸망에서 우리를 구하는 것은 가족을 향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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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가족’이 주는 의미

결국 가족뿐이라는 결론이라면 너무 촌스러운 것은 아닐까. 특히, 가족 또는 혈연이 많은 것을 망가뜨린 이곳에서 그래도 가족이 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후퇴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일단, 영화는 우리가 평소에 너무도 당연히 의지하는 자본, 권력, 폭력을 반대항으로 제시하고, 그것이 우리를 구할 수 없음을 역설한다. 특히, 운명처럼 닥쳐오는 멸망 앞에서 자본과 힘은 어떤 구원도 제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으론 흔히 반복되어 온 자연 앞 인간의 무력함을 반복하는 일일 뿐이다.

가족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면, 그것이 지니는 속성이 우리가 당면한 상황에서 무엇을 일깨우는지가 해명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만약 이런 다층적이고 광범위한 재난에서 그나마 가족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가족 이기주의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런 주장을 굳이 공들여 말할 필요는 없다. 아니, 그런 주장이라면 오히려 배격해야 한다. 팬데믹 앞에서 가족만, ‘우리’만 앞세우는 것이 무의미함을 1년이 넘는 시간은 잘 보여주었다. 나만 안전하다고 해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전, 나만 지키면 되었던 20세기의 재난들과 달리, 기후 위기와 팬데믹은 남의 안전을 지켜야 내가 안전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단지 ‘사랑’이라면, 가족보다는 연인을 등장시키고, 고전적인(예컨대, ‘타이타닉’이 보여준 것과 같은) 연인을 지키기 위한 희생을 전시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적어도 인간적인 사랑은 그것이 숭고한지와는 별개로,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파괴 앞에서 해답이 될는지 알기 어렵다. 내 목숨을 바쳐서 타인을 구하는 것은 인간, 더구나 협소한 범위의 인간을 향할 뿐이기에.

‘반도’의 가족은 혈연공동체가 아닌 돌봄공동체다. 네이버 영화
‘반도’의 가족은 혈연공동체가 아닌 돌봄공동체다. 네이버 영화

사실 ‘반도’에 등장하는 가족은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이 아니다. 민정의 가족, 첫째 준이와 김 노인(권해효 분)은 재난 속에서 우연히 모인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은 멸망한 땅 안에서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 주인공 정우도 그의 죄의식으로 인하여(영화 시작, 정우는 아기라도 살려달라는 민정의 요청을 거절하고 차를 출발시킨 바 있다) 민정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고 본다면, ‘반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우리를 파멸에서 구하는 것은 자본이나 권력(삼합회)도, 폭력(631부대)도 아니다. 서로를 향한 돌봄이 우리를 구할 것이다. 그것은 혈연, 씻어버릴 수 없다던 피의 진함에서 나오는 마음이 아니기에, 전통적인 ‘가족애’와는 다르다. 주변 사람을 향한 관심과 보살핌이 멸망의 운명 앞, 서로를 살피기보다 짓밟는 데 더 익숙한 이 세상에서 우리를 건져낼 것이다.

돌봄에 관해 생각해 볼 때, 의학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오래전, 의학은 돌봄의 대표적인 방식이었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이 의학적 사태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해결책을 의학에서 찾지 않는데(물론, 모두 다 그토록 치료제를 기다리고 있긴 하다) 나는 그것이 의학에서 돌봄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학은 내쫓긴 돌봄의 자리를 생물학적 지식으로 대체해버렸고, 우리 모두의 위기에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능력은 어느샌가 빠져나가 버렸다.

하지만 지금이 잃은 답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놓았던 돌봄을 회복할 때, 의학은 차갑기만 하다는 비난을 벗어나 모두에게 지워진 파멸의 운명에서 살아남기 위한 답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의 의학은 잃었던 힘을 되찾게 될 것이다.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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