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앞에 선 인간…종마와 겨루는 ‘망아지’ 신세?
[곽노필의 미래창]
스마트폰이 열어젖힌 모바일시대
더 편하고 더 빠른 세상 열었지만
디스토피아 막을 인간가치 회복을
기자곽노필
- 수정 2024-06-29 16:47
- 등록 2019-12-23 06:00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21세기 들어 두번째 지나간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2010년대 중반에 대두한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은 그 변화의 속도와 폭을 상징한다. 지난 10년간 과학기술은 세상을 얼마나 바꿔놓았을까? 2010년대의 총아는 단연 인공지능이다. 딥러닝이 기폭제 역할을 하고, 이세돌 9단을 꺾은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붐을 일으켰다. 인공지능은 포커, 온라인 게임에서 잇따라 인간 최고수를 꺾고 인간 고유의 예술 영역에도 뛰어들었다. 이제 웬만한 전자기기에선 인공지능이 필수가 됐다. 10분에 하나꼴로 인공지능 특허가 쏟아진다. 닉 보스트롬 옥스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장은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기술 혁신 앞에 선 인간의 처지를, 질주하는 종마와 경주해야 하는 하룻망아지 신세에 비유한다.생명과학계에선 3세대 유전자가위가 탄생해 유전자를 ‘읽는’ 시대에서 ‘편집·교정하는’ 시대로 바꿔놓았다. 3D 프린팅에선 특허 빗장이 풀리며 개인용 3D 프린터 시대가 열렸다. 구글은 운전자 없는 자동차를 공상에서 현실로 끌어내렸다. 인터넷의 성장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인터넷 이용자 수는 10년 새 두배로 늘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 수는 수십억에서 수백억 단위로 급증했다. “누구와도 실시간 교류하고 누구나 이동의 자유를 누리며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세상, 인공지능과 유전공학으로 타고난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이 이 기술들이 지향하는 변화의 방향이다.기술 혁신이 가져온 생활 변화의 중심에 스마트폰이 있다. 모바일기기를 중심으로 지구촌은 하나의 네트워크가 됐다. 스마트폰이 창출하는 관련기기·서비스 시장도 한 해 수천억달러에 이른다. 이를 화폐의 `통화 승수' 효과에 빗대 `스마트폰 승수'라고 부를 정도다. 일상의 허브가 된 스마트폰은 소셜미디어의 번성을 가져왔다. 소셜미디어는 처음엔 정보 독점 시대를 끝냈다. 중동에 `아랍의 봄'을 불러왔다. 그다음엔 문자 시대를 끝냈다. 동영상 시대가 만개했다. 유튜브 동영상 시청 분량이 하루 10억시간을 돌파한 게 2016년이다. 인터넷은 곳곳에서 경제의 주역도 바꾸고 있다. 직접 투자를 하지 않고 연결만 해줘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우버, 에어비앤비는 출범 10년도 안돼 기존 택시, 호텔 업계를 밀쳐내고 있다. 하지만 혁신이 세상을 좋게만 바꿔가는 건 아니다. 인터넷은 국경없는 세계 시장을 만들어냈다. 장벽이 사라지자 부의 집중이 심해졌다. 빅데이터는 정보를 쥔 쪽의 권력을 비대화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2020년까지 6억대 가까운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겠다는 중국의 방침은 빅데이터 디스토피아 사회를 연상시킨다. 인공지능은 진짜 같은 가짜(딥페이크)를 쏟아내며 불신 지수를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혁신은 인간의 일상을 온라인 세상이라는 우리 안에 가뒀다. 인간의 역사에서 도구는 인간의 자유를 넓혀 왔다. 새로운 디지털 세상에선 도구가 만든 시스템에 인간이 갇히고 있다.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아주 편리한 도구를 얻는 대신 인간을 잃고 있다. 고독을 얻고 관계를 잃었다고나 할까. 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인은 하루에 평균 6시간40분 인터넷에 접속한다. 주어진 거의 모든 자유시간을 온라인 속의 콘텐츠들과 함께 보내는 셈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모든 자극을 끊어버리는 `도파민 단식'이 주목받는 건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말해준다. 2010년대는 일상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넘어간 ‘전환의 시대’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곧 닥칠 2020년대엔 5세대(5G)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정보 지연·정체가 없는 디지털 고속도로가 뚫리는 것이다. 이는 모든 기기의 연결성을 한 차원 높일 것이다. 고삐 풀린 기술을 조련하는 방법을 시급히 찾아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바람직한 삶과 가치는 무엇일까? 어떤 기술이 이를 함양하고, 어떤 기술이 이를 해칠까?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인문학이 그 답을 뽑아내는 화수분이 될 수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물건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지만, 무엇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건 인문학이다.” 기술컨설팅업체 블루울프의 에릭 베리지 대표의 말에 지금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가 잘 녹아 있다.이세돌은 바둑 인공지능 앞에서의 좌절감을 은퇴 이유로 들었다. 바둑을 `둘이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으로 배운 그는, 인공지능 시대에 과연 그런 것이 남아 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인공지능엔 승패는 있지만 묘수와 실수, 꼼수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없다. 그래도 괜찮을까? 기계시대의 디스토피아를 피하려면 이제 호흡을 가다듬고 기술 아닌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방법을 생각할 때가 아닌지 생각하며 2020년대를 맞는다.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