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꼬 빠진 찐빵.”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16일 밝힌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한 당내 ‘경제민주화 실천모임’ 소속 한 인사의 첫 반응이다. 이는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과 대규모 기업집단법 제정, 중요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도입 등이 결국 빠지면서 당내 일각의 평가마저 인색해진 것이다. 박 후보가 이달 초 경제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인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사실상 결별하면서부터 이런 정책들이 빠질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박 후보가 내놓은 경제민주화 정책은 보수정당 후보로선 전향적인 변화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릴 만하나, 여전히 한계를 벗어나진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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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긍정적 변화는 총수 일가의 횡령 등에 대한 처벌 강화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제도 폐지 등 불공정거래 방지 의지에서 찾을 수 있다. 아울러 산업자본이 은행을 사금고로 이용할 수 없도록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축소하는 등 금산분리 강화책도 평가할 만하다. 특히 박 후보가 야권 후보들의 공약에도 없는 ‘중간 금융지주회사 설치’를 의무화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간 위험이 전이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을 내놓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불법 및 불공정거래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 그 엄정한 집행을 약속한 것은 결코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보수정당이 이 정도나마 변화했다는 것은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조적, 근본적 접근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김 교수는 “박 후보는 공정경쟁을 왜곡하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구조 교정 수단(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금지 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기대를 모았던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은 ‘기업의 큰 혼란’, ‘외국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 등 재계가 써온 수사를 동원해 박 후보가 거부했다. 그는 “경영권 방어에 들어갈 막대한 비용을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쓰도록 하는 것이 국민경제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지만, 사실 이는 총수 일가의 비용을 기업의 비용과 혼동한 것이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삼성 등 크게 3곳을 중심으로 기존 순환출자 해소에 약 9조60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가긴 하지만, 이는 기업이 아닌 총수가 지급해야 할 돈이다. 기업 투자와는 무관하다. 게다가 총수 일가가 순환출자 지분을 사들인다 해도 주식이란 자산을 취득하기 때문에 돈을 허비하는 것도 아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재벌 문제의 핵심은 세습과 경제력 집중에 있다. 세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출자구조인데,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이 빠져 있는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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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위원장이 도입하겠다고 밝힌 대규모 기업집단법도 중장기 검토 과제로 밀려났다. 박 후보는 “현행 법체계와 충돌 가능성”을 들어 사실상 도입을 거부했다. 이 법안의 제정을 주장해온 김상조 교수는 “선수는 기업집단(재벌)인데, 심판은 개별 기업(계열사)만 상대하는 현행 법체계가 (대규모 기업집단법에 견줘) 더 심각한 충돌을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김종인표 경제민주화’에 있던 것들이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에서 사라진 것들이 적지 않다. 애초 김 위원장은 권한에 견줘 책임이 적은 총수 체제의 경영 및 지원 기구 등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부당행위를 반복할 경우 아예 지분을 팔도록 하는 지분조정명령제 도입 등을 제안했으나, 박 후보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종일 경제민주화국민본부 자문위원(한국개발연구원 교수)은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대규모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데서 빚어지는 온갖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채 대증요법적인 처방에 그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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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 해소 등 여러 선언적 정책을 뒷받침할 구체적 이행 계획은 제시되지 않았다. 영남 지역의 한 재선 의원은 “이건 (재벌개혁으로 인식되는) 경제민주화 공약이 아니라 공정거래 질서 확립 공약이다. 이것을 경제민주화 공약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 기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류이근 조혜정 기자 ryuyige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