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이하 내일)의 최장집 이사장(고려대 명예교수)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안 의원의 만류에도 최 교수가 사퇴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어, 안 의원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10월 재보궐선거는 물론 향후 정치세력화 과정에서 적잖은 차질과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최 교수는 1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치학자로서 연구소의 정책 개발이나 안 의원의 거시적인 정치 전략 등을 조언하고 뒷받침하는 정책프로그램을 짜기를 바랐는데 실제로는 연구소의 역할이 정치세력화 문제와 중첩되면서 부담스러워 사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원로 정치학자로서 정책 조언자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직을 맡았지만, 안철수 신당 창당 준비 등 세력화를 위한 조직화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워 사퇴를 결심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주에 그만둬야겠다는 결론을 내고 토요일에 내 뜻을 (안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안 의원 쪽은 갑작스런 사퇴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안 의원 쪽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최장집이라는 상징성뿐만 아니라 정치세력화 전략 등 실질적인 차원에서도 최 교수의 역할을 누가 대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안 의원이 풀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재보선을 통해 원내에 진입한 안 의원이 정책 연구·개발과 정치세력화를 위해 ‘영입 1호’로 공을 들인 최 교수가 중도하차하면서 그의 인재 영입 구상은 물론 정책 세미나 일정과 10월 재보선 전략도 차질이 예상된다. 안 의원의 한 참모는 “당장 9월 이후에 있을 ‘정책네트워크 내일’ 주최의 현안 세미나와 10월 재보선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의 사퇴 배경을 두고는 정치 현안에 대한 안 의원과의 견해차 때문이라는 뒷말이 무성하다. 최 교수와 가까운 한 인사는 “최 교수는 안 의원이 최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국정조사 국면에서 양비론이 아니라 보다 직접적인 해결책을 행동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특히 서해 엔엘엘(NLL·북방한계선) 문제에서는 한반도 평화 관리라는 보다 넓은 관점으로 접근하지 못한 데 대해 실망이 컸다. 또 정치적 사안에 해결 의지를 보여줘야 할 텐데 언제까지 평가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사실상 ‘정치적 결별’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가 80여일 만에 안 의원과 갈라서면서 안 의원의 ‘용인’ 능력에 대한 의문도 증폭되고 있다. 안 의원은 함께 ‘청춘 콘서트’를 열며 자신의 ‘정치적 멘토’로 불리던 김종인 전 의원,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전후해 결별한 바 있다. 이들은 그 뒤 안 의원의 정치 역량과 상황 판단력에 회의적인 발언을 거듭하며 사실상 ‘안티 안철수’로 변신한 바 있다.
안 의원의 공보역인 금태섭 변호사는 “지난주 금요일 저녁까지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지금까지 최 교수 쪽에서 요청이 있었는데 뭔가 이뤄지지 않았거나 안 의원에게 조언을 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던 적도 없었다”며 “안 의원이 최 교수를 모실 때 ‘십고초려’까지 한 상황이다. 진심으로 사퇴를 말렸고, 지금도 만류하고 있다”고 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