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12일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활동에 대해 “지난 6개월간 적폐청산을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 배후로 이 전 대통령이 지목되고, 검찰수사 필요성까지 제기되자 반격에 나선 모습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낮 바레인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적폐청산 작업은) 국론을 분열시킬 뿐만 아니라, 또 중차대한 시기에 안보·외교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한국 경제가 기회를 잡아야 할 시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이어 “한 국가를 건설하고 번영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파괴하고 쇠퇴시키는 것은 쉽다”며 “새로운 정부가 들어와서 오히려 모든 분야의 갈등과 분열이 깊어졌다는 데 저는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특히 최근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의 ‘댓글 공작’ 등 정치개입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겨냥해 “우리가 외교·안보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군의 조직이나 정보기관의 조직이 무차별적으로 불공정하게 다뤄지는 것은 우리 안보를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국가 안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논리다. 또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댓글 공작’과 이를 위한 군무원 선발 등의 ‘배후’로 이 전 대통령을 지목하자, 직접 나서 ‘정면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이 “김관진 전 장관에게 (댓글 작성 등을) 직접 지시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취재진을 돌아보며 “상식에서 벗어난 질문을 하지 말라. 그것은 상식에 안 맞다”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세상의 어느 정부가 댓글을 달라고 지시를 하겠느냐.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렇게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라며 “(이 전 대통령이) 조만간 간담회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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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이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과 관련해 ‘개인에 대한 책임 처벌이 아니다. 불공정 특권 구조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다’라고 지난 9월27일 야4당 대표 초청회동에서 말한 바 있다”(박수현 대변인)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청와대 안에서는 불쾌해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다들 이 전 대통령의 발언이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정치보복이 아니라 사회를 바로잡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기간 동안 불법을 기획하도록 지시하고 탈법을 자행하도록 사주한 전직 대통령으로서 일말의 양심도 없이 정치보복 운운하며 불법행위를 합리화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국민의당도 “민주주의 후퇴의 장본인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 운운은 적반하장”이라는 논평을 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 초법적인 정치보복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바른정당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 지금은 법원의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유경 성연철 김규남 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