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외교’라는 낱말이 언론에 처음 등장한 때는 1996년이다. 대한민국의 해외자원개발 투자가 처음 시작된 때는 1977년이다. 에너지 자원의 95% 이상을 나라 밖에 의존하는 나라로서 오래된 숙명적 과업이었다.
이를 건국 이래 가장 정치적으로 이용한 이가 2008년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해 1월 당선인으로서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를 공식 지명하면서 “자원외교를 할 수 있는 가장 적격자”라고 일렀다. 2월 양해각서(MOU)가 체결된 석유공사의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은 ‘이명박 자원외교’의 첫 치적으로 홍보되었다. 3월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6% 경제성장 목표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세계적 에너지 확보를 위한 자원외교다”라고 말했다. 국가적 어젠다로 격상된 것이고 ‘경제대통령’ 이명박에겐 명운을 건 정치가 된 셈이다.
개국공신들 ‘자원외교’ 앞장이명박 정부의 개국공신들이 자원외교 홍보대사로 나섰다.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 이명박 대선후보 시절 외곽 지원단체를 이끌었던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 친이계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표적이다. ‘자원외교 특사’를 자임한 이상득 의원은 남미 볼리비아만 6차례 방문했다. 박영준 국무차장은 자원개발 민간기업을 지원한다며 전세기로 아프리카를 돌았다.
‘자원외교 총리’로 임명된 한승수 총리도 첫 출장이 중앙아시아 자원외교 길(2008년 5월)이었다. 당시 우즈베키스탄 나망간 광구 탐사, 카자흐스탄 잠빌 광구 계약 등을 성사시킨 한 총리는 순방 중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가 앞장서서 (자원외교의) 길을 개척해놨으니 이제는 기업인들이 나서서 과실을 따야 한다”고 치적 삼았다.
양해각서나 본계약을 체결할 때마다 자주개발률이 높아진다고 정부는 홍보했다. 전체 자원 수입량에서 자국이 확보한 광구의 자원 생산량을 지분만큼 반영한 비율로, 자주개발률은 정권의 목표였다. 4대강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국외 자원을 국민들에게 체감시키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1~4% 맴돌던 자주개발률을 2012년까지 25%로 높이도록 지시했다. 실제 자주개발률은 쑥쑥 자랐다. 하지만 조작에 가깝다. 국내 도입이 불가능한 자원이 대부분이었다. 단순히 지분 투자만 해도 확보한 자원으로 환산해 자주개발률 물량에 포함시켰다. 참여정부까지 자주개발률 산식은 ‘확보 자원량/365일’이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365일을 지우고 조업일수를 넣었다. 새 계산법은 개발률을 높였다.
거짓과 조작의 산물 ‘자원 자주’이명박 정부는 자주개발률을 공기업 경영평가 지표에 포함시켰다. 공기업 사장의 거취, 임직원의 임금까지 좌우하는 잣대가 됐다. 석유·가스·광물자원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이 돌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출신의 김신종 광물자원공사 사장, 박영준 국무차장과 가까운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 등이 앞장섰다.
내부 통제장치인 이사회는 기만당하기 일쑤였다. 광물공사가 1조원 넘게 투자한 멕시코 볼레오 동광사업은 또다른 통제장치인 투자사업심의위원회까지 무시한 경우다. 해당 공사의 해외투자 기준이 되는 일종의 수익률은 10.31% 이상이다. 그러나 공사 실무팀이 볼레오 사업의 경제성을 검토한 결과 도출된 수익률은 5.36%였다. 공사는 수치를 조작했다. 투자사업심의위가 적발해 수정을 요구했지만 조작된 수치는 이사회에 고스란히 제출됐고 사업은 시작됐다.
