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택 감독이 실소유주란 의혹이 제기된 광고기획사 ‘플레이그라운드’가 청와대와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을 잇는 징검다리 구실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이 업체가 대통령의 해외순방 사업권을 따내고, 논란에 휩싸인 미르·케이스포츠 재단과 함께 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청와대와 두 재단을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의 작용을 빼놓고선 설명하기 힘든 대목들이다.

<한겨레>가 6일 입수한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가 지난 5월20일 해외문화홍보원에 낸 ‘국고보조금 교부신청서’를 보면, 이 업체는 ‘2016 케이에이드(K-Aid) 아프리카 3개국 출범 및 문화교류행사’의 사업비로 국고보조금 11억1493만원을 신청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5월26일부터 31일까지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등 아프리카 3국 순방에 맞춰 기획된 태권도, 사물놀이, 비보잉, 대중음악 엔플라잉 협연 등의 행사 연출 사업비다. 이 업체의 대표는 업계 선두인 제일기획 출신의 김홍탁씨다. 김씨와 차 감독은 업무를 매개로 깊은 관계를 맺어온 사이다. 차 감독은 김씨 소속사 등으로부터 광고 물량을 받아 이를 영상으로 제작했다. 차씨가 오랫동안 대표를 맡아온 아프리카픽쳐스에 다녔던 한 직원은 “두 사람은 오랫동안 일을 같이한 친한 사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야 설립된 신생 업체가 대통령 해외순방 사업을 따낸 배경에 두 사람의 끈끈한 관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2일 이란 테헤란 순방 기간 중 밀라드타워에서 열린 문화행사에서 케이(K)스포츠재단의 태권도 시범단 공연을 관람한 뒤 인사말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 공연 대표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고 있다.  테헤란/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2일 이란 테헤란 순방 기간 중 밀라드타워에서 열린 문화행사에서 케이(K)스포츠재단의 태권도 시범단 공연을 관람한 뒤 인사말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 공연 대표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고 있다. 테헤란/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차 감독은 플레이그라운드에 이사 등으로 이름을 걸쳐놓고 있지는 않지만, 회사의 실질적 소유주란 의혹도 나오고 있다. <제이티비시>가 지난 5일 공개한 녹취를 보면, 차 감독이 플레이그라운드의 실질 소유주임을 암시하는 대화 내용이 나온다. 김씨가 “대표(나)를 앉혀놓고 그에 대한 대우를 해줘야 내가 일을 할 것 아니냐, 차 감독님은 자기를 믿으라는 거지”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와 관련해 김씨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나와 차 감독이 연관된 회사는 모스코스다. 언론에서 보도된 ‘플레이그라운드’는 차은택 감독과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차 감독이 지난해 3월께 자신이 대표로 있는 모스코스를 공동으로 운영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지만, 이후 설립된 플레이그라운드와 차씨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김씨는 또한 대통령의 해외순방 행사 사업 또한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따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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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플레이그라운드는 미르재단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미르는 이미 차 감독이 재단 설립 및 인사에 깊이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 플레이그라운드가 해외문화홍보원에 낸 국고보조금 교부신청서에 딸린 ‘보조사업자 개요’에서 이와 관련된 사실이 확인된다. 이 업체는 자신을 보조사업자로 명시하면서 과거 자신들이 한 주요사업으로 현대차 ‘고잉 홈’(Going Home) 광고 제작과 함께 ‘미르재단 케이프로젝트(K-Project)’를 실행했다고 기재해놓고 있다. 그 구체적인 내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겨레>는 지난 며칠 동안 미르재단에 거듭 확인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다만 신청서가 제출되기 전 미르재단은 이란에서는 한류문화 교류시설을 건설하려는 ‘케이타워 프로젝트’,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을 앞두고 식품개발 원조사업인 ‘케이밀(Meal) 사업’ 등을 주도했다. 따라서 플레이그라운드가 이들 사업의 실행 과정에 관여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묘하게도 미르와 플레이그라운드는 지난해 10월, 불과 20일 시차를 두고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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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일환으로 2014년 8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상명대학교 상명아트센터에서 열린 융복합 공연 '하루(One Day)'를 관람하기에 앞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차은택 공연 총연출자. 이 공연은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주제로 한 것이다. 청와대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일환으로 2014년 8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상명대학교 상명아트센터에서 열린 융복합 공연 '하루(One Day)'를 관람하기에 앞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차은택 공연 총연출자. 이 공연은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주제로 한 것이다. 청와대사진

플레이그라운드는 미르재단뿐만이 아니라 케이스포츠재단과도 관련돼 있다. 이 업체가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해외순방에 맞춰 기획한 행사에 태권도가 포함됐는데, 시범 업체가 약 4개월 전 설립된 케이스포츠에서 운영하는 ‘케이스피릿’이었다. 이에 대해 김홍탁씨는 “케이스피릿은 순방 문화행사의 여러 공연단, 출연진 중 하나일 뿐이며 당사는 이들을 대행한 것이 아니라 순방 문화행사 전체의 연출과 용역을 대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플레이그라운드의 인적 구성도 차은택씨의 인물들과 겹친다. 차 감독과 절친한 후배인 온디자인에스이 김성현(43) 대표는 차씨와 같은 기획사에 함께 이사로 이름을 올려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24일 미르가 입주할 건물의 임대차 계약을 맺은 당사자였다. 그는 플레이그라운드의 이사로 등재돼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업계 한 관계자는 “차 감독이 운영하는 아프리카픽쳐스 사람들이 플레이그라운드가 생기면서 일부 이동했다. 또한 지난해 미르재단이 설립되면서 플레이그라운드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파견 형식으로 미르재단 명함을 파고 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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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근 방준호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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