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19대 국회의원 298명(사퇴자 포함)의 ‘2015년도 정치자금 수입·지출 보고서’(회계보고서)를 분석해보니, 의원들이 지출 내역을 부실하게 신고해 정치자금(후원금)이 어떤 목적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치자금법 37조는 정치자금을 쓴 목적과 금액, 날짜, 사용처, 주소, 사업자번호 등 지출 내역을 상세히 기재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를 위반했을 경우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 부실기재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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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재 사례는 현금 지출과 관련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월, 5월, 8월 등 3차례에 걸쳐 정치자금에서 현금 400만원을 ‘해외출장’ 명목으로 환전했지만, 이 돈을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구체적으로 보고하지 않았다. 지출 목적도 기록하지 않아 해외출장을 어디로, 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해당 지역구의 포항시북구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의원 쪽에서 환전 영수증은 제출했는데, 세부 사용 내역은 제출을 하지 않아, 소명을 요구해 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 의원 쪽에 현금 사용 내역에 대해 수차례 답변을 요구했지만, “내역을 밝히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답하지 않았다.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수차례 정치자금 계좌에서 10만~50만원의 현금을 인출해 사용하고 회계보고서에는 ‘현금 지출’이라고만 기록했다. 강 의원의 회계책임자인 허아무개씨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증빙 영수증은 모두 첨부해 제주시선관위에 제출했기 때문에 세부 지출 내역을 건별로 상세히 보고해야 하는지 몰랐다”며 “업무 미숙으로 ‘현금 지출’이라고만 보고해 지난 2월 관할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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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 내역을 포괄적으로 보고해 정치자금을 쓴 목적을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밥값으로만 6500여만원을 지출한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밥값을 쓸 때마다 지출보고서에 ‘매식비’라고만 기록했다. 간담회 등 정치활동을 위해 쓴 것인지, 어떤 목적으로 식비를 지출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숙박비를 지출하면서도 목적과 이유 등은 빼고 ‘숙박비’로만 보고했다.

반면,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밥값과 숙박비를 지출하며 각각 ‘청년정치의 방향을 논의하는 간담회’, ‘부산외국어대학교 정치학 강연 차 숙박’ 등으로 다소 지출내역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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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처리를 잘못해 수입·지출 내역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사례도 있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3월17일 중국 출장비로 후원금 계정에서 100만원을 지출한 뒤, 출장이 취소되면서 이 돈을 되돌려받았으나, 후원금 계정이 아닌 의원 자산 계정으로 반환금을 수입처리했다. 정치자금은 의원 자산 계정과 후원금 계정, 정당 지원금 계정 등으로 이뤄져 있다.

원 원내대표 지역구의 평택시선관위는 “계정 처리를 잘못한 것은 법규 위반은 아니지만 후원금 계정에서 나간 돈이 취소되면 후원금 계정으로 이를 다시 편입시키는 것이 맞다”며 “즉시 환수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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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보고서 부실기재는 국민들의 감시의 눈을 가리는 행위로 “수입·지출 내역을 공개해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부정을 방지”한다는 정치자금법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사실상의 위법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선미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팀장은 “처벌조항이 없다 보니 의원들이 부실 보고를 해도 강제할 방법이 없고, 국민들의 감시를 어렵게 만들어 정치자금의 부정 집행 사례가 반복되는 것”이라며 “처벌조항을 마련해 지출 내역을 상세히 보고하도록 강제하고, 현재 3개월로 제한돼 있는 회계보고서 열람 기한을 폐지해 국민들이 회계자료를 언제, 어디서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욱 김민경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