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부자 되는 줄 알았어. ‘한나라당 찍으면 돈 된다’고 난리였지….”
서울 강북지역 다세대주택 주인 김아무개(60)씨는 2008년 총선을 떠올리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뉴타운 사업으로 부자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김씨는 유세를 쫓아다면서 이웃들한테도 “한나라당을 찍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뉴타운 사업 때문에 여야 승패가 갈렸다는 게 당시 주민들 평가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34평짜리 아파트를 준다는데 김씨는 3억원 가까운 돈(본인 부담금 2억원, 월세 보증금 1억원)이 필요하다. 6가구 세를 놓아 월세 200여만원을 받아 생계를 잇는 김씨한테는 꿈같은 돈이다. 주민 여론도 험악해졌다. 지난 총선 때는 고생한다고 한나라당 후보한테 따로 죽을 쑤어주던 이웃이 최근 동네를 찾아와 악수를 청하는 그 국회의원의 손을 딱 쳐버렸다고 한다. 김씨는 “거짓말해서 당선된 사람은 다음 선거에서 절대 당선돼선 안 된다. 심판해야 한다”고 했다.
한나라당 수도권의 상당수 의원이 지지부진한 뉴타운 사업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큰 덕을 봤는데, 1년 앞으로 다가온 내년 19대 총선에선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 사업은 서울 지역의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한나라당 소속으로 ‘확보’하고 있던 집권 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은평 뉴타운 지역을 느닷없이 방문하기도 했다. 서울 48개 지역구 가운데 28명이 뉴타운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고 그 가운데 23명이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이들은 정치권에서 이른바 ‘(뉴)타운돌이’라고 불린다. 민주당 소속 의원 5명도 ‘뉴타운 맞불’을 놓아 겨우 당선됐다. 선거 직후 “오세훈 시장한테 뉴타운 개발 약속을 받았다”고 했던 정몽준 전 대표 등 6명이 ‘뉴타운 헛공약’ 혐의로 고발됐지만, 검찰은 나중에 이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 바람을 탔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말을 극도로 아꼈다. 하나같이 ‘타운돌이’로 지목되는 것을 억울해했다. 강북지역 한 초선 의원은 “총선 이전에 이미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뉴타운 때문에 당선됐다는 세간의 평가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강북의 다른 초선 의원 쪽도 “뉴타운 개발은 공약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의원 누리집에는 ○○뉴타운 꼭지를 따로 마련해 홍보하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뉴타운 사업이 한고비를 넘겨 다음 총선에서 별문제 될 게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ㅈ의원, ㅎ의원 등은 “뉴타운 사업의 성공으로 지역구 일부가 천지개벽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의원이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고 털어놨다. 뉴타운 문제로 주민들의 원성이 큰 강북의 서너 곳은 한나라당 현직 의원들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ㅇ의원, ㄱ의원, ㅅ의원 등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된다.
뉴타운에 반대하는 주민 비율이 차츰 높아지는 흐름도 여당 의원들로선 불안한 대목이다. 애초 찬성과 반대 비율이 80 대 20 정도였는데, 최근엔 50 대 50으로 엇비슷해졌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중진 의원을 이겼던 한 초선 의원은 “뉴타운 반대 주민들은 야권 성향이 강하다”며 “뉴타운 공약으로 상징되는 여당의 지역발전론이 이젠 ‘녹슨 칼’이 돼버려 여야 선거 구도가 힘들어졌다”고 했다.
서울 서부지역 한 초선 의원은 “수도권 총선에선 박빙의 표차로 승부가 갈릴 가능성이 커 ‘뉴타운 약속 위반’이란 공격이 선거 결과에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