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 / 한겨레DB
정의화 국회의장 / 한겨레DB

정의화(66) 국회의장은 부산고와 부산대를 나와 부산에서 봉생병원을 운영하던 의사였다. 1996년 국회에 진출해 내리 5선을 했다. 지금 그를 보좌하는 정책수석비서관(1급)은 광주일보 정치부장, 무등일보·호남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김성(61)씨다. 김 수석은 한 달 전까지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었다.

정의화 의장은 대개 새누리당 출신인 그의 참모들에게 “광주에서 모셔온 내 친구”라고 김 수석을 소개했다. 국회 사무처 업무보고를 받고 “호남 출신들 손들어보라. 숫자가 너무 적은 것 같다. 내가 김 수석을 모셔왔으니 열심히 일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정의화 의장은 취임 뒤 첫 지방 일정으로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그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5·18) 공식 기념곡 지정을 지난해 국회가 결의했다. 대한민국 국회가 정한 결의문 진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회의장의 책무”라고 약속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의 ‘님’은 광주정신이다. 광주정신이 대한민국의 남남갈등 해소와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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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후보직 사퇴 기자회견을 한 뒤 청사 밖으로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후보직 사퇴 기자회견을 한 뒤 청사 밖으로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의화 의장의 호남 사랑은 국회의원이 되기 훨씬 전인 1991년부터 시작됐다.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부산과 광주 사람들이 함께 만든 ‘영호남 민간인협의회’에 참여한 것이 계기였다. 김성 수석도 그때부터 알던 사람이다. 정 의장은 2009년 ‘영남 출신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호남 지역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한 공적’으로 조선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수와 광주의 명예시민이기도 하다. 동서화합이 남북통일의 전제조건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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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국회의장 취임 뒤 남북국회회담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의장 직속으로 남북 화해·협력 자문위원회도 구성했다.

지난달 30일 위촉장 수여식에서 정 의장은 “평생에 단 한 번도 흡수통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남북한이 화해협력을 통해 상대방을 존중해주며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다”라고 했다. 그의 ‘통일 대한민국’ ‘만델라식 용서와 화해’ 발언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흡수통일 야망의 노골적인 공개”라고 비난한 것에 대한 응답이었다. 통일 방식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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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우선 한국과 베트남 또는 한국과 중국 수준의 교류와 왕래가 이루어지고 그 이후 경제통합을 이루는 등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남북한은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합의통일이 되어야 한다.”

정의화 의장의 발언과 행동을 놓고 여야의 평가는 엇갈린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허영일 부대변인은 ‘정의화 국회의장님을 존경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야당에서 여당 출신 국회의장을 존경한다고 논평을 낸 전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 정의화 의장이 여야 협상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여당에 양보를 ‘공개적으로 요구’해 협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본다. 남북국회회담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돌출행동을 자행’한다거나 ‘말썽의 소지를 만들고 있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생각처럼 정의화 의장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말썽거리일까? 정말 그럴까? 아니다. 정의화 의장은 오히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살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유는 이렇다.

현 정권은 보수다. 정확히 말하면 보수를 자처한다. 보수는 급격한 변화에 맞서 공동체를 안정적으로 지키려는 태도나 이념을 말한다. 세계 역사에서 보수는 진보와 경쟁하며 진화했다. 책임, 명예, 포용은 보수의 필수 요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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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과 분단으로 진보가 자리잡지 못했다. 따라서 보수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현 정권에서 책임, 명예, 포용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현 정권은 보수의 탈을 뒤집어쓴 기득권 세력에 가깝다. 기득권 세력은 무책임, 몰염치, 적대감으로 무장한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및 사퇴 파동으로 그런 ‘가짜 보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문회가 열리지 않은 이유를 애먼 ‘여론재판’ 탓으로 돌렸다.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미룬 사람은 자기 자신인데도 말이다. “높아진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고도 했다. 입으로 내는 소리가 다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자기 비서들 앞에서 한 얘기다. 상처받은 국민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입을 싹 씻었다.

이런 정권을 누가 각성시킬 수 있을까. 야당은 그럴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지금은 ‘합리적 보수’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그런 정치인이다. 숫자가 적어도 ‘진짜 보수’는 정권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 새누리당 초선의원 6명은 일찌감치 문창극 후보자 사퇴를 요구했다. 이들이 초기에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온 나라가 ‘문창극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들이야말로 진짜 보수라는 얘기다.

성한용 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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