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26일 쇠고기 수입 고시 이후 시위 저지와 국민여론 다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정부·여당이 쇠고기 논란 초기의 안이한 인식으로 되돌아가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비롯해, 행정안전부·법무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통상교섭본부장, 국무총리실장 등을 청와대로 불러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정책 주무부처와 시위 대응, 홍보·설득 관련 책임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대통령이 진두지휘를 한 셈이다. 이날 한승수 국무총리는 ‘대국민 선무’에 가까운 담화문을 발표했다.

① 사태원인 인식 ‘원위치’ 촛불집회 초기 국면에 정부·여당은 사태 원인을 ‘광우병 괴담’ 탓으로 돌렸다. 지난달 6일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은 “피디수첩 보도 이후 이 문제가 전 국민의 관심사로 확대되면서 특히 인터넷상이나 일부 언론에 사실이 아닌 괴담 수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무렵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에 대한 시민들의 의문 제기를 ‘인터넷 편향성’이라고 규정했다. 당·정·청은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인터넷 괴담’에 대한 정식 수사 방침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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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이반이 심각해지자 이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한동안 자세를 낮췄다. 이 대통령은 5월22일 대국민 담화에서 “정부가 국민들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26일 정부는 대통령 주재의 관계장관회의에서 <문화방송> 피디수첩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문제 삼고 나섰다. 이날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에서도 피디수첩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피디수첩의 광우병 왜곡 보도를 보고 촛불시위 현장에 나온 사람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검찰이 수사를 해서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무조건 사과하고 진실을 밝히는 해명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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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피디수첩과 관련해선 왜곡·과장 시비가 나왔다. 그러나 이날 정부·여당의 태도는 아예 ‘지난 4월의 쇠고기 협상에는 문제가 없는데도 피디수첩 때문에 불안이 가중되었다’는 듯한 논리다. 특히 한나라당은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재협상 필요성까지 거론하던 기존의 태도에서 정반대로 돌아섰다.

② 집회·시위 강경대처 재발 이 대통령은 5월8일 기자간담회에서 “(광우병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에프티에이에 반대하는 사람들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에선 국민들이 밥상 안전을 걱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정치적 의도에서 시위에 나서는 것으로 여기는 인식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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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촛불집회 참여자가 늘자 5월28일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폭력 시위는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면서도 “순수한 자발적 집회 참가자는 보호하고 평화적인 시위는 보장해줘야 한다”는 데 무게를 뒀다. 안 원내대표는 “쇠고기 반대 시위자와 관련해 정부 쪽에 연행자 구속을 피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며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고 시위는 항상 있어 왔고 시위를 갖고 지내는 게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그러나 26일 한승수 국무총리는 “순수한 촛불시위가 민주정권 퇴진을 위한 폭력시위로 변질되고 있다”고 시위대를 비난했다. 한 총리는 “세계와 경쟁해야 할 일부 젊은 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천금 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도 말했다. 이 대통령 주재 관계장관회의에서도 “교통 마비 등으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은 물론 서민들의 생업에까지 지장을 주는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③ 고시강행 또 다시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난 22일 한-미 사이 쇠고기 추가협상에 따른 새로운 수입 위생조건의 장관 고시를 “서두르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고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이 밝혔다. 조 대변인은 당시 “추가협상 및 검역지침에 대한 내용을 충분히 국민들에게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정은 사흘 뒤인 25일 관보 게재를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애초 설명대로 민심을 가라앉히기에 사흘은 너무 짧은 기간이다.

정부가 태도를 바꾼 것은 미국을 의식한 결과로 분석된다. 한-미 두 나라는 추가협상 당시 25일로 고시 시점까지 약속해 놓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당에서 주말은 넘겨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개진했지만 정부 쪽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 확고하다’고 버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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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태도는 지난 4월 이 대통령의 방미 무렵, 쇠고기 협상을 서둘러 타결짓던 모습과 흡사하다. 국내 여론보다는 대미 관계를 더 중시하는 태도가 되살아난 셈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일각에선 촛불집회 절정 무렵에 “대미 관계가 다소 불편해지더라도 국민 여론이 우선”이라며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황준범 최익림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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