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이 돌아서는데 그만 한결같다. 대통령의 ‘복심’답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말이다. 호가호위했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모든 일은 대통령의 지시였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친박들도 “최순실, 우리는 몰랐다”며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대통령을 두둔하고 있다.
1. “김병준 교수 거부는 노무현 정부 부정하는 것”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파문으로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떼라’는 국민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일방적으로 개각을 발표했다. 여당도 야당도 심지어 교체되는 총리도 몰랐던 개각이었다. ‘물 먹긴’ 이정현 대표도 마찬가지다.
‘총리 내정 소식을 사전에 알았냐?’는 의원들과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 대표는 “그런 내용들을 다 막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나도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병준 교수를 대통령에게 총리 후보로 추천했다. 노무현 정부 때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교수를 야당이 거부하는 건 노무현 정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준 교수가 참여정부 출신임을 강조하며, 대통령의 개각을 받아들이라 압박한 것이다.
사실 10년 전 이 대표는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에 대해 ‘14점짜리 국정운영자’라고 박한 점수를 주며 혹평한 바 있다. 2006년 청와대가 김 내정자를 교육부총리로 지명했을 때, 당시 한나라당 부대변인이었던 이 대표는 “경제를 망치고 부동산 정책 실패를 주도했던 청와대 인사를 교육부총리로 임명한 것을 보면 이제 교육까지 거덜 낼 작정인 것 같다”며 “김 부총리의 인사청문회가 불행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랬던 그가 “(김 내정자는) 지방에 공기업을 내려보내고 지방 균형 발전을 했다. 저같이 시골 지역구(의원) 입장에서 엄청 칭찬하고 싶다”며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2. “나도 연설문 쓸 때 친구 얘기 듣는다”
이 대표는 최순실씨의 개인 컴퓨터에서 청와대 중요 문서가 발견되고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 등을 미리 받아봤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도 가장 앞장서서 대통령을 두둔했다.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첨삭’했을 때 이 대표는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다.
언론 보도 직후 이 대표는 사안의 심각성을 뭉개려고 애썼다. 이 대표는 “연설문을 준비한다든지 기자회견문 준비한다든지 다양한 의견 듣고 반응 듣고 한다. 그런 것까지 기자들에게 공개하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제가 대정부질문 하나만 하더라도 아주 다양하게 언론인 얘기도 듣고 문학인 얘기도 듣고 아주 일반 상인 얘기도 듣고 친구 얘기도 듣고 한다”고 말했다.
이정현의 오발탄 “나도 연설문 쓸 때 친구 얘기 듣는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개인 컴퓨터에서 청와대 중요 문서가 발견되면서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등을 미리 받아봤다’는 의혹을 두고 “(나도 연설문 쓸 때) 친구 얘기도 듣고 한다”고 발언했다.
이정현 대표는 25일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트로엘스 보링 덴마크 에프터스콜레연합회장을 면담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연설문이 나온 시점에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재직했는데 몰랐느냐’는 질문에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저도 잘 모른다”며 “한번 먼저 청와대에 입장과 해명을 먼저 들어봐야겠다. 그렇게 한 뒤에 어떤 문제점 있는지, 어떤 경위로 그렇게 됐는지 내용을 먼저 파악을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첫째는 사실 여부, 두 번째는 만약 사실이라고 하면 그 경위 이런 내용들이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면서도 “연설문을 준비한다든지 기자회견문 준비한다든지 다양한 의견 듣고 반응 듣고 한다. 그런 것까지 기자들에게 공개하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현 대표는 이어 “제가 대정부질문 하나만 하더라도 아주 다양하게 언론인 얘기도 듣고 문학인 얘기도 듣고 아주 일반 상인 얘기도 듣고 친구 얘기도 듣고 한다”고 말했다.
(2016년 10월 25일 한겨레신문)
3. “사랑하는 동생도 청와대 안 들여놔”
새누리당 내에서는 ‘이정현 사퇴론’이 강하게 일고 있지만, 이 대표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대표는 2일 사퇴 요구를 거절하며 “위기 수습 뒤 다시 이런 주문을 한다면 그때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친박과 비박의 설전이 오가면서, 이 대표의 대통령 옹호 발언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비박계에선 이 대표가 최순실 의혹 관련자들의 국정감사 증인채택을 막았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주호영 의원은 “(이 대표가) 최근 수습 과정에서 ‘(대통령이) 사랑하는 동생(박근령·박지만)도 청와대에 안 들여놓는다’는 사려깊지 못한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 등을 겪으며 형제지간 사이가 멀어졌고, 되레 최순실씨를 ‘혈육 그 이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보면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던진 셈이다.
4. 굶고 눕고... 온몸으로 막은 비선실세 의혹
사실 지난 9월 이정현 대표의 단식 역시 대통령으로 향하는 의혹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대표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강행 처리를 주도한 정세균 국회의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을 벌였지만, 미르재단과 케이(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의혹이 막 불거져 나올 때였다. 실제 국민의 관심과 언론 보도는 이 대표의 단식으로 쏠리기도 했다.
이 대표가 ‘박근혜의 복심’이 된 것은 2007년 당내 경선이 끝난 이후부터다.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자가 이정현에게 당 선대위 홍보부본부장을 제의했지만, 그는 박근혜 전 대표를 모셔야 한다며 거절했다. 감동 받은 박근혜 전 대표는 “제가 잊지 않겠습니다”고 답했다.
‘박근혜 방패막이’ 이정현…‘보스’에 매달린 30년 정치인생
그가 ‘박근혜 복심’이라는 특수 지위에 오른 것은 2007년 당내 경선이 끝난 이후부터다. 이명박이 경선에서 이긴 뒤 이명박 캠프에서는 이정현에게 당 선대위 홍보부본부장을 제의했지만, 그는 박근혜를 모셔야 한다며 거절했다. 그 뒤에는 경기지사 김문수가 그에게 정무부지사 자리를 제안했다. 그는 역시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 이를 전해 들은 박근혜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가시지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대표님(박근혜)을 모시고 정치를 하면서부터는 한나라당이라고 써진 파란 점퍼를 입고 서울 시내를 활보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당당하고 이렇게 떳떳하고 이렇게 행복한 정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표님이 저한테 다른 데로 가라고 하시면, 저 깨끗이 정치판을 떠나겠습니다.” 이정현이 당시 했다는 이 말은 만일 정치윤리 교과서가 있다면 베스트 답안이 될 것이다. 감동받은 박근혜는 “제가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실제로 박근혜는 그를 챙겼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이계한테 친박계가 공천 학살을 당할 때였다. 박근혜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이명박한테 거세게 맞섰고, 비례대표 후보 선정에서 이정현만큼은 당선 안정권으로 여겨지던 22번에 배치했다. 이로써 이정현은 꿈에도 그리던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는 “박근혜 전 대표 같은 귀인을 만나”, “그분이 배려해준 덕분”에 국회의원이 됐다고 말했다(<진심이면 통합니다-이정현의 자서전적 에세이>. 2011년).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도 그는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등 뒤에서 저를 비웃을 때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준 박근혜 대통령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2016년 10월 1일 한겨레신문)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돌파한다면, 이정현 대표에게 전화할 것이다. 그리곤 “제가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 충성스러운 정치인이 될 지,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지역구민들에게 충직한 의원이 될 지 이제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