이명박 정부는 자원개발 민간기업에도 재정을 퍼부었다. 마찬가지로 ‘자주개발률 신화’를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대표적인 당근이 성공불융자다. 기업이 나랏돈을 빌려 자원사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하면 융자금 대부분을 탕감받는다. 부좌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서 받은 자료를 <한겨레>가 분석한 결과, 2008~2012년 성공불융자 감면액은 1500억원이었다. 제도가 시행된 1984년 이후 이명박 정부 전까지 이뤄진 총 감면액의 39%에 이른다. 그 기간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은 386억원을 감면받았다. 민간기업 중 최대 수혜자다.
한국은 해외 자원개발사업의 대표적인 후발주자다. 좋은 광구는 미국, 유럽, 중국이 대부분 차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늦게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이 깃발을 든 셈이다. 정부는 공적개발원조(ODA)도 카드로 활용했다.
볼리비아는 이상득 전 의원이 한국 기업의 리튬 개발 사업 지원차 특히 많이 다녀간 자원 부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8월 방한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에게 2750억원(2억5000만달러)가량의 차관(EDCF)을 제공하기로 한다. 이자율 0.1%로 40년 동안 갚는 조건이었다. 막상 리튬을 손에 쥐진 못했다.
자주개발률에 목을 맨 에너지 공기업은 서슴지 않고 웃돈을 주며 사업을 따냈고, 해외에서 우리 공기업끼리 입찰 경쟁하는 촌극도 불사했다. 경제성과 매장량은 부풀려졌다. 땅속에 있다던 석유·가스, 광물 대부분은 그곳에 없었다. 애초 과대포장되었던 것이다.
‘이명박 자원외교 1호’인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도 그 가운데 하나다. 2008년 10월 석유공사는 확보한 광구에 원유 72억2300만배럴이 묻혔다고 이사회에 보고했다. 하지만 지난해엔 55억9430만배럴로 재평가(국회 보고)됐다. 거의 퍼올리지도 않은 땅속 기름이 그새 3분의 1 이상 증발했다. 석유공사는 이 사업에 8494억원가량을 투입했지만 아직 한푼도 회수 못했다.
“정부가 개척했으니 기업이 과실을 따야 한다”고 했으나, 2015년이 되도록 여문 과실은 많지 않다. 이 대통령이 세계를 돌며 체결한 자원개발 사업 양해각서 24건 중 18건이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한 총리가 성사시켰다는 우즈베키스탄 나망간 광구 사업은 현재 사업 철수 단계다. 전순옥 새정치연합 의원실과 <한겨레>가 분석해봤더니, 18일 기준 이명박 정부 때 80개 사업 가운데 21개가 종료되었고, 2조1294억원(잠정·캐나다 하베스트 인수사업 중 정유부문 매각 손실 포함)을 잃었다. ‘자원개발엔 오랜 시간이 걸리니 기다려봐야 한다’는 으레 하는 말은 종료된 사업엔 통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때 진행된 50개 사업 가운데 33개가 종료되었고, 7233억원 손실이 확정됐다.
이명박 정부 때 공기업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에만 31조원 이상이 투입되었다. 2014년말 기준으로 3조9232억원(3조3210억원 확정)의 손실이 추정된다. 철수, 매각, 축소하려는 사업이 많고, 금융비융도 커서 손실은 계속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불어나는 금융비용산업통상자원부도, 외교부도 ‘이명박 자원외교’ 방식을 결국 용도폐기했다. 그런데도 ‘자원외교’ 추진 과정과 결과에 책임진다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2011년 6월3일, 아침 온도 14도. 구름이 좀 꼈을 뿐 볕은 봄을 가득 머금었다. 아침 7시50분 마흔살 한 직장인이 제 집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라크 쿠르드 유전사업을 주무하던 석유공사 실무 과장이다. 그는 직장 동료에게 결결이 토로했다고 한다. “이러다가(사업 이렇게 추진하다가) 구속될 거다.” 원유는 발견되지 않고 쿠르드 정부는 계약변경을 요구하던 때다. 석유공사는 쿠르드 쪽 사업을 되레 더 확장하고자 했다. 업무 부담, 스트레스,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 그리고 당도한 자살. ‘자원외교 1호’ 사업의 유일한 책임자였다.
임인택 김정필 최현준 류이근